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잠시만 ‘헤어질 결심’…시간 제한·알림 끄기·단절 수행
커버스토리 디지털 디톡스
우리나라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23.6%…집중력 저하
스크린타임, 앱 사용시간 설정…알림은 정해진 시간에만
‘디지털 기기 격리’ 서비스 성행…“서서히 줄이는 게 바람직”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의 북스테이 ‘모티프원’ 숙소 모습. 조서형 제공 |
올해 여름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접한 책이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 출판). 지난 4월28일에 발행된 이 책은 석달 만인 7월 말까지 12쇄, 8만권 이상 팔렸다. 나는 에스엔에스(SNS)에서 ‘남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편이지만, 내 집중력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 책의 화제성은 계속 이어지는 듯 보였다.
지난 8월, 인도 여행의 막바지에 히말라야산맥 근처 라다크 지역에 머물렀다. 라다크의 도시 ‘레’에서 승합차를 빌려 4박5일의 투어 코스를 예약했다. 커다란 바위산 사이 가늘게 난 길을 따라 달렸다.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내렸다. 씻고 저녁을 먹은 다음, 낮에 다녀온 장소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친구의 댓글에 답하면서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봤다. 매일 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여행 3일차에 엔진 고장으로 차량이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민가에 숙박을 부탁했고 마을은 통신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3일 동안 계획에 없던 ‘디지털 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인터넷 끊긴 3일, 나 혼자 초조
이내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급한 업무 연락이 왔을까 불안했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어 답답했다. 인스타그램을 볼 수 없어 심심했다.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휴대전화부터 꺼냈다. 갤러리를 열어 사진을 구경했다. 다시 책을 읽으려다 이번엔 내려받아 온 영화를 재생했다. 책 읽기가 어려웠다. ‘대학생 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대여해 독서왕 상을 받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책 읽는 일이 행복했는데….’
도시로 돌아와 3일 만에 와이파이가 연결됐다. 애인에게서 잘 지내고 있냐는 메시지가 와 있을 뿐, 나머지는 단체 메신저 방에서의 수다와 광고성 문자들이었다. 사람들이 내 부재를 궁금해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사흘을 즐기지 못하고 ‘디지털 단절’을 고통스러워했다니…. 아무 일도 없었던 디지털 세상과 단절됐다는 상황에 초조해하며 책도 읽을 수 없었던 내 모습에 당황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떠올랐다. 누구냐, 내 집중력을 도둑질한 녀석이.
“넌 네가 뭘 놓칠까 봐 무서운 거야. 그래서 내내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바로 그게 반드시 뭔가를 놓치는 방법이야. 너는 단 하나뿐인 네 삶을 놓치고 있어!” 책의 프롤로그에는 저자가 함께 여행 중인 조카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손바닥 위 액정에 갇혀 여행을 놓치고 있는 조카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23.6%로 조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해 9~11월 1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보고서)다. 국민 4명 중 거의 1명꼴로 스마트폰 의존이 심하다는 결과로, 2018년(19.1%)에 견줘 4.5%포인트 증가했다. ‘스마트폰 과의존’이란, 과도한 스마트폰 이용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고, 스마트폰 이용에 대한 자율적 조절 능력이 떨어져 신체·심리·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함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말한다.
아이폰에서 스마트폰 및 특정 앱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스크린타임’. |
이러한 ‘스마트폰 감옥’에서 해방되고자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디톡스 다이어트처럼 일정 기간 디지털 기기를 멀리해 ‘과의존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것이다. 직장인 전도연(32)씨는 ‘스크린타임’(스마트폰이나 특정 앱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아이폰 기능)을 활용한다. “평소에 에스엔에스를 들여다보거나 ‘틴더’(데이트 앱) 프로필을 넘기며 시간을 보냈어요. 배달 앱을 켜서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구경하고 쓸데없는 채팅을 계속했고요.” 그는 스크린타임으로 하루 배달 앱 사용 시간을 1분으로 설정했다. 시간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스크린타임 비밀번호는 전씨가 부탁한 지인만 알고, 전씨 본인은 모른다. 물리적으로 제한을 두어 배달 앱 사용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에스엔에스에는 2시간의 제한을 뒀다. 업무용으로 필요할 때가 있어 더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알고리즘을 의식적으로 관리해요. 저는 강아지가 나오는 영상만 누르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이렇게 하면 추천 탭에 동물 관련 게시물만 떠요.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더라도 연예인 가십이나 의미 없는 카드뉴스에 시간을 덜 낭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서울 마포구 ‘고독스테이’에는 디지털과 거리를 두기 위한 편지지, 만년필, 모래시계, 싱잉볼, 엘피(LP), 고독을 주제로 한 책 등 ‘아날로그 소품’이 마련돼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직장인 최선우(35)씨는 작년 연말 아예 열흘간 모든 자극에서 벗어나길 시도했다. “전북 고창의 ‘붓다선원’에 가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수행을 할 수 있어요. 수행한 지 사흘쯤 지났는데 불안이 극에 달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와 있을 것 같고,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어요. 스님에게 그만두고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스님의 설득에 열흘을 꼬박 채우고 나온 그는 ‘멈추는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외부와 차단을 원해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한번의 디지털 디톡스가 생활을 바꾸진 않지만, 멈춰봐야 언제든 멈출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거 같아요.” 도시로 돌아온 그는 여러 방법으로 디지털과 거리를 둔다. 수시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낀 그는 알림 기능 전체를 꺼버렸다. 대신 아이폰의 ‘시간 지정 요약’ 기능을 사용했다. 그는 오전, 오후, 저녁 하루에 딱 3번만 알림을 모아서 받는다.
최근 코드쿤스트도 ‘나 혼자 산다’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10시간 동안 금욕상자(일정 시간 열리지 않는 장치)에 넣고 디지털 기기 없는 하루를 보냈다.
스마트폰 중독, 약물과 비슷
나도 행동으로 옮겼다. 지난 8일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의 북스테이 ‘모티프원’을 찾았다. 책에 빠져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휴대전화를 지참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난 도착하자마자 차에 휴대전화를 넣고 문을 잠갔다. 자발적으로 온전히 스마트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1만4천여권의 책이 있었고 창밖에는 울창한 나무가 있었다. 차를 마시며 ‘도둑맞은 집중력’을 마저 읽어볼 생각이었다. 여전히 집중이 어려웠다. 여러 책을 번갈아 읽다가 잡지와 만화책으로 겨우 디지털 디톡스 의도를 살리는 수준에서 1박2일을 마무리했다. 이미 디지털 중독에 빠진 듯한 나는 독서와 같은 이전의 일상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박인경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원에게 디지털 중독의 위험성을 물었다. “중독이란 정신적·신체적인 해를 끼칠 수 있음에도 행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병적 상태입니다. 인간의 뇌는 중독에 매우 취약해요. 디지털 콘텐츠는 보상회로를 자극해 쉽게 보상을 줍니다. 특히 쇼트폼 콘텐츠는 ‘디지털 마약’에 빗댈 만큼 자극이 강하고 쾌감이 빨라요.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시스템을 망가뜨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의지해 더 큰 자극을 찾고자 하죠.”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절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약물 중독의 신경생물학적 변화와 유사하다. 현실의 정상적인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감소하며 감정과 충동 통제가 잘 안된다. “게다가 뇌의 회색질과 백질 섬유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 인지 기능의 저하를 초래합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거죠.”
디지털과 거리를 두고 북스테이를 하게 되면 예전처럼 책을 잘 읽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도둑놈은 스마트폰이었어!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는데, 최적의 독서 환경에서도 책에 몰입하는 일은 어려웠다. 박인경 연구원의 말을 듣고 나니 스마트폰이 아닌 나의 ‘디지털 중독’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히지 않는 책을 덮고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를 유튜버 ‘돌돌콩’이 지난 7월 인터뷰한 영상을 찾아봤다. “대부분 이걸 보고 있는 사람들이 집중력 저하가 당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겁니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 나는 역시 의지박약인가 봐’라고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즉 이건 ‘당신에게 가해진 일’이란 걸 알게 되면 우리는 목표를 분명히 알고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반격을 할 수 있습니다.” 화면 속에서 요한 하리가 말했다.
직장인 김영윤(31)씨는 최근 스마트폰 기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온전한 삶을 되찾았다. 집중에 방해되는 앱을 삭제하고 스크린타임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했다. “저는 생활이 통제되지 않기 시작하면 앱을 지워요. 인스타그램, 유튜브는 물론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까지 전부요. 예전 피처폰처럼 사용하는 거죠.” 스마트폰을 제한한 자리엔 밀린 집안일과 취미생활이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급한 일은 전화나 문자로 받고, 메신저는 다음날 컴퓨터 버전으로 확인하면 되니 불안하지도 않다. 김씨는 ‘고독스테이’도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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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억제하면 ‘요요’
무인으로 운영되는 고독스테이에서는 3시간 동안 디지털과 단절된 경험을 할 수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조서형 |
고독스테이는 대표 김지영(35)씨가 템플스테이에서 깨달은 바를 적용해 만든 공간이다. 2019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스마트폰만 멈춰도 세상과 연결이 끊어져요. 대신 나와 더 연결될 수 있죠. 고독스테이는 세시간 동안 혼자가 될 수 있는 서비스예요.” 공간은 무인으로 운영된다. 먼저 입구에서 새장에 스마트폰을 넣는다. 미션 카드를 따라 음악을 듣고, 향을 피우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몇년간 저도 스마트폰 사용 통제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서랍에 넣기, 다른 방에 두기, 타이머 맞춰놓고 사용하지 않기, 금욕상자 등. 오히려 금지가 욕구를 자극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 그가 찾은 방법이 고독스테이에 녹아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몰입을 통해 채워지는 느낌을 알게 되면, 자발적으로 디지털과 멀어지려는 마음이 들어요. 일상이 스마트폰에 잠식되지 않길 바라는 나의 절실함도 알아차릴 수 있고요.”
템플스테이에서 힌트를 얻어 고독스테이의 문을 연 김지영 대표.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김지영 대표 역시 고독스테이를 자주 활용한다. “남의 욕망을 화려하게 전시해둔 에스엔에스에서는 자기 욕망을 발견할 기회를 빼앗기기 쉬워요.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비슷한 속도로 빠르게 많이 받아들이니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 되기 마련이에요. 인풋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고유함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디지털과 멀어진 시간 동안 자기다움을 찾아 그를 음미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해요.”
박인경 연구원에게 어떤 방법이 디지털 디톡스에 효과가 있을지 물었다. “뇌의 ‘반동효과’를 알아야 해요. 금지된 충동의 억제가 강화되면 정반대의 욕구가 비례해서 강화되는 일종의 방어기제예요. 다이어트와 같은 원리예요. 무리한 금식을 하다 보면 폭식을 하게 되는 것처럼 디지털 사용을 억제하면 결국 요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디지털을 사용하는 양과 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하죠.” 그는 또한 자연적인 도파민 생성을 유도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내적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가을엔 다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뇌에서 도파민을 뿜어낼 수 있도록 시도하려 한다. 앱 알림을 꺼두고, 캠핑과 트레킹 등 디지털이 차단되는 시간을 늘려나가며.
조서형 지큐코리아 웹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