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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빌딩숲 육교에 한옥이 걸린 까닭은…

서도호 설치작품 ‘브리징 홈, 런던’ 전시

런던 빌딩숲 육교에  한옥이 걸린 까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리버풀스트리트 지역 최첨단 유리 빌딩을 연결하는 육교 위에 서도호의 ‘브리징 홈, 런던’이 위태롭게 걸쳐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영국 런던의 동쪽, 고층 빌딩이 늘어선 웜우드가(街) 육교 난간 중앙에 어디선가 날아온 듯한 한옥 한 채가 콕 박혀 있다.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한국 설치미술가 서도호(56)의 공공미술 설치작품 ‘브리징 홈, 런던(Bridging Home, London)’이 24일(현지시간) 드디어 공개됐다. 작가가 런던에서 선보이는 첫 대형 야외 설치작품이다. 도심의 유리빌딩 숲 사이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올라선 한옥은 주위 풍경과 대조를 이루며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한옥의 한 면이 완전히 밖으로 나간 채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어 흡사 바닥으로 떨어질 듯이 불안하다.


이 작품은 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 그는 한국화 대가인 서세옥(89) 화백의 아들로 창덕궁 연경당을 본떠 지은 서울 성북동의 한옥에서 자랐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이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국과 독일, 한국 등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는 “집을 떠나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 경험한 나라 간, 문화 간 이주를 통해 느낀 기억과 감정을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런던 빌딩숲 육교에  한옥이 걸린 까

영국 런던 도심 한복판에 설치된 서도호의 ‘브리징 홈, 런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그에게 집은 특별하다. 1999년 미국 LA한국문화원 전시에 천으로 만든 한옥 ‘서울집/LA집’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서양식 건축물 안에 포개져 있는 한옥을 얇은 천으로 표현한 ‘집 속의 집’, 자신이 살았던 전통 한옥이 태풍에 날아와 뉴욕의 아파트에 쾅 처박힌 모습을 5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별똥별 1/5’ 등을 내놨다. 집을 소재로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는 개념적인 설치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지난달에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에서 작가가 살았던 다양한 집을 각양각색의 반투명 천으로 표현한 ‘허브’ 등을 내보이는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은유적이고 정신적인 것이다”라며 “집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인생, 기억 등을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런던에서 개최되는 가장 규모가 큰 공공예술 축제인 ‘아트 나이트’와 런던 도시조각 프로젝트의 공동 발주로 만들어졌다. 전시기간은 6개월. 서 작가는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공공미술이라고 생각한다”며 “제2의 고향인 런던에서 공공미술 전시를 하게 돼 굉장히 가슴 벅차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데이비드 로버츠 미술재단의 파토스 우스텍 큐레이터는 “런던 도심의 가장 복잡한 구역의 고층빌딩 사이에 우뚝 서 있는 한국 전통가옥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집’에 대한 본질적인 감정을 발견하고 그와 연결된 각자의 소속감과 추억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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