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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드시고 하세요”

함께 일하며 함께 먹는 모내기의 음식

한겨레21

모심기하는 5월은 바쁜 달입니다. 모심기 전날 쌀 여덟 말을 물에 불려요. 그걸 모심는 날 새벽 읍내 방앗간에 가져갑니다. 절편을 만듭니다. 모심기 새참으로 내가려고요. 모심는 날에 친척들이 모여요. 작은 명절 같아요.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읍내에 사는 고모네, 동서네 식구들. 다 모이면 한 30명쯤 돼요. 입이 많아지면 손이 바빠져요.


일찍 아침을 먹고 7시부터 모심기를 합니다. 5월 중순만 돼도 여름 날씨라 선선한 아침에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해요. 모를 심어야 할 땅이 3천 평쯤 돼요. 10년 전에 비하면 절반이나 줄었어요. 식구들 먹을 거랑, 조금 내다팔 것만 하니 농사일도 줄었어요. 기계(이앙기)가 있으니 한나절도 안 걸려요. 기계가 못하는 곳만 손으로 직접 때워요. 논 가장자리나 모가 심기지 않은 빈 곳은 그렇게 하죠. 할 게 많지 않으니 서너 시간이면 모심기가 끝나요.


86살인 어머니는 기계를 안 쓰던 시절에는 아침 일찍 시작해 밤늦도록 하셨대요. 정말 하루 꼬박 모심기를 한 거죠. 모심기 끝날 때는 밤이 되니 어두워서 논두렁에 벗어놓은 장화가 네 건지, 내 건지도 모르고 신고 갔대요.


그땐 소도 일하니 소 먹일 쇠죽도 끓이고 사람 먹일 새참도 만들었대요. 오전 새참, 오후 새참에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 다섯 끼나 준비했어요. 우리 마을에서 기계를 사용한 건 1980년대 중반이었어요. 그 기계를 처음 봤을 때 신기해서 넋놓고 쳐다봤어요. 신통방통했죠.


모심는 날에는 이웃들이 모여 품앗이도 해줬어요. 동네 사람들 다 모여 한솥밭 먹는 날이기도 했죠. 이제 그것도 옛날입니다. 일할 식구도 없고 일 도와줄 이웃도 사라지니 돈을 주고 일꾼을 씁니다. 돈을 주면 알아서 밥을 사서 먹으니 음식 준비할 일도 없죠. 누구네 모심기하는 날 도와주는 것도 흔치 않아요. 저희 집처럼 가족이 모여 모심기하는 집도 줄어들고 있어요.


모심기할 때 먹는 새참은 배 채우는 요기도 되지만 허리 숙여 힘들게 일하는 이들이 앉아서 쉬는 시간이기도 하죠. 하루에 두 번 새참을 준비할 때는 나름 다른 걸로 했어요. 오전 새참으로는 칼국수를 했어요. 아침에 일찍 오느라 밥 못 먹고 오는 분이 많으니 대충 요기하라고요. 낮 새참에는 안줏거리를 주로 만들어요. 닭발에 고추장 양념해 요리하고 빈대떡도 했어요. 예전에는 집에서 쌀로 빚은 술을 내갔어요. 농주라고 하죠.


이제는 예전보다 약소하게 준비해요. 점심 먹기 전에 한 번 새참이 나가요. 별게 없어요. 막걸리와 안줏거리 될 두릅나물, 깻잎, 밭에서 딴 상추를 내놓아요. 술 안 마시는 분들 요기가 될 떡도 내놓습니다. 이건 친척들 갈 때 한 봉지씩 담아서 줄 겁니다. 모심기 일이 많지 않으니 다들 쉬엄쉬엄 일해요. 집 바로 앞 논에 모심을 때 새참을 먹으니 집 마당 마루에 둘러앉아 먹어요. 그렇게 새참 먹고 한 시간도 안 지나 모심기가 끝나요. 다시 마당에서 모여 오리고기, 삼겹살을 먹으며 배 속에 기름칠을 합니다.


한바탕 모심기가 끝난 뒤 다들 떠나고, 집 앞 논에 심은 모를 봅니다. 물을 댄 논에 있는 개구리가 웁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물컹해져요. 자식 보는 것 같고. 자식 키우는 것도 농사라고 하잖아요. 정성을 쏟고 키우는 거니. 벼농사도 힘들지만 자식 농사보다는 낫죠. 한 해 벼농사 망치면 다음해에 잘하면 되지만 자식 농사는 한번 망치면 되돌리기 힘들잖아요. 올해도 아무쪼록 농사 잘돼야 할 텐데….


[한겨레 21] 강옥란 1956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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