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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뭐 하세요, 개똥 치우셔야죠

스마트폰 보며, 산책 나온 개의 ‘응가’에 관심없는 견주들

개똥 쌓인 개공원엔 악취…반려견 뒤처리, 최소한의 에티켓

주인님 뭐 하세요, 개똥 치우셔야죠

자기 개의 똥은 자신이 치우는, 최소한의 펫티켓은 지켜야 한다. 견주 한 사람의 비양심이 숱한 견주들을 욕 먹이고, 개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개가 산책을 한다. 견주가 앞에 가고 목줄을 맨 개는 뒤에 따라간다. 오랜만의 산책이라 개는 기분이 좋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냄새를 맡으려는데, 앞만 보고 가는 견주가 무심히 줄을 당긴다. “아, 저 냄새 꼭 맡고 싶은데.” 아쉽지만 개는 견주에게 끌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쉬야가 마렵다. 민감한 녀석이라 쉬야를 하려면 적당한 곳을 물색해야 하는데, 개의 속을 모르는지 견주는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계속 갈 길을 간다. 할 수 없이 개는 기회를 봐서 찔끔찔끔 소변을 봐야 했다. 그래도 개는 견주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끔이나마 밖으로 데려와 주는 게 어디야? 나 정도면 주인 잘 만난 거야.”


그런데 큰일이 생겼다. 응가가 마렵다. 개는 예민한 동물이라 적당한 곳을 물색한 뒤 몇 바퀴 돌아야 일을 볼 수 있는데, 견주는 여전히 개를 보려하지 않는다. 개의 입에서 드디어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씨, 너무하잖아. “저기요, 똥 좀 싸고 갑시다!”

개가 어딜 가는지, 똥을 싸는지…무관심

실제로 개산책을 나가는 견주들 중엔 이런 분들이 꽤 있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개산책을 하는 김에 자신도 운동을 한다면 1석2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개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견주와 달리 개는 견주가 허락해 줄 때만 잠깐 바깥공기를 쐬는 것이다. 집에 있는 내내 견주만 바라보고, 집에 없을 때는 견주 오기만을 기다리는 개의 충성스러움을 생각한다면, 개산책을 나가는 그 시간이라도 개를 위해 써 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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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개공원에 직접 썼다. “개똥치워.”

넉넉하게 개 뒤에서 걸으면서 개가 다른 개들의 냄새를 맡고, 쉬야를 하는 걸 지켜봐 준다면 개에게 쌓인 스트레스가 싹 풀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개의 동태를 살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또 있으니, 그건 바로 응가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비교적 괜찮은 잔디밭이 있다. 차량이 지하로만 다니는 아파트라 그 잔디밭에서 개산책을 시키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 중엔 개를 풀어놓고 자신은 다른 일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거나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찾는다든지, 그게 아니면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가 다른 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분들은 자기 개의 똥을 치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를 보고 있지 않으니 똥을 어디다 쌌는지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치우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줄을 매고 산책을 시키는 견주들 중에도 개똥을 안 치우는 분들이 제법 있어서, 잔디밭을 지나가다 보면 개똥의 향연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처럼 개를 사랑하는 사람도 남의 개똥을 보면 짜증이 나는데,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본다면 얼마나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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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공원에서 개똥 수거에 쓰라며 비닐을 비치해 둔 박스에, 개똥을 집어넣은 비닐들이 가득하다. 한 명이 먼저 시작하자 그게 ‘길’이 돼서 다음 사람이 따르고, 또 다른 사람이 따르게 됐다.

개산책을 위한 공간인 개공원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는 개공원에는 쓰레기통이 없고, 대신 다음과 같은 푯말이 쓰여 있다. ‘개의 배설물은 반드시 수거해 가세요.’ 개똥을 집에 가져간 뒤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는 얘기,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몇몇 사람들이 공원 철망 바깥에 개똥이 담긴 비닐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게 길이 됐는지 그 뒤에 온 이들도 그곳에 개똥을 던졌다.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철망 바깥엔 높이가 제법 되는 개똥산이 만들어졌다. 그 산을 지켜보고 있으면 슬슬 걱정이 된다. ‘여름이 되면 개똥산에서 나는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주변에 벌레도 들끓을 것이다. 그러면 개공원을 없애라는 민원이 빗발치지 않을까?’


세상 어딘가에는 의인이 있기 마련이라, 한 견주께서 어느 날 다른 두 분의 도움을 받아 그 개똥산을 없앴다. 이를 위해 100리터들이 쓰레기봉투 9개가 필요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분의 소감을 들어보자. “저도 더러워요. 비위 상해 토할 뻔했어요.”

시간과 돈, 그 이상이 필요

의인의 힘으로 깨끗한 개공원이 만들어졌다면, 그 뒤부터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노력하는 게 일반인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그 의인도 “두번은 못 치울 것 같아요”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공원엔 개똥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역시 견주들의 무관심이었다. 견주들은 개를 관찰하는 대신 자기네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비닐을 이용해 개똥을 치우는 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똥이 든 비닐을 개공원에 버리고 사라진 분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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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의 똥은 자신이 치우는, 최소한의 펫티켓은 지켜야 한다. 견주 한 사람의 비양심이 숱한 견주들을 욕 먹이고, 개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부는 매우 창의적인 방법을 썼다. 공원 쪽에선 개똥 수거용 비닐을 박스에 비치해 놨는데, 바로 그 박스에 개똥을 집어넣은 것이다. 한 명이 먼저 시작하자 그게 ‘길’이 돼서 다음 사람이 따르고, 또 다른 사람이 따르게 됐다. 그 결과 비닐이 들어있어야 할 박스엔 개똥이 잔뜩 들어있게 됐다.


개를 기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놀아줘야 하며, 가끔 병원이나 미용샵에 데리고 가야 한다. 모두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견주가 되기 위해선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자기 개의 똥은 자신이 치우는, 최소한의 펫티켓은 지켜야 한다. 견주 한 사람의 비양심이 숱한 견주들을 욕 먹이고, 개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한 가지 더. 개산책을 할 때는 제발 개만 보자. 개똥이 어디로 투척되는지를 알아야 펫티켓도 지킬 수 있으니까.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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