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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음식이 별미로…광주 육전 맛 서울서 느끼고 싶다면

한겨레

광주광역시 '연화'의 육전. 이윤화 제공

어린 시절, 1년에 열두번 제사가 있던 종갓집에서 크다 보니 어머니의 제사 준비를 늘 돕곤 했다. 어머니는 ’철(鐵)질’만 끝내면 제사 일의 절반은 끝났다고 안심하셨다. 철질은 솥뚜껑 같은 무쇠에 부침개를 지지는 것을 뜻하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궁중요리의 ‘전철’(煎鐵)에서 유래된 표현인 듯하다. 그리고 충청도인 우리 집 제사 ‘철질 음식’에 육전은 빠짐없이 들어갔다. 다진 소고기, 으깨어 물기 뺀 두부와 갖은양념을 섞은 반죽을 동글 납작하게 빚어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서 지져낸 음식이 바로 우리 집에서 육전이라 부르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알던 육전의 형태에 커다란 혼란이 생겼다. 보편적으로 육전이라 불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음식이었고 내가 알던 육전은 육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 때 만들던 우리 집 육전이 ‘동그랑땡’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괜스레 격하된 것 같아 기분이 좀 언짢아지기도 했다.


그러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육전의 진수를 전라도 광주에서 맛보게 됐다. 얇게 저민 소고기에 달걀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구워주는 스타일이다. 바로 부쳐 뜨끈뜨끈하고 기름을 잘 머금은 육전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빚었던 우리 집 육전, 일명 동그랑땡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고기 요리였다. 동그랑땡을 만들기까지는 갖은 재료 손질로 반죽을 만들고 달걀 옷을 입혀 두툼한 고기를 알맞게 익혀내야 하기에 상당히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단순하게 부쳐낸 육전이 발산하는 원물 자체의 맛과 결이 주는 감동으로 그간의 노고가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라도 육전, 특히 광주 지역에서는 외식의 대표적인 단품 메뉴로 자리 잡으면서 차별화된 퍼포먼스와 한상차림을 선보인다. 지글지글 빗소리와 닮은 전 부치는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 고소하게 익어가는 육전은 먹기 전부터 오감을 자극하니,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데판야끼’(철판을 쓰는 일본 요리법) 식당 못지않은 기대감을 심어준다. 상차림도 꽤 푸짐하다. 싱싱한 쌈 채소가 든든하게 올라가며 가볍게 양념한 파무침, 전과 곁들일 고소한 곡물가루, 묵은지, 나물, 물김치 등 밥상의 풍성함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거기에 육전만이 아닌 전복, 낙지 등 여러 가지 해산물 전 종류의 선택지도 넓다. 제사 음식으로 치부되던 육전을 외식에 응용하니 즉석의 묘미와 다양한 식재료 원물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별미 음식으로 진화하게 된 것.


또한 광주의 육전은 외식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인 응용 소재가 됐다. 육전에 파무침 조합은 기본이었고, 다양한 장아찌와의 어울림을 소개하기도 하고, 면 전문점에서 다소 허전한 한 그릇 밥상을 당당하게 채워줄 곁들임 메뉴로 등장했으며, 주점의 단골 안주로도 안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광주를 떠나온 육전은, 프라이팬을 고객 테이블에 들이밀어 부쳐주는 퍼포먼스를 하기엔 인력과 전 부치는 노련함의 부족으로 대개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광주의 육전 전문점에서는 마블링도 있고 씹는 맛이 좋은 아롱사태 부위를 많이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기름기 적고 모양 변형이 적은 우둔살, 홍두깨 또는 안심 등을 사용한다. 돼지고기 육전도 있다. 육전은 단순하지만 그 하나로 펼쳐지는 외식 상품으로서의 다채로운 변주는 무한하다. 광주에 가면 노포의 즉석 부침 육전집을 가보길 바란다. 서울에서는 주방에서 만들지만 현지 못지않은 맛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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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을 포함한 ’연화’의 상차림. 이윤화 제공

연화


바로 부친 싱싱한 육전의 맛은 말할 나위 없다. 육전이 돋보이는 한상차림이 꽤 매력적이다. 다양한 쌈 채소, 멸치젓, 풀치, 코다리찜, 묵은지 등이 상에 깔리고 전을 찍어 먹는 곡물가루와 가볍게 무쳐진 파무침도 품위 있다. 육전 후 먹는 조기탕도 명물. 창밖의 운천저수지는 시원한 눈요기다.

광주광역시 서구 마륵복개로 147 아트빌/062-384-1142/육전 3만원, 2인부터 주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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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무침이 올라간 ‘단비’의 육전. 이윤화 제공

단비


정갈한 일품 한식 요리가 많아 밥과 술을 곁들이기 좋은 어른용 맛집. 인기 메뉴인 한우 육전은 정갈하게 부쳐 나와 가운데 얹어진 파무침과 곁들이기 제격이다. 계절 물김치를 비롯해 보리굴비, 우럭탕, 세꼬시 등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수준이 높으나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0길 21-12/02-797-8375/한우육전 5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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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육전’의 육전.

광주육전


막걸리와 육전을 즐기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사각의 나무틀 위에 나오는 즉석 육전, 파채 무침, 쌈채, 명이나물 절임 등으로 구성된 세팅이 만족스럽다. 영동시장 안에 있으며 젊은이들로 늘 왁자지껄하다.

서울 강남구 학동로4길 45/02-544-6007/광주육전 3만3천원

다이어리알 대표·‘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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