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내 가슴에’ 안재욱은 한류의 시작이자 사회현상이었다
[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⑩ <별은 내 가슴에>
차인표 제대 이후 복귀작 ‘화제’
MBC, 최진실 캐스팅에 사활 걸어
쓸쓸하고 고독한 강민 캐릭터
등장하자마자 ‘대형 스타 탄생’
시청자들 성화로 결말까지 바꿔
‘강민 따라하기’ 열풍, 안재욱 신드롬
“에미 잘 둔 것도 실력” 대사 소름
‘여적여’ 구도 고아 편견 이젠 불편
사실상 첫 한류드라마·1세대 한류 스타
안재욱 중 콘서트에서 ‘떼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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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기 좋은 날씨군.” 지난 3일 시작한 <티브이엔>(tvN) 수목드라마 <마우스> 1회를 본 이들은 분명 악 소리 한번 질렀다. 평소엔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남자가 알고 보니 상위 1% 사이코패스 프레데터(약탈자)라니. 연쇄살인도 모자라 머리를 가져가는 ‘헤드헌터’. 범행이 발각되는 순간 표정이 바뀌며 “에이씨” 하는 말투에서조차 잔인한 본성이 느껴진다. 역대급 캐릭터다. 장르물은 진화하는데 한니발 같은 상징적인 캐릭터가 없던 우리에게 이제 한서준이 나타났다.
한서준이 인상적인 또 다른 이유는 ‘본캐’가 안재욱이기 때문이다. 그는 <짝> <오! 필승 봉순영> <아이가 다섯> 등의 드라마에서 주로 유쾌하고 사람 좋은 역을 맡았다. 특히 24년 전에는 모두의 가슴에서 반짝이던 스타, <별은 내 가슴에>의 강민이었다. 앞머리를 한쪽만 길러 눈을 가리고, 실크 블라우스를 입은 일명 ‘테리우스 스타일’을 장착하고 감미롭게 노래하며 머리가 아닌 마음을 가져갔다. “사랑했던 너를 잊지 못해~ 부디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가 요즘 다시 <별은 내 가슴에>를 본다면 분명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사랑하기 좋은 날씨군.”
한서준이 역대급 사이코패스라면, 강민은 역대급 사랑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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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방영한 <별은 내 가슴에>(문화방송·16부작)는 차인표의 제대 이후 복귀작이자, 최진실의 출연으로 관심을 끌었다. <문화방송>(MBC)은 차인표를 앞세워 <사랑을 그대 품안에> 열풍을 또 한번 일으키겠다고 각오했다. 최진실과 전속계약을 맺고 있던 <에스비에스>(SBS)가 방송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문화방송 드라마국 간부들이 에스비에스까지 가서 사과할 정도로 사활을 걸었다. 처음에는 이연이(최진실)와 이준희(차인표)가 주인공이었다. 고아원에 있던 이연이는 송여사(박원숙) 집에서 살게 되면서 구박을 받고, 역경을 딛고 디자이너가 되어 재벌 3세 이준희와 사랑하게 될 참이었다. 우리 민은? 이연이의 친구 양순애(전도연)와 연결되기로 했다.
그런데 강민이 등장하는 순간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 반듯하고 단정한 이사님, 실장님 부류의 남자들하고 강민은 또 달랐다. 그는 군 장성인 아버지(오지명)의 반대에도 가수를 꿈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혼이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다니는 아픔이 모성 본능을 자극한다. 클럽에서 도움을 준 이연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된 이후부터 줄곧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남이다. 스타가 되어도 당당하게 이연이를 만나고, 다른 여자들의 관심에 확실한 선을 긋는다. 안재욱은 1997년 당시 마지막 회를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강민의 화려하고 터프한 매력 뒤에 있는 쓸쓸함과 고독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놀랐다. <짝>의 발랄한 대학생한테서 미처 몰랐던 매력이 쏟아져 나왔다. 데뷔작인 2부작 <눈먼 새의 노래>에서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를 연기했던 잔상이 남아 있는데, 같은 사람 안에서 화려함과 남성미가 보이다니…. 특히 녹음실에서 슬픔에 빠져 노래하는 장면(2회)은 화제였다. 직업이 가수다 보니 수시로 노래하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16회 내내 강렬한 매력을 내뿜었다. 평소 꿈이 가수였다는 안재욱은 조장혁의 ‘그대 떠나가도’를 제외한 곡을 직접 불렀다. 1회 시청률 27.2%로 시작해 6회부터 40%를 넘었다. 최고 49%. 등장과 함께 이준희의 친구였던 강민이 주인공이 됐다.
강민에 대한 시청자의 사랑이 드라마의 결말도 바꿨다. 피시통신 시절, 시청자들은 열심히 글을 올렸다. ‘강민과 이연이를 연결해주세요!’ 당시 이진석 피디는 팬들의 요구가 너무 많아 고심 끝에 결말을 바꿨다. 이준희는 옛 연인 소피아(최진실)를 만나러 가고, 이연이는 강민 콘서트에서 사랑을 확인한다. 최진실이 상반된 분위기의 1인2역을 했다. 이연이를 괴롭혀온 송여사 가족은 사업이 망한다. 안재욱이 인기를 끌면서 가장 피해를 본 건 양순애 역의 전도연이다. 가수 데뷔했다가 잘 안되고 고아원에 돌아가는 것으로 비중이 줄었다. 전도연은 이 작품 이후 영화 <접속>이 큰 성공을 거두며 충무로 주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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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내 가슴에>는 당시 감각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한때 ‘비트감’이 90년대 신세대 문화 코드로 떠오르면서 드라마도 구구절절 이야기보다는 빠른 전개로 흘러갔다. 2000년에 방영한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과 불과 3년 차이인데도 <별은 내 가슴에>가 훨씬 생략이 많다. 다르게 보면 괜히 멋 부리는 장면이 많다는 얘기도 된다. 강민이 흰 셔츠를 입고 술에 취해 인파 속을 걷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강민이 밀라노로 출장 간 이연이를 따라가 쪽지에 적어놓고 온 사랑의 메시지도 살짝 간지럽다. “사랑한다. 죽을 때까지!” 그때는 멋있는 유행어가 됐다.
보통 여자 연예인의 패션이 화제가 되는 것과 다르게, 강민 자체가 아이콘이었다. 머리, 의상, 액세서리까지 모든 것이 신드롬을 몰고 왔다. 왼쪽 앞머리만 길게 늘어뜨리고 젤 한통 다 쓴 것 같은 머리 모양을 수많은 남자가 따라 했다. ‘테리우스 스타일’로 불리는 패션도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노타이에 세미풍 정장, 깃이 큰 셔츠를 입었고, 고독한 느낌을 담으려고 모노톤으로 두가지 색을 넘지 않았다. 겉옷은 검은색을 중심으로, 안쪽엔 화려한 셔츠로 조화를 이뤘다. 이렇게까지 유행을 선도한 남자 캐릭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강민은 특별하다.
가수 역을 맡은 안재욱은 노래도 직접 불렀다. 뒤로 코러스를 맡은 양순애 역의 전도연(가운데)의 모습도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
한류 하면 많은 이들이 <겨울연가>를 떠올리지만, 업계에서 최초의 한류 드라마는 사실상 <별은 내 가슴에>를 꼽는다. 1999년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 수출되면서 중국에 한국 콘텐츠 열풍이 불었다. 중국 및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한류’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드라마로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진 안재욱은 최초의 한류 스타다. 안재욱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은 본인들의 노력과 투자로 진출했지만, 난 드라마의 인기로 진출하게 됐다”며 “드라마 관련 행사는 일회성이기 때문에 콘서트를 목표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안재욱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극에서 부른 노래들로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했다. 1997년 1집 ‘포에버’는 가요프로그램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안재욱의 첫 중국 콘서트에서 팬들은 떼창을 했다. 안재욱을 논하는 시험문제도 나왔단다.
<별은 내 가슴에>는 팬들과 함께 만들어갔다. 다른 드라마에 견줘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안재욱은 <한겨레>에 “콘서트 장면은 미리 공지했고, 일반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관객 역할을 맡아 참여했다”고 전했다. 특히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이 드라마의 명장면, 마지막 콘서트도 마찬가지다. 안재욱은 “에버랜드에서 촬영했는데 드론이 없던 시절이니 헬기까지 띄워서 현장의 카메라 여러대와 함께 최대한 끊지 않고 실제 공연처럼 촬영했다”고 말했다.
외제차가 처음으로 협찬을 한 한국 드라마도 <별은 내 가슴에>다. 베엠베(BMW) Z3 로드스터를 극 중에서 강민이 타고 다니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송여사가 안이화(조미령)의 대학 입학 선물로 외제차를 사주는데 역시 베엠베다. 안이반(박철), 이준영(유태웅)은 집안 믿고 흥청망청 술 마시며 논다. 언론에서는 “불황에 방송사마다 경제를 살리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드라마가 지나치게 소비 향락적으로 흐르면서 시청자의 허영심을 자극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 시선에서 보면 오히려 <사랑을 그대 품안에>부터 시작된 ‘캔디형 신데렐라 드라마’ 구조가 더 불편하다. 여자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그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은 재벌이다. 꼭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에 가둔다. <별은 내 가슴에>는 송여사와 딸 안이화에 더해 안이반까지 함께 이연이를 괴롭힌다. 안이반의 경우는 성범죄까지 저지르려고 한다. 한집에 같이 살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그게 너무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등장한다. 3회 강민이 제대하자 아빠가 요정에 데리고 가서 여자와 있게 하려는 장면도 놀라운 일이다.
특히 빈곤하거나 부모 없이 자란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편견 자체가 불편하다. “별 거지 같은 게”(1회), “고아원에서 자라서 그런지 너무 독해”(2회) 등 드라마 내내 이런 심한 말들이 오간다. 물론 송여사와 안이화가 이연이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더 심하게 하는 얘기지만, 만약 리메이크가 된다면 제작진의 감수성부터 확인해야 할 듯하다.
송여사(박원숙·가운데)는 딸 안이화(조미령·왼쪽)에게 취업 관련 얘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에미 잘 둔 것도 실력은 실력이다.” 프로그램 갈무리 |
의외로 선견지명도 있다. 요즘 벌어지는 현실들을 일찌감치 비판했다. 4회에서 안이화는 이연이의 그림을 훔쳐 공모전에 내고 1등으로 뽑히면서 이준희가 이사로 있는 제이에스패션에 입사한다. 회사의 자문위원인 엄마 송여사는 안이화에게 취업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한다. “에미 잘 둔 것도 실력은 실력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그때도 ‘기레기’는 존재했다. 강민이 이연이에게 청혼한 게 질투 난 안이화와 송여사가 기자한테 “강민의 그녀는 재벌 킬러”라며 아무렇게나 꾸며 제보하는데 사실 확인도 안 한 그 내용이 다음날 그대로 기사로 나온다.
그때는 가슴 설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별은 내 가슴에>를 다시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다. 뜻밖에도 한국 드라마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때처럼 세상 떠들썩한 스타 탄생은 언제 또 찾아올까. 안재욱은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인기를 얻은 것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여러 방송에 나와서 “국외에 가서 숨어 있었고, 초심을 찾기 위해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고 했다. 강민이 사이코패스 한서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대를 그렇~게까지 흔들어놨는데, 많은 이들의 가슴속 별이 아직도 빛나고 있다면 아주 가끔은 떠올려봐도 좋지 않을까. 함께 이연이를 추억해도 좋으니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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