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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긴다, 지진다, 볶는다…‘맛 없는 채소’라는 편견 넘다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가지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한여름 스치듯 보았던 가지의 꽃은 보라색이었다. 그런데 유럽의 한 농장에서 본 가지꽃은 하얀색이었다. 나라마다 가지꽃 색깔이 다른 건가?


가지의 영어 이름은 통상 ‘에그플랜트’(eggplant)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오버진’(aubergine)이란 단어를 쓰기도 한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가 살펴보니 에그플랜트는 진짜 달걀처럼 둥글고 오동통한 모양을 지칭하고 우리나라처럼 긴 모양의 가지는 오버진으로 불렸다. 게다가 가지는 모두 보라색이 아니었다. 흰색·누런색·검은색 가지가 있고 꽃 색깔도 종류마다 다르다. 세상은 넓고 가지는 많았다.


요리하는 사람들끼리는 가지를 크게 한국 가지와 서양 가지로 나누고 요리법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크고 둥근 형태의 이른바 서양 가지를 그대로 조리했다간 큰 낭패를 보기 쉽다. 자른 단면에 소금을 뿌려 수분을 뺀 뒤에 조리하지 않으면 쓰고 떫고 심지어 아려서 먹기 힘들다. 처음 이런 차이를 모르고 전처리과정 없이 가지 파스타를 만들었다가 모두 내다 버리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반면 한국 가지는 길고 덜 단단하고 전처리가 전혀 필요 없다. 심지어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봤는데 사실 가지는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으면 위험할 수 있다. 감자 싹에서 많이 발견되는 치명적인 독소인 ‘솔라닌’ 성분이 생가지에 들어있어 생으로 먹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 다만 밭에서 바로 딴 자그마한 사이즈의 가지를 어쩌다 한번 와그작 베어먹는 건 그 위험을 감수하고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모험의 맛’이 아닐까? 농장에서만 가능한 초신선의 맛!


몇해 전 여러 나라에서 온 대표 셰프들과 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에서 온 셰프가 가지 요리를 했다. 가지를 납작하게 썰어 기름에 지지고 마늘 간장소스에 조려낸 후 쇠고기 스테이크에 곁들이는 방식을 보면서 신기했다. ‘저 사람은 한국식 가지 조리법을 어찌 잘 알까?’ 알고 보니 그 셰프의 스승이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유명 한국 셰프 ‘빌 킴’이었고 덕분에 이런 ‘가지 누르미’ 요리를 알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한식에서의 가지요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흐물거리는 가지 나물만이 한식 가지 요리의 전부인 것처럼 오인하고 “나는 가지가 싫어요”를 버릇처럼 외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어린이들은 가지를 할머니들만 먹는 채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 셰프가 가지를 쇠고기와 함께 조린 것처럼 기름에 튀기듯 지져 고기와 조리는 가지 고기조림, 가지 속을 고기나 생선으로 채워 쪄내는 가지 만두, 가지에 부추소를 채워 삭혀 먹는 가지 소박이, 말린 가지를 불려 채소와 함께 볶는 가지 잡채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조리법과 부재료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오히려 한국 사람인 내가 만드는 가지 요리는 이탈리아식이다. 탄수화물 없는 가지 라자냐. 가지를 최대한 길고 얇게 썬 뒤 기름에 센불로 재빨리 지져낸다. 양파, 마늘, 가지 자투리를 모두 잘게 다져 토마토, 다진 쇠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아낸 후 지져낸 가지와 볶은 토마토소스를 켜켜이 반복하며 깔아준다. 사이사이 모차렐라 치즈도 넣어주고 어느 정도 두께감이 생기면 오븐에 노릇하게 구워준다. 바삭함을 원하면 빵가루를 사이사이 더해도 좋고 프랑스식 크림소스인 베샤맬 화이트를 더해 부드럽게 핑크빛으로 완성해도 맛있다. 탄수화물 파스타 국수 대신 촉촉한 가지가 단맛을 더해줘서 더할 나위 없는 여름 별미가 된다.


가지는 정말 다양한 모양과 이름, 여러 색깔의 꽃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지만 꽃말은 단 하나, ‘진실’이다. 어떤 형태와 색이든 뜨거운 태양을 머금은 영양과 맛의 결정체. 먹는 사람에게 건강과 이로움을 주는 가지. 이것이 여름 가지의 진실이다.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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