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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재’ 몽블랑 트레킹 도전 “내면 균형감 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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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트레킹


체력훈련·산장예약 등 만반의 준비

서유럽을 관통하는 걷기 여행은 고난

무지개 만나는 등 기쁨은 두배

다른 나라 여행객 만나기도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명상 여행

한겨레

프랑스 국경인 발므고개(2191m)에 올라서면 몽블랑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나타나 등반객들이 일제히 사진기를 꺼내드는 풍경이 연출된다. 구본권 선임기자

오십대 중반, 체력과 지력이 한창때를 지났음을 세거나 빠지는 머리칼이 알려주는 나이다. 나이듦에 익숙해져야 하는 오십대 중반의 아재 셋이 젊을 때도 엄두 내지 못하던 도전에 나섰다. 세 명은 꿈의 트레킹 루트로 불리는 ‘투르 뒤 몽블랑’ 일주에 나섰다. 많은 사람이 찾는 트레킹 루트인 덕에 여행 상품들도 있지만, 셋은 1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했다. 가이드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자체 준비하는 바람에 약간의 불안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자유롭고 보람도 컸다. 지난 8월7일(현지시각) 아침 산길로 들어서 열흘 동안 몽블랑 산속에서 지내며 티엠비(투르 뒤 몽블랑·Tour du Mont Blanc)를 완주한 이야기다.

여행의 준비, 설렘이 반

여행이 즐겁다면 준비하는 설렘이 절반이다. 열달 전 비행기표를 예매해 놓은 뒤 티엠비는 피곤하고 건조해지기 쉬운 일상에 생기를 선물했다. 티엠비 관련 서적을 읽고, 체력훈련, 코스 선정 및 산장 예약, 장비 구입 같은 것을 함께 하며 셋은 들떴다.


걱정은 체력. 전문가들은 티엠비가 세계 유명 트레일 코스 중에서 가장 체력이 필요한 트레킹이라 했다. 물론, 걷기도 쉽지 않은 171㎞를 뛰는 이들도 있다. 이번 트레킹 도중 달랑 물병 하나 손에 들고 맞은편에서 뛰어와 휙 지나가는 이들을 적잖이 만났다. 해마다 8월 말이면 이곳에서 산악마라톤(울트라 트레일 몽블랑 마라톤)이 열리는데, 그 대비 훈련 중인 이들이었다. 이틀에 못 미치는 46시간30분이 제한시간인데, 1500명 이상이 완주한다고 한다. 그들의 체력과 패기가 부러웠으나, 언감생심이었다.


기자 둘은 체력 단련 차원에서 달리기를 해오다 올봄 마라톤 풀코스를 나란히 완주했다. 봄에 합류한 은행원과 함께 초여름 주말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사패산에서 불광동까지 북한산 자락을 삼등분해 실전처럼 걸어 봤다. 걷기의 복병인 물집을 막아주는 울 양말, 돌비탈길에서도 발목을 죄어주는 중등산화, 비에 대비한 판초 우의와 기능성 속옷 등등 장비가 하나둘 배낭을 채워갔고 출발일도 다가왔다. 그렇게 8월 초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프랑스 샤모니에 왔고, 레주슈의 출발선에 섰다.

고개마다 배낭 부담스러워

티엠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삼국에 걸쳐 있다. 트레커들은 높은 고개를 통해 국경을 넘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세뉴고개(2516m),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그랑페레(2537m), 스위스와 프랑스는 발므고개(2191m)가 경계다. 국경이라고 울타리나 검문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등산로 안내를 겸한 경계비가 있을 따름이다. 국경을 맞댄 고개뿐만 아니라, 티엠비는 날마다 가파른 고개를 넘는 여정이다. 트리코, 보놈, 크루아보놈, 푸르, 포르클라…. 하루에 한두 개꼴로 높은 고개가 나타난다.


굵은 땀을 흘린 뒤 고갯마루에 서면 감회가 밀려온다. 지친 심장과 팔다리가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 그곳에서 비로소 달콤한 휴식을 맛본다. 하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못한다. 고개는 바람 길목이어서 춥고, 비바람이 칠 때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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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오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별로 넣은 것도 없는데, 결국 12~13㎏에 이르러 허리와 무릎을 마구 학대하는 배낭은 아둔함을 자책하는 징표가 됐다. “옷은 반만 가져와도 됐을 텐데.” “파스는 왜 그렇게 많이 가져왔을까.” 티엠비처럼 산장에서 묵는 장거리 트레킹일 경우 32~35리터 정도의 배낭 사이즈에 무게는 7~8㎏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짐 잘 싸는 방법’이란 글이 기억났다. ‘짐을 모두 가방에 넣어라. 다시 풀어서, 그 절반만 가져가라.’ 다음 트레킹은 그 원칙을 따라보리라.

산자락에서 맞은 비 무지개는 보너스

“오오, 뒤 좀 보세요.” 앞서가던 미국인 여성 트레커 두 사람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판초 우의 속으로 젖어드는 습기에 웅크리며 걷던 몸을 돌려 왔던 길 쪽으로 돌아섰다. “와, 무지개.” 방금 전까지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두꺼운 구름 사이로 잠시 비집고 나온 햇살은 페레계곡을 가로질러 일곱 빛깔 아치를 그려놓았다.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뛰노나. 어릴 때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선명한 무지개 앞에서 시구가 떠오르며 경탄에 빠졌다. 5분 만에 사라졌지만, 무지개는 비바람을 뿌리던 대자연이 그 대가로 선사한,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절반을 넘긴 트레킹 엿새째, 티엠비의 이탈리아 쪽 출발점인 쿠르마예르(쿠르마유르)가 내려다보이는 베르토네 산장을 떠나 아름답기로 이름난 몽블랑 남쪽 사면을 보면서 보나티 산장으로 가던 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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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에서는 배낭 무게가 더 부담스러워지고 걸음이 느려진다. 스위스 포르클라고개(1526m)를 넘었더니 이번엔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발므고개(2191m)가 나타났다. 고갯길 꼭대기에 발므 산장이 보인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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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드라삭스 능선을 지날 때는 우박과 함께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비가 그치자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구본권 선임기자

날마다 트레킹에 대한 소망은 날씨가 험악해져 판초 우의를 꺼내는 일은 면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에서 비는 숙명이었다. 세찬 비를 두 번 맞았는데, 공교롭게도 첫날 출발이 비와 함께였다. 레주슈의 벨뷔를 떠나 이날의 정상인 트리코고개(2120m)로 오를 때 거센 폭풍우가 닥쳤다. 안개구름은 시야를 가리고 빗물은 도랑이 되어 발밑을 파고들었다. 간신히 고갯마루에서 사진 한장 찍고 자리를 뜨려는데, 맞은편 협곡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급히 넘어가느라 사정없는 속도로 몰아쳤다. 판초 우의는 마구 펄럭거리고, 모자는 날아가려 해 꽉 움켜잡았다. 몽블랑의 비경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통행료를 톡톡히 낸 셈이다.

다른 나라 사람도 길동무

티엠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을 만나는 일이다. 열흘 안팎 걷다 보면 산길이나 숙소인 산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들이 생긴다. 같이 앉아 저녁을 하며 서툰 영어로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친분도 쌓인다.


이스라엘에서 온 길과 샤켓이라는 이름의 부녀와는 첫날 숙소에서 만나 트레킹 종반까지 수시로 만났다. 현대무용을 하는 스물세살의 샤켓이 아버지 길에게 올여름 휴가에 트레킹을 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길은 피에로였고 지금은 연극 강사를 주로 하는데 ‘저글링’을 잘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트레킹 초반엔 딸인 샤켓이 힘들어했으나, 뒤로 가면서 허리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더 고생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큰딸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왔지만, 사소한 일로 계속 티격태격한다며 속이 상해 못 마시는 맥주를 거푸 마시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개가 가족임을 입증하듯 애견을 데리고 티엠비를 도는 이들도 많았다. 첫날 만난 프랑스 젊은 여성이 데려온 이누키라는 개는 벌써 두번째 몽블랑 트레킹이라 했다. 한국 사람은 16명이 팀을 이룬 중년의 산악동아리와 14명이 함께 온 초등학교 동창생 그룹을 만났다.


길은 멀고 험했으나, 저녁에 찾아든 산장의 휴식은 편했다. 산장은 물과 전기 사용이 제한적인 히말라야의 산장을 연상하고 갔으나 많이 달랐다. 몽블랑의 산장은 보통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있었고, 잠자리만 공동침실이었지 따뜻한 물 샤워와 세탁, 화장실 사용에 불편이 없는 곳이 많았다. 거쳐 가는 나라들 모두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곳이어서 산장의 저녁과 아침 식사도 훌륭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티엠비의 산장 문화는 처음 찾는 외국인에게도 효율적이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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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우박을 맞는 산행을 하다가 선물처럼 무지개를 만난 일행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길은 이어지고

타원형 트레킹 구간 중 마지막 부분을 남겨둔 저녁, 셋은 여드레 전 출발한 샤모니계곡을 내려다보았다. 긴 휴가를 내고 온 장거리 도보 여행. 다소의 불편함을 자청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게 트레킹이라 믿었기에, 열흘간의 ‘유람’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열흘간 430여리를 걸으며, 걸어온 여정과 걸어갈 날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장거리 도보 여행은 명상으로 이끌었다. 신체의 고단함 속에서 내면의 균형 감각도 좀 더 자라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마음속 담아온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돌아와 도시의 길을 걷더라도 지속되는 즐거움과 추억을 안겨줄 것이기에.

 

샤모니(프랑스)/글·사진 구본권 이봉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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