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밤은 낮보다 맛있다…빵·라멘·파르페 앞 졸음은 멀리 [ESC]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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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유흥가 스스키노에 3500개 식당…호텔 직원 엄선해 ‘맛집 지도’
새벽 2시 라멘집 줄 서고 자정에 디저트 카페 빼곡…‘해장 메뉴’ 인기
상담 통해 가정식 요리, 록 음악 들으며 사케 마시는 개성 만점 식당도
일본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엔 ‘밤을 잊은’ 올빼미족이 반길 만한 식당이 즐비하다. 성인 두명도 지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좁은 골목에 몰려 있는 라멘집부터 달콤한 빵집과 파르페 전문 카페, 삿포로 향토 음식인 ‘징기스칸’ 식당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영업시간이 대부분 늦은 밤이다. 밤 10시께 문 열어 밤새 영업한다. 스스키노 지역에 몰려 있다. 스스키노는 일본 3대 유흥가라 불릴 정도로 ‘밤이 화려한’ 지역이다. 스스키노야말로 야식 여행 천국인 셈이다. 여행이 일상 활력소가 되면서 여행 콘텐츠도 다양해졌다. 야식 여행도 그중 하나다. 대만이나 베트남 야시장이 이들 나라의 대표 여행 상품인 이유다. 일본 삿포로의 야식 여행은 어떤 얼굴일까. 밤을 낮 삼아 야식 여행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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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행 예고하는 ‘해장 파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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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키노 야식 여행 명소는 어떻게 고를까. 3500개 넘는 식당이 경쟁하는 지역에서 말이다. 난감한 일이지만 방법이 있다. 현지인에게서 ‘찐 정보’를 얻는 것이다. 스스키노에 있는 도시관광형 호텔 ‘오모3 삿포로 스스키노 바이 호시노 리조트’(오모3)는 특별한 야식 여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삿포로가 고향인 호텔 직원들이 맛집을 추천한다. ‘오모레인저’로 불리는 이들은 틈만 나면 스스키노에 있는 맛집 탐방에 나선다. 합격점을 받은 식당은 ‘오모레인저’ 지도에 오르는 ‘영광’을 얻는다. 이들은 하루 한두차례 맛집의 역사와 음식의 유래 등을 강연한다. 맛집을 둘러보는 투어도 진행한다. 지도는 호텔 로비에 비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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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11시. 요즘 일본 20대가 열광한다는 파르페 카페로 향했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로지우라 카페’(주오구 미나미6조 니시3초메 다카라6.3빌딩 1층). 자정이 코앞인데, 20대 방문객이 빼곡하다. ‘베리 퍼펙트’(1230엔, 약 1만900원) 파르페를 주문했다. 파르페는 유리잔에 과일·시럽·과자·생크림 등을 추가해 다양한 변주로 맛을 내는 아이스크림 디저트다.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긴 유리잔에 시럽, 아이스크림, 크렘브륄레(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뿌린 뒤 토치 등으로 녹여 막을 만드는 프랑스 디저트), 딸기, 요구르트가 순서대로 담겨 나왔다. 크렘브륄레부터 깨 먹었다. 바삭한 달콤함이 혀를 타고 입성했다. 밀도가 빡빡한 아이스크림 사이로 딸기 여러개가 보였다. 조밀하고 달큼했다. 파르페는 지나치게 달면 혀가 지친다. 단맛이 천천히 퍼지면서 입안을 채워야만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 집의 파르페가 그런 맛이다.
이 카페 파르페는 ‘시메파르페’로 불린다. ‘시메’는 일본말로 ‘마무리’란 뜻이다. 한마디로 흥겹게 ‘한잔 술’ 한 뒤 ‘마무리’로 먹는 파르페란 얘기다. 술꾼들이 넘쳐나는 스스키노가 탄생지란 점은 삿포로 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늦은 밤에 먹는 ‘시메파르페’는 지금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요오드 달걀의 날’, ‘회덮밥의 날’, ‘김의 날’ 등 100가지도 넘는 음식 기념일을 제정하는 일본답게 파르페도 ‘날’이 있다. 6월28일이다. 다만 우스꽝스럽게도 제정 이유가 맛과는 관련이 없다. 1950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 후지모토 히데오가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퍼펙트 게임’(단 한명의 진루도 허용하지 않은 승리)을 달성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어로 ‘완벽’이란 뜻인 ‘파르페’를 차용해 날을 제정했다. 야구에서 유래했지만 사람들은 파르페의 날로 추앙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파르페. 파르페를 앞에 두고 수줍고 어설픈 만남을 가진 추억이 지금 중장년층에 있다. 하지만 음료에 견줘 손이 많이 가는 탓에 파르페는 2010년대 이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곧 한국에 상륙할지도 모른다. 도쿄 빙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오모레인저’ 파르페 지도에는 로지우라 카페를 포함해 ‘베리베리 크레이지’, ‘스위츠 바 멜티’, 피스타치오와 소금 캐러멜 파르페로 유명한 ‘파르페, 커피, 사케, 사토’ 등 10곳이 소개돼 있다.
된장 라멘의 정수를 맛보다
라멘은 일본인들에게 ‘솔(영혼) 푸드’다. 한국인의 ‘솔 푸드’ 평양냉면이 면의 끊김 정도와 국물의 농도가 맛의 중요한 잣대라면, 라멘은 면보다는 ‘국물’에 방점이 찍힌 음식이다. 반죽할 때 넣는 효모나 색다른 재료로 특색 있는 면을 만들 순 있지만, 곁가지일 뿐이다. 일본 라멘이 크게 국물 중심으로 쇼유라멘(간장 베이스), 시오라멘(소금 베이스), 미소라멘(된장 베이스)으로 나뉘는 이유다. 하지만 기실 이런 교과서적인 분류도 쓸모없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라멘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라멘의 세계는 넓고 다채롭다. 쇼유라멘만 해도 돼지 뼈, 닭 뼈, 갖은 채소 등 주인장이 우릴 때 넣은 추가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더구나 일본 간장 업체는 1500개가 넘는다. 업체마다 간장 맛이 다르다.
삿포로는 미소라멘의 탄생지다. 돼지기름(라드)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일본 최북단에 있는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추운 지방이다. 기름은 추위에 식을지 모르는 라멘 온도를 지켜주는 용도다. 라멘 골목으로는 원조 격인 ‘라멘요코초’(주오구 미나미5조 니시 3-6 엔그란데빌딩 1층)가 가장 유명하다. 17개의 라멘집이 모여 있다. 골목 들머리에 집마다 매운맛 정도, 토핑 종류 등을 정리한 안내판이 있다. 오모3 숙박 고객에게는 ‘하프 사이즈’ 라면 3그릇을 먹을 수 있는 티켓이 제공된다. 대부분 새벽녘까지 영업하기에, 이 역시 ‘해장음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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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레인저’ 라멘 지도에는 이 골목 말고도 8개의 라멘집이 소개돼 있다. 그중 하나인 ‘멘야스즈란’(주오구 미나미5조 니시4초메 064-0805)을 찾았다. 새벽 2시. ‘노렌’(문 앞에 친 발)이 쳐져 있었다. 노렌은 독특한 일본 식문화를 상징하는 천이다. 과거 노렌이 더러우면 장사가 잘되는 식당이란 속설이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서 더러워진 손을 노렌에 닦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업 중’을 알리는 알림판 구실을 한다. 가게 메뉴 정보도 실린다. ‘멘야스즈란’ 노렌에는 ‘사가미야 제면’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국물은 주인장이 직접 우리지만 면은 삿포로 노포인 ‘사가미야 제면’에서 만든 것을 쓴다는 알림이다.
문 열고 반지하 업장에 들어갔다. 내심 놀랐다.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10여명이 나란히 앉아 먹을 수 있게 된 바 형태의 좁은 구조였다. 라멘자판기에 돈을 넣고 첫번째 줄에 있는 첫번째 메뉴 버튼을 눌렀다. 주인이 일본 맥주 한병과 잔을 줬다. 그사이 긴 줄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은 길어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라멘이 나오지 않았다. 맥주 주문 버튼을 라멘 주문 버튼으로 착각한 것이다. 어이없는 실수지만 이 또한 여행의 묘미다. 다시 주문하자 절인 죽순, 양파, 얇게 저민 쇠고기 등이 올라간 미소라멘이 등장했다. 그 흔한 토핑 달걀(노른자를 덜 익힌 달걀 반개)은 없었다. 하지만 미소라멘의 정수를 맛봤다. 달보드레하고 엇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벽과 천장이 낡고 더러워도, 정체불명의 음악이 나와도, 조명이 어두워도, 꽃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주인이 어색해도, ‘멘야스즈란’의 라멘은 또 찾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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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의 빵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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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빵’ 맛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빵집 ‘요루노시게팡’(주오구 미나미5조 니시6초메 제5게이와빌딩 1층)은 저녁 7시 이후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영업한다. 소금빵과 카레빵이 유명한 ‘테이크아웃’ 빵집이다. 새벽 3시께 빵집 앞에는 먼저 빵을 사 가게 밖에서 먹는 손님이 여럿 있었다. 연대의 눈빛을 교환했다. ‘새벽에 빵집 온 별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통했다. 카레빵을 반으로 갈랐다. 그저 카레 맛 나는 크림이 들어갔거니 했지만, 뜻밖에 밥 비벼도 될 정도의 카레가 빵 사이로 쑥 튀어나왔다. 작은 감자 알맹이도 있었다. 카레 특유의 향신료 향과 짭조름한 맛이 폭신한 빵과 상호 보완으로 작용해 풍미를 높였다. 인기 비결을 알 만했다. ‘밤을 잊은 그대’들의 천국 스스키노의 빵집답다.
‘징기스칸’도 빼놓을 수 없는 야식 메뉴다. 몽골 음식이 아니다. 면직물 생산용 양 사육이 주요 산업이었던 홋카이도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양고기구이 음식이다. 언덕처럼 솟은 불판 가운데에 고기를 굽고 아래쪽 움푹 파인 곳에 숙주·양파·버섯 등을 익혀 함께 먹는 음식이다. 현지인들은 “투구 모양의 불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불판을 자체 제작하는 식당도 있다. 시판용 불판에 견줘 가장자리는 더 두껍게, 가운데는 더 높게 만드는 것이다. 양고기를 천천히 익게 하는 법이다. 감칠맛이 배가된다. ‘오모레인저’ 조사에 따르면 일본 양고기 자급률은 0.7%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주로 수입한다. 사료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지듯이 ‘징기스칸’도 마찬가지다. 아스파라거스를 먹인 양을 으뜸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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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현지인 인기 양고기 맛집 ‘히쓰지’(주오구 미나미6조 니시3초메 6-2 다카라63빌딩 1층)를 찾았다. 밤 9시였다. 가게 앞에 설치된 커다란 양 조형물이 반겼다. 등심·안심·어깨살·혀 등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머튼’(다 자란 양)에서도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고급 식당일수록 1년 미만인 어린양 ‘램’을 재료로 쓴다. 연어 알, 성게 등과 섞어 먹는 육회가 독특하다. ‘오모레인저’ 추천 식당에는 ‘다루마’ 체인, ‘징기스칸 마루타케’, ‘스스키노 징기스칸 유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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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야식 여행의 백미는 ‘스스키노 제로번지 지하 음식거리’(주오구 미나미6조 니시4초메 11-1) 투어다. 스스키노 중심에 있는 낡은 5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는 30여개 식당을 탐방하는 여행이다. ‘제로번지’란 이름은 지하라 붙여졌다. 낡은 폐공장 같은 계단을 내려가자 어둑한 긴 복도가 ‘타임 슬립’(시간여행) 영화처럼 나타난다. 이보다 더 기기묘묘하며 그로테스크한 ‘한 컷’은 없다. 어둑해진 밤에만 연다. 생경한 풍광에 공포심이 스미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꽤 근사한 식당과 술집이 많다. 33㎡(10평)도 안 되는 공간에 주인장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맘껏 펼쳤다. 손님과 상담을 통해 소박한 가정식을 만드는 ‘아지도코로 기타사쿠라’, 데운 사케를 록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날씨가 개는 집’, 세계 일주를 한 주인장이 솜씨를 발휘하는 커피집 ‘0번지 커피점’, 창업 17년 역사의 홋카이도산 메밀요리집 ‘주월암’ 등 집마다 소복하게 쌓인 스토리만 들어도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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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메뉴는 아니지만, 삿포로 여행길에 꼭 맛봐야 할 음식에 ‘수프 카레’가 있다. 수프처럼 흥건한 카레 국물과 감자·당근·고기류·해산물 등의 건더기를 함께 먹는 음식이다. 국물과 건더기를 따로 익히는 게 특징이다.
미식의 본질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키노 야식 여행에서 만난 음식들은 ‘맛있게 먹게’ 하는, ‘요리를 대하는 태도’를 점검하게 하는 요술을 부린다.
삿포로(일본)/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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