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4년 우주의 인간에 남긴 ‘강수연의 마지막 선물’
연상호 감독 ‘정이’ 20일 넷플릭스 공개
넷플릭스 영화 <정이>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지난해 5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1966~2022)의 유작 영화 <정이>가 넷플릭스에서 20일 공개된다. <정이>는 강수연의 10년 만의 복귀작이자 영화 <부산행>, 드라마 <지옥>(넷플릭스)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첫 에스에프(SF) 연출작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강수연은 촬영을 마친 뒤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 완성작을 볼 수 없게 됐지만, 팬들에게는 한국 최초로 ‘월드스타’라는 명예를 가졌던 강수연의 연기를 오랜만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정이>의 배경은 기후위기로 폐허가 된 2194년,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정착한 ‘쉘터’다. 이곳에서 벌어진 내전을 끝내기 위해 군수기업 크로노이드사는 전투 로봇을 개발한다. 전설적인 용병이었으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된 윤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기계 육체에 심어 대량 생산하는 ‘정이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는 정이의 딸 서현(강수연)이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영화 속 미래는 뇌에 축적된 정보를 복제해 숨은 멈추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과 재능을 유지하며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여기에도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그늘은 있다. 의사는 말기 암을 앓는 서현에게 죽기 전 선택을 권한다. 1번은 자신이 원하는 육체에 뇌 정보를 심어 온전히 새로운 자유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2번은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정부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고 이동과 결혼, 출산의 자유 등이 제한되는 삶, 3번은 기업에 정보를 제공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부활의 형태가 결정되는 삶. 1번에는 엄청난 돈이, 2번에는 그보다 적은 돈이 필요하고, 3번은 쉽게 말해 내 정보를 기업에 파는 것이니 오히려 돈을 받는다. 아픈 딸 서현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용병이 됐던 정이는 딸의 마지막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3번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개인정보가 돈이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이>의 상상력은 현실반영적이다. 좀비, 초능력 등 다양한 소재에 어두운 현실을 담아온 연상호의 세계관을 잇는다. 이는 폐허가 된 지구와 지구를 벗어나 만든 쉘터라는 디스토피아를 구성하는 황량한 풍경들로 연결된다.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정이> 제작보고회에서 연 감독은 “기계를 만드는 거대한 공장 같은 사이버펑크적 요소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후반작업팀에서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동안 한국 영화의 미술과 시지 등에서 축적한 경험치와 노하우들이 작품에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이>는 주로 티브이(TV)나 모바일 기기로 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비주얼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
연 감독은 “강수연 선배가 없었으면 현실화되기 힘들었을 기획”이라고 작품을 함께한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야기를 처음 떠올릴 때만 해도 영화화에 회의적이었다. 에스에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산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데, 주제가 한 인물의 사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서현 역에 강수연 선배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화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30분 정도 통화하면서 대본을 드리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반팔 티셔츠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제작보고회 자리에 참석할 순 없었지만 촬영 현장 화면을 통해 생전 모습으로 나타난 강수연은 “가장 한국적인 에스에프를 만들고 싶다는 연상호 감독의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정이 역의 김현주는 연 감독의 전작 <지옥>에서 처음 선보였던 액션 연기를 <정이>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정이를 연기하는 건 감정과 기억을 가진 사람과 무자비하면서도 버튼을 끄면 모든 게 정지되는 로봇을 순간적으로 넘나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데, 김현주의 안정적인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엉뚱하면서도 광기 어린 연구소장 상훈 역의 류경수도 <지옥>에 이어 연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