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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짜내는 그 강인한 맛이여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독특한 식감·맛 자랑하는 심장

육류·어류·조류 각기 다른 개성

회로 먹을 땐 신선도 확인해야

한겨레

소 염통. 게티이미지뱅크

오랫동안 인간에게 마음이라는 존재가 실재한다고 봤다. 가슴, 즉 심장에 깃들어 있다고 확신했다. 가슴은 심장이다. 머리는 생각하고 심장은 용기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래서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다고 믿었으리라. 심장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상징한다. 펄떡이며 피를 뿜어낸다.

염통은 왜 쌀까

최근에는 거의 먹기 힘들지만 심장은 꽤 인기 있는 안주였다. 내장은 값이 쌌다. 마장동에서 고기를 사면 옛날에는 주인이 간이나 심장 같은 건 서비스로 줬다. 요즘도 고기를 많이 산다거나, 말을 잘하면 거저 얻을 수 있다. 간과 심장은 내장 중에서도 피가 많이 있는 부위라 신선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 냉동해 두면 비려서 못 먹는다. 그래서 싸다. 간은 그나마 횟감으로 인기가 꽤 있어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심장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 주로 선술집 주인들이 엄청 싸게 받아다가 허파와 함께 볶아서 팔았다. 요즘도 광장시장 같은 주점에서 팔고 있다. 파,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달달 볶는다. 옛날 마장동 시장 근처 무허가주점에서는 연탄화로를 내놓고 구워서도 팔았다. 요즘도 소곱창 잘하는 집에서는 염통도 함께 구워 파는 걸 볼 수 있는데, 역시 연탄이나 숯불 구이가 맛있다. 너무 익히면 질기다. 선수들은 미디엄이나 미디엄웰 정도로 익힌다. 그러자면 신선해야 한다. 말 나온 김에, 늘 회로만 먹으라고 내는 간도 거꾸로 구워서 드셔보시라. 좀 두툼하게 썰어서 왕소금 뿌려 숯불에 구우면 엄청난 별미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요새 유행하는 트러플오일에 소금을 뿌려서 찍어 드시면 이거, 기막히다. 딱 정답은 아닌데, 트러플오일은 화이트오일이 대체로 더 맛있다. 흔하지는 않다. 덧붙이자면, 트러플오일이 무슨 트러플을 쥐어짜거나 생 트러플을 왕창 기름에 우려내 만드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절대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트러플향이 지배한다. 진짜 트러플을 0.0001퍼센트 정도 넣는 경우도 있는데 그거 거의 ‘뼁끼’다.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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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염통 요리. 박찬일 제공

심장 근육의 맛

남도에 가면 옛날부터 닭회를 꽤 먹는다. 닭발, 가슴살, 간, 염통도 회로 먹는다. ‘조슨’(다진) 닭발 회를 기름장에 찍어 먹는 맛에 중독된 사람도 꽤 있다. 오독오독한 연골이 씹혀서 물리적인 맛을 선사한다. 물론 닭이 토종 비슷한 것이어야 하고, 막 잡아서 아주 신선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어류의 심장으로 가보자. 일본에서도 도쿄 위로 쭉 올라가면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게센누마가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이 상어 심장 회를 먹는다. 게센누마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어업 전진기지쯤 된다. 일본 여러 대도시에 공급하는 꽁치와 상어, 황새치를 대량으로 잡는다. 이 중에 상어 심장은 시내 이자카야의 인기 안주다. 게센누마 사람들은 기가 세다고 한다. 상어 심장을 먹어서일까. 심장은 정력에 좋다고들 한다. 시내 슈퍼마켓에도 진열되어 팔린다. 개당 2천~3천원 정도니까 싼 편이다. 내장이니까 비싸지 않다. 2018년도인가. 게센누마에 갔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할퀴고 간 지역이다. 상어와 참치를 잡아서 경매하는 시장의 분위기가 어두웠다. 대지진으로 항구가 폐쇄되었던 여파다. 시장 벽에 쓰나미의 높이가 선으로 그어져 있다. 아픔의 기억이다. 게센누마 항구 사람들은 영원히 저 흔적을 보면서 공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시내 한 선술집에서 상어 심장을 시켰다. 모르고 먹으면 그냥 참치 살점으로 착각할 것이다. 아주 싱싱한 놈을 받아서 얼음물에 박박 씻어 핏기를 지운다. 얼음물이 탱탱하고 쫄깃하게 근육을 긴장시킨다. 날카로운 회칼로 얇게 썰어 낸다. 원래 참치 같은 붉은 살 생선은 뒷맛에 금속성의 날카로움이 스친다. 이놈은 심장이라 그게 좀 더 강하다. 피가 드나들던 방이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이 항구의 상어 심장은 도쿄의 몇몇 술집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새벽같이 공수되어 팔린다. 아, 냉장 트럭으로 가니까 공수 아니고 육로 운송이다. 인간이 상어 심장만 먹는 건 아니다. 비슷한 덩치의 어류, 참치 심장도 인기 있다. 주로 굽는다. 꼬치에 꿰어서 간장양념(다레)을 발라서 구운 안주로 팔린다. 고소하고 진하다. 간보다는 피 맛이 덜하고, 씹는 맛은 강하다. 심장은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신체 구석구석에 보내니까 근육의 힘이 좋다. 상어나 참치 같은 어류는 포유동물처럼 심장이 과로하지 않는 때문인지 턱이 아프도록 질깃하지는 않다. 얌전하게 졸깃하다. 회로 내는 건 역시 선도가 으뜸이어야 한다. 일본 초겨울은 참치들이 몰려오는 시기다. 이때 잇폰즈리, 즉 전통적인 외줄낚시 참치잡이가 성행한다. 북쪽 오마산을 최고로 친다. 이렇게 잡은 참치는 싱싱해서 심장을 회로 먹을 수 있다. 혈관을 정리하고 슥슥 저며 낸다. 간과 비슷한데 쫄깃한 맛이 있다. 보통 일본의 회는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는다. 심장은 참기름장에도 잘 어울려서 그렇게 내주는 술집을 봤다. 한국 고깃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념이지만 일본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어서 더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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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센누마항의 경매장. 박찬일 제공

용감한 어부에게 바쳤던…

참치 하면 지중해이고,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남부는 참치 떼를 몰아서 작살로 잡는 어로가 크게 성행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있었다. 요즘은 참치 양이 줄고, 작살을 쓰는 어부도 사라져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잡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그래도 철마다 축제를 한다. 참치는 덩치가 커서 부위별로 온갖 요리를 만든다. 스테이크, 조림, 구이를 하고 알로 소금절임도 한다. 붉은 살을 소금 뿌려 말린 것을 얇게 저며 샐러드나 술안주로 먹는다. 모시아메라는 전통적인 용어로 부르는데, 요즘은 튜나 프로슈토라고 한다. 돼지고기 생햄인 프로슈토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그 이름을 가져다 쓰는 셈이다. 작살로 잡은 참치 내장 중에서 심장은 소중한 재료다. 과거에는 작살을 가장 잘 쓰는 용감한 어부에게 심장을 바쳤다. 수십마리의 거대한 참치를 작살로 공격해서 잡아 올리면, 어부들은 온몸에 피칠갑을 하게 된다. 그런 상태로 독주를 마시면서 심장 회 안주를 먹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적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대목에 흔히 ‘원수의 심장을 내어 먹으리라’는 말을 쓰는데, 아마도 이런 전투적 풍습이 어획에도 전해진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 남부의 참치 축제를 보려면 ‘튜나 페스티벌’(tuna festival) 정도의 검색어로 찾을 수 있다.


요즘은 붉은 살처럼 심장도 소금절임한 것이 주로 팔린다. 미국 아마존에서도 살 수 있다. 물론 한국으로 수입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날씨가 더워지면 간혹 수산시장에 생참치가 대량으로 나올 때가 있다. 이때는 참치 심장을 회로 먹어볼 수 있겠다. 물론 신선해야 한다. 참기름장을 찍든, 이탈리아식으로 레몬과 올리브유 소금으로 소스를 만들든, 육회처럼 고추장 양념을 하든 자유다.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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