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주는 요리…2만원짜리 무쇠솥의 마법
그걸 왜 해? 더치오븐 요리
지난 6월30일 회사 워크숍 때 만든 더치오븐 갈비찜. 더치오븐으로 만든 갈비찜은 숯향이 입혀져서 일반 갈비찜과 바베큐의 중간 맛이 난다. 윤영호 제공 |
솥 모양의 용기를 소개하다니. 별의 별 취미를 선보이는 이 칼럼에서 더치오븐으로 요리하기를 소개하는 게 좀 어색하기는 하다. 그런데 더치오븐을 실제 취미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계적으로는 국제더치오븐사용자모임(IDOS)이 존재하고, 옆 나라 일본에서는 일본더치오븐진흥회라는 조직이 운영돼 관련 요리를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주변에서 이 검은 솥을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더치오븐을 사용하기에 딱 좋은 캠핑장에서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게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만 있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도 관련 내용이 많지 않고, 유행 지난 옛날 캠핑책에서만 사용법과 조리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유튜브 대신 중고 책방을 뒤졌고 캠핑 때마다 새로운 더치오븐 요리에 도전하고 있다. 유행이 금방 지나가는 캠핑 문화에서 지금은 유행이 지나버린 검은 솥. 하지만 한번 사서 길을 들이면 100년 넘게 대를 이어 쓸 수 있다는 맛있는 마법의 솥, 더치오븐을 소개한다.
조지 워싱턴 어머니의 유언
더치오븐은 무쇠로 만든 서양 솥이다. 이름의 유래는 두가지가 있다. 16세기 식민지 시대, 정복자들을 따라 신대륙으로 이주한 가난한 유럽 이민자들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하고 튼튼한 솥을 원했고, 그걸 네덜란드 상인들이 팔기 시작해서 더치오븐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 또 다른 설은 서부 개척 시대 카우보이 중의 한 명이었던 더치 오릴리라는 사람이 모닥불에 쓰기 좋은 솥을 개발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 두 가지 설 중 뭐가 맞는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다만 어느 기원을 따르든 요리하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음은 알 수 있다.
조미료를 구하기 힘든 야외에서도 맛을 낼 수 있을 것, 물 없이도 요리할 수 있을 것,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카우보이들도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등등의 조건을 충족시킨 더치오븐은 서부 개척시대 가정에선 한국의 가마솥처럼 집안의 중요한 재산이 되었고 대를 이어 사용했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도 더치오븐 처리를 유언으로 남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더치오븐 요리가 어떤 맛이냐고 물을 때 나는 “할머니가 해주던 가마솥 밥맛 기억 나니?”라고 되묻는다. 가마솥과 더치오븐에 사용되는 철은 스테인리스가 아닌 무쇠인데, 여기에 맛의 비밀이 있다. 무겁기도 무겁지만, 열 효율이 좋지 않아 연료비가 많이 드는 무쇠는 쉽게 달궈지지 않아 오랜 시간 가열해야 비로소 음식이 익기 시작한다.
달궈진 뒤에는 일정한 온도를 오래 유지한다. 장작이 타고 난 숯불에서 천천히 음식을 익히면, 고기의 육즙과 부재료인 채소, 과일의 과즙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따로 물을 넣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무수분 조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수분 조리를 하면 물 한 방울 넣지 않는 원재료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더치오븐의 솥뚜껑도 맛의 비밀을 품고 있다. 묵직한 뚜껑은 가열되며 발생하는 김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한두시간 가열로 발생하는 풍부한 육즙과 과즙이 증발하지 않기에 오래 익힌 찜요리 특유의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뚜껑 열면…“생각보다 괜찮네?”
더치오븐 요리가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식당에 가면 있는 맛이고, 전문가의 요리만큼 훌륭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더치오븐을 소개하는 이유는 음식이 익는 동안 특별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회사에서 부서 워크숍을 떠났고, 가는 길에 “더치오븐으로 갈비찜을 하겠다”고 팀원들에게 공언했다. 그 때 평소의 나의 행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말이라면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후배 한 명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선배가 갈비찜을? 비싼 고기 버리려는 건가?’
장작에 불을 붙일 때부터 더치오븐 요리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던 후배들은 갈비찜이 생각보다 그럴싸하자 새삼 놀라는 눈치였다. 홍현지 제공 |
하지만 더치오븐을 이용하면 조리법이 간단하다. 냉동 고기 사서 핏물 빼고, 밑에 대파 넉넉하게 깔고, 고기 넣고. 양념장 만들기 귀찮으니깐 마트에서 갈비찜 양념 사서 넣어주고. 워크숍 당일에 냉장고에 있는 채소 좀 들고 와서 중간에 투하하면 끝.
“야. 나는 주방에서 채소 좀 다듬을 테니까 너희가 일단 불 좀 붙이고 있어봐.”
도시에서 태어나 아궁이 한번 구경한 적 없는 도시 남녀가 능숙함을 보일 리도 만무하며, 하필 비가 억수같이 온 다음날이라서 젖은 장작은 정말로 불이 잘 붙지 않았었나 보다. 땡볕 아래서 네 명의 도시인들이 매운 연기 맡으며 불을 붙여 놨더니 뒤늦게 나타난 선배라는 인간은 이 불엔 요리를 할 수 없으니 숯이 될 때까지 기다리란다.
짜증이 난 후배에게 요리 완성까지는 약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결국 이만 저만 욕을 들으며 원래 캠핑이란 게 이렇다는 둥, 시간이 음식을 만든다는 둥 궤변을 늘어 놓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배는 점점 더 고파졌다. 시간이 지나고, 과연 음식이 되었을까 하며 모두가 불신의 눈빛을 보이는 가운데 더치오븐을 열었을 때, 어? 생각보다 비주얼이 괜찮네. 일단 그 다양한 표정을 살피는 재미. 어머니가 해주시거나 식당에서 사 먹던 갈비찜을 함께 완성했다는 쓸데없는 뿌듯함. 간이 좀 약한가? 슴슴하니 맛은 괜찮네. 야~ 고기는 진짜 연하다. 한마디씩 품평하며 나눠 먹는 재미.
만약에 더치오븐 요리가 계량도 복잡하고 어려웠다면 소개를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데 웬만하면 맛있고 보기에도 그럴 듯 하니까 소개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팁은, 관심이 생겼더라도 웬만하면 새 거 사지 말고 온라인 중고마켓에 더치오븐을 검색해 보시길. 유행이 지나 창고 깊숙이 박혀 있던 더치오븐이 아주 싼 가격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런 물건 잘 골라서 대를 이어 가며 100년을 쓰시길. 나도 중고마켓에서 2만원에 샀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