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이름없는 의병을 눈부시게 일깨우다
총든 노비·제빵사·인력거꾼…
위기의 나라 구하러 나선 민초들
역사의 주인공으로 재소환
‘신미양요’ 등 고증 논란 딛고
15회 이후 의병 활약 본격 다루며
개화기 주체적 여성 모습 함께
친일·매국 문제 오롯이 새겨
젊은 시청층에 역사의식 심어줘
‘의병 사진’.
30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티브이엔·tvN)이 끝나자마자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른 단어다. 외신 기자가 의병들을 인터뷰하고 단체 사진을 찍는 극중 장면에서, 1907년 영국의 맥켄지 기자와 의병의 실제 대화를 대사로 썼고, 진짜 사진과 비슷하게 연출한 것이 화제가 됐다. 드라마를 둘러싼 수많은 화제거리에서 시청자들은 의병이란 존재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로 ‘아무개 의병’들이 기억되길 바란다”던 김은숙 작가의 바람이 시청자의 마음에 닿았다.
30일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구멍없는 연기, 촘촘한 만듦새, 평균 12%의 높은 시청률, 최소 300억원 수익(추정) 등 다방면에서 결과를 냈지만, 나라를 구하려고 몸 바친 의병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역사 의식을 고취했다는 가치가 가장 돋보였다. 구한말 혼돈의 시대를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결국 ‘아무개’ 의병들이었다. 노비였다가 미군이 되어 조선에 돌아온 유진 초이(이병헌)와 양반집 규수지만 알고 보면 의병 활동을 하는 고애신(김태리)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던 드라마에서 15회 이후 의병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고애신이 포함된 의병들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하고,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총을 들었다. 무장한 일본군 앞으로 질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감내하며 전진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한 누리꾼은 “의병은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그들 역시 얼마나 두려웠을지, 자기 일상을 지키고 싶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한 드라마 작가는 “핵심인물들 위주였다면 이런 애끓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민초의 힘을 부각한 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라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의병이란 존재가, 우리네 역사가 어려움에 겪을 때마다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던 사실상 역사의 주인이라는 걸 그려내면서, 거기에 개화기와 여성의 문제를 담는 시도를 했다”고 평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본래 남아 있는 의병 사진 한장에서 시작했다. 1930년대 항일 운동을 하던 이야기는 많지만, 1905년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기 전 항거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응복 피디는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신미양요를 기준으로 의병에 대해 조사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실제 기록을 찾아보고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했다. 의병들을 기억하는 만큼, 친일세력도 잊어서 안 된다는 것 또한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드라마는 가상의 인물인 이완익을 중심으로, 송병준, 이병무 등 대한제국 친일파 관료들을 끊임없이 부각했다. “친일과 매국도 기록해야 한다”던 김희성(변요한)이 마지막회 친일파 관료들을 모아놓고 단체 사진을 찍는데, 한명 한명을 비추며 총소리를 연상케하는 효과음을 쓴 장면은 상징적이다.
20~40대가 주요 시청층인 대중적 드라마에서 젊은층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킨 점도 상징적이다. 모리 다카시(김남희) 등 일본의 만행이 더해지면서, 실제로는 이보다 더했을 것이라며 감정 이입한다. 누리꾼들은 “드라마 하나가 이리 애국심을 고취하냐”며 역사를 바로 알자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을 때려 잡은 친일파의 묘는 국립묘지에 있고, 의병들은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거나, “친일파 명단을 정리해서 공유하자”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친일파 후손이 운영하는 관광지 정보도 알리고 있다. “6월1일 의병의 날을 기억하고 태극기라도 달자”고도 한다. 무엇보다 10~14일 제주 해군지기에서 열리는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달고 입항하겠다는 일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드라마 제작 경향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올 만한 역할을 했다. 한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미스터 션샤인>은 대중성을 지향하는 요즘 드라마에서 일제의 만행을 까발렸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6년 한류 열풍이 불고 일본이 드라마 판권 수출의 수익 중심에 서면서, 일본을 자극하는 드라마는 제작이 기피되어왔다. 기획을 해도 한류 열풍을 타고 다양한 수익 사업을 해야 하는 기획사에서 소속 배우들의 출연을 꺼렸다. 2012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그린 <각시탈>(한국방송2·KBS2)은 주인공 캐스팅에 난항을 겪다가, 주원이 출연을 결정하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관계자는 “주인공 제안을 받았던 한류 스타들이 드라마 출연으로 일본팬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몸을 사렸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은 이병헌이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성공은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앞두고 준비하는 드라마들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평론가는 “의병이라는 존재의 재조명과 개화기가 가진 특수성은 확장된 멜로 코드를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졌다.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는 향후 우리 드라마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시장을 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추구되어야할 도전이 될 것이다”고 짚었다.
물론, 신미양요 당시 미국인이 조선 땅에 들어오고, 고애신이 연발총을 사용 하는 것 등 극 초반 여러가지 면에서 고증의 아쉬움도 지적받았다. 제작진이 사과하고 설정을 바꾸기는 했지만 초반 일본 극우 조직 흑룡회에 몸담은 구동매(유연석)가 남녀 주인공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친일 미화 논란도 있었다. 장대한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후반부에 갈수록 급하게 진전된 것도 있다. 중반 상당 부분을 할애했던 세명의 엇갈린 마음보다, 의병의 본격적인 활동을 조금 더 빨리 시작해 조금 더 세세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도 싶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의병활동을 재조명하고, 젊은 세대에 친일과 항일의 역사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용기는 이러한 실수와 오류들에 대한 대중의 실망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미스터 션샤인> 마지막 회에는 이런 문구가 뜬다. ‘굿바이 미스터 션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불꽃처럼 살다 간 ‘미스터 션샤인’들은 2018년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스터 션샤인’ 속 명장면
“이리 오너라~” 그 한마디에 울었소
“당신은 당신의 조선을 구하시오, 나는 당신을 구하겠소” “이것은 나의 히스토리이자 러브스토리요.” <미스터 션샤인>은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낳았다. 그 가운데 23회 마지막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압축한 명장면으로 시청자의 폭풍 오열을 불렀다. 거점이 발각되자 몇몇은 의병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게 해주려고 기꺼이 미끼를 자처한다. 할아버지는 남아서 고애신을 찾는 일본군에 거짓 정보를 흘리고, 행랑아범과 함안댁, 가마꾼들은 마치 고애신이 탄 것처럼 빈 가마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 생애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그들은 웃는다. 가마꾼은 “우리 이참에 평생 못 해본 말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에 “꼭 한번 해보고 싶던 말이 있다”며 이렇게 외친다. “이리 오너라~~~” 노비로 살아온 그들의 서러움과, 서러움을 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의병의 마음을 보여준 최고의 명장면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