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번역했기에… ‘기생충’ 영어 자막에 칸 박장대소
칸 황금종려상 안은 봉준호
달시 파켓, 정재일… 황금종려상 조력자들
영화 '기생충' 포스터. 기이하면서도 차가운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김상만 감독이 디자인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첫 장면부터 박장대소가 터졌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최고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에서 공식 상영된 이후 국내 언론이 전한 관객 반응이다. 한국어를 모를 외국인 관객이 대다수였을 텐데 얼마나 영어 번역을 얼마나 잘 했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어 번역이 매우 적절했다는 평가가 칸에서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 등에게서 나온다. 서양 문화를 고려하면서도 한국인 정서를 잘 반영한 영어자막이 황금종려상 수상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기생충’의 영어 번역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의 솜씨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과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 기자를 거쳐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과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에서 얄미운 미국 기업사냥꾼을 연기하는 등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영어 번역 일도 종종 한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등 유명 영화제를 겨냥한 작품들의 번역 작업을 했다. 번역에 있어 파켓의 최고 무기는 한국 이해도다. 1997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기생충’의 공식 상영에 참석한 김효정(미국 일리노이대 박사) 영화평론가는 “한국어 단어를 서양문화 맥락을 반영해 완전히 다른 영어 단어로 바꾸는데 있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해외 진출 한국 영화의 영어 자막 번역 일도 종종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가수 정재일은 '옥자'에 이어 '기생충'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
파켓은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봉 감독의 영화 영어 번역을 죽 해왔다. 파켓은 2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봉 감독이 영어 자막에 워낙 관심이 많다”며 “‘마더’ 때는 영어 자막 길이를 고려해 주인공 이름을 정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봉 감독은 이번에도 번역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미리 메모해서 줬고 번역 초본이 나온 후 둘이서 꼬박 이틀 동안 함께 검토했다”고 덧붙였다. 파켓은 지난 24일 ‘2월 영어 자막 작업 이후 3개월 동안 영화에 대해 얘기할 수 없어 무척 외로웠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표현답게 조력자는 여럿 있다.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엔에이 대표도 그 중 하나다. 곽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1990년대 국내 영화광들이 즐겨 읽던 영화전문 월간지 키노의 기자를 거쳐 영화사에서 마케팅 일을 오래했다.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2016) 등을 제작했다. 영화 기자와 마케터 활동을 통해 영화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웠다. 영화 ‘친구’(2000) 등의 곽경택 감독이 오빠이고, ‘은교’(2012)와 ‘침묵’(2017) 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곽 대표의 부모님은 아들과 사위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네킹 같은 자세의 등장인물들 눈가에 선이 그어진 모습을 담아낸 포스터도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 차가운 이미지를 풍기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포스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포스터는 김상만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 전문가인 김 감독은 영화 ‘걸스카우트’(2008)와 ‘심야의 FM’(2010)을 연출하기도 했다.
음악감독인 가수 정재일도 조력자로 꼽힌다. 봉 감독은 칸영화제 기간 중 국내 취재진을 만나 엔딩크레디트에 흐르는 노래 ‘소주 한 잔’에 귀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그 노래가 어떻게 다가오느냐에 따라 영화의 여운도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소주 한 잔’은 봉 감독이 작사하고 정 감독이 작곡했다. 정 감독은 ‘옥자’로 봉 감독과 첫 협업한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