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가장 큰 적은 ‘불면에 대한 두려움’
수면
수면 일반의약품·건강기능식품 찾는 2030 늘어가
일반의약품은 회복을 방해해 깬 뒤 개운치 않아
젊은 성인들은 불면증과 수면부족을 혼동하기도
‘○시간 이상 꼭 수면’ 등의 정보는 걸러들어야 해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대한민국 2030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말인 ‘엔(N)포세대(‘엔’가지를 포기하는 세대)’. 그 엔(N)에는 ‘잠’이 빠질 리 없다. 바쁜 생활 리듬 속에서 고단한 현실을 살아내느라 그들은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잠’을 포기한다. 늦은 밤, 자의로 타의로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이런 생활주기에 익숙하게 지내다, 스스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이 들면, 검색을 시작한다. ‘잠 잘 오게 하는 약’, ‘숙면 건강기능식품’.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수면 상태에 대해 자가진단을 하고 약 먹기를 반복하는 삶,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전문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예민해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거 같고, 병원의 약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가끔 약국에 가 ‘잠 잘 오는 약’을 달라고 한다.” (직장인 김희연씨·23살) “건강기능식품 직구 앱으로 마그네슘을 사서 먹고 있다. 숙면에 도움을 준다더라. 건강기능식품이니까 부작용 걱정은 별로 안 한다.”(프리랜서 주미선씨·31살)
‘습관성 없는 수면 유도제’, ‘푹 자는 것이 건강의 시작’ 수면 관련 의약품의 포장지에 쓰인 말에 혹한다. 건강기능식품은 ‘약’의 지위가 아니다 보니 진입 장벽이 더 낮다. 건강한 잠에 대한 관심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2030 세대는 출중한 검색 능력을 발휘해 더욱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2030 세대는 수면 장애를 유발하는 병이 없는데도 과도하게 정보를 찾고, 그 정보를 실제로 적용해 불면증을 만성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잘 자기 위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수면에 해가 된다.” 전홍준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수면 리듬을 되찾으려 노력하느라 수면유도제를 가끔 복용하고 있던 기자는 잠시 멍해졌다. ‘관심이 독이 된다고?’ 전 교수는 “불면증은 3가지 요인이 상호작용을 하며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지속 요인’이 있다. 대표적인 게 ‘자려고 과도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보를 찾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먹어서 일시적 불면증을 만성적인 수면 장애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민경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도 같은 지점을 짚는다. “잠을 잘 못 자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잠을 못 자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잠과 관련한 착각 또는 오해도 잘못된 자가진단과 자가 처방을 불러온다. 주민경 교수는 “자는 동안 뇌가 꺼진다고들 생각한다. 수면 중에도 뇌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이게 회복과 관련한 프로세스여서 뇌가 오히려 잘 돌아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수면위생(잠자기 위한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하기에 앞서 약을 손쉽게 먹는 것을 우려한다. “항 히스타민계의 일반의약품 진정제나 수면 유도제는 감기약을 먹고 졸리게 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이런 의약품은 원칙적으로 자는 동안 정상적인 수면 프로세스와 뇌의 활동을 방해한다”고 주 교수는 덧붙였다. 전홍준 교수는 ‘수면 부족’과 ‘불면증’을 혼동하는 것을 경계했다. “젊은 성인들은 노인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주기 타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출근과 등교 등 사회적 환경은 아침형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사회적 리듬과 개인의 일주기 리듬이 맞지 않아 생기는 수면 문제가 젊은 성인에게 흔하다”고 말했다. 잠이 부족한 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고, 카페인 때문에 쉽게 잠자지 못하는 것을 불면증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잠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해선 두 전문가의 의견에 약간의 온도 차가 있다. 주민경 교수는 “나도 불면증이 있어서 건강기능식품, 별 거 다 먹어봤고, 지금도 가끔 먹곤 한다. 그런데 건강기능식품마다 섭취해도 괜찮은지 여부는 다 다르다. 엄청난 양을 먹어도 문제가 없는 것도 있지만, 부작용이 있는 것도 있다. 건강기능식품을 가려서 먹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 효과가 사람마다 들쑥날쑥하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전홍준 교수는 단호하게 우려를 나타냈다. “건강기능식품은 정상인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목적이다. 지금도 건강한데 조금 더 활력 있었으면 좋겠는 사람이 쓰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은 전혀 없다”고 전 교수는 밝혔다.
잘 자기 위해서는 낮에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 박미향 기자 |
그렇다면, 약이나 건강기능식품 없이 건강한 수면 또는 수면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과도한 노력과 관심을 줄이라는 도움말은 실천에 옮기기 참 쉬울 것 같은데, 도리어 가장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홍준 교수는 잠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증폭시키는 정보들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자야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꼭 잠을 자야 한다 같은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 수면에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병원을 찾는다. ‘8시간을 자야 건강하다는데 나는 7시간밖에 못 잔다’는 식이다. 충분한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마치 칼로리 같은 것이다. 수면 시간대도 사람마다 다르다. 정해진 시간은 전혀 없다.” 주민경 교수는 수면 장애 치료의 하나인 ‘인지행동 치료’의 한 방법을 소개했다. “‘하룻밤 정도 안 자도 된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스스로 세뇌하는 거다. 그리고 2030 세대인 경우 잠 좀 설치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잠을 못 자면 아무 일도 못 할지 몰라 걱정을 한다. 그런데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잠을 못 잘 것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고, 불면의 두려움을 이기기 시작할 수 있다.”
수면
잠자는 일. 의학적으로는 피로가 쌓인 뇌를 회복해주기 위한 생리적 의식상실 상태. 폭염·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숙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최근 기능성 침구·수면카페 등 ‘슬리포노믹스’(수면산업)가 뜨고 있다. 아이티업계도 이에 뒤질세라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 제품을 내놓는 중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