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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알바한 뒤 '3억 가구'가 알아봤다... 고소공포증도 극복한 이 배우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서 괴력 청년 강남순 연기한 이유미

4~5층 건물 높이 공중에서 와이어 달고 직접 연기

"너 진짜 힘세?"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 "9개월 동안 강남순으로 살며 밝아져"

'오징어게임' 공개 전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도... 에미상 트로피 집에서 혼자 꺼내보며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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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강남순(이유미)은 천하장사다. SLL 제공

아파트 단지 옆 상가 건물 5층 미술학원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재였다. 매캐한 연기에 놀란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그때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젊은 여성이 껑충 뛰어올라 화재 폭발로 깨진 유리창을 통해 학원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했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강남순')에서 주인공 강남순을 연기한 이유미(29)는 4~5층 건물 높이의 공중에서 줄(와이어)에 매달려 화재 현장으로 비상하는 이 장면을 찍었다. 할리우드 영화 '원더우먼' 주인공처럼 강남순은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시내 한복판 건물 옥상을 훌쩍 뛰어넘어 사고 현장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줄줄이 잡힌 이 고공 와이어 액션 장면 촬영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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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가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촬영 중 4~5층 건물 높이의 공중에서 와이어(줄)에 매달려 촬영하고 있다. 이유미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처음엔 무서웠죠. 그런데 찍어야 하는 고공 액션 장면이 너무 많아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줄 튼튼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와이어에 몸을 맡겼죠. 나중엔 와이어 없이 도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에 빠지더라고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유미가 이렇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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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유미는 촬영이 있어 부산의 시장에 갔더니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남순아' '남순아'라고 불러주시더라라고 말했다. 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청률 10%를 웃돌며 26일 종방한 이 판타지 드라마에서 이유미는 괴력을 타고난 밝고 당찬 청춘 강남순을 구김살 없이 연기했다. 어머니와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죽인 '오징어게임'(2021)과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며 비하했던 '지금 우리 학교는'(2022)에서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9개월 동안 '강남순'을 찍으며 밝아졌다"는 이유미가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 진짜 힘세?"란 질문이다.


"저 보기보다 힘세요. 1.5리터 생수병 서너 개씩 넣은 장바구니 꽉꽉 채워 양손에 들고 혼자 장 보러 가기도 하고요." 그렇게 힘센 이유미는 드라마에서 어머니(김정은), 할머니(김해숙)와 함께 신종 마약을 유통하는 세력을 통쾌하게 소탕한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는 점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자평했다. 밖에서 '큰일' 하는 세 여성 영웅을 차분하게 내조하는 건 남자들이다. 이유미는 "여성들이 사랑에 당당하고 그렇게 직진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색다른 설렘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여성주의적 서사와 엉뚱한 이야기에 반한 걸까. 영국 출신 유명 모델인 나오미 캠벨은 최근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강남순'의 마니아라고 '인증'했다. '강남순'은 넷플릭스에서 7주 동안 비영어권 드라마 톱10에 머물려 해외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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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지영(이유미)은 자신과 그의 어머니를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서 형을 마친 뒤 생존 게임에 참여했다. 이 드라마로 이유미는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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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나연(이유미)은 냉혈한이었다. 넷플릭스 제공

이유미에게 지난 2년은 인생의 불꽃놀이 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통틀어 역대 최다 시청 톱10에 오른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1위·2억6,000만 가구)과 '지금 우리 학교는'(8위·5,500만 가구)에 연달아 출연해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애초 4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두 드라마가 공개된 뒤 667만 명(27일 기준)으로 폭증했다. '오징어게임'으로 지난해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게스트 여배우상도 받았다. 이유미는 "받을 거라는 상상도 못 해 (시상식에 갔을 때) 딱히 긴장되지도 않았다"며 "앉아 있는 데 갑자기 화면에 후보들 얼굴이 나오고 한국말로 내 대사가 소개돼 정말 신기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시상식이 끝난 후 그는 집에서 혼자 트로피를 꺼내 보며 눈물을 쏟았다. 2009년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에서 고등학생 단역으로 나와 10여 년 동안 "언젠가는 될 거야란 믿음으로 버틴"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오징어게임'이 공개되기 전 조·단역을 전전했던 그는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되기 전 일을 쉬면 힘드니까 용돈 벌자는 심정으로 음식 배달 일을 했어요. 걸어 다니며 배달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이번에 '강남순'에서 물건 배달 업체에 잠입해 창고에서 일했는데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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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배우 이유미가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크리에이티브 아츠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게스트상(단역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오징어게임'은 비연예인들이 출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으로도 제작돼 최근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이유미가 연기한) 지영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분들을 찾고 응원하게 되더라"며 "구슬 게임이 나와 옛 생각도 났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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