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이 있는 일터
[김국현의 만평줌] 제47화
VR(가상 현실, Virtual Reality)이라고 하면 여전히 게임이 떠오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데 지금 게임업계는 VR 때문에 초흥분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중순에 열렸던 세계 최대 전자오락 전시회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도 VR 도가니였다. 가을 발매 예정인 플레이스테이션 VR. 준비되고 있는 타이틀만도 50여 종이다.
먼저 출시된 오큘러스 VR의 리프트(Rift)나 HTC의 바이브(Vive)도 PC 게임 쪽에서 VR 열풍을 선동 중이다. XBox를 지니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이에 질세라 프로젝트 스콜피오라는 개발 코드명의 신모델을 VR과 함께 2017년에 등판시킬 것이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 스콜피오는 정식으로 4K 고해상도를 지원한다. VR은 눈동자 바로 앞에서 화면을 틀어 주기에 풀 HD라도 픽셀 하나하나가 다 보일 지경이다. 마치 예전 VGA 화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 흥이 식는다. 그렇기에 최소 4K, 가능하면 8K가 탐나는 것이 또 간사한 마음.
그런데 이 정도 고급 설비라면 게임만 하기에는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 한창 일할 나이의 어른들이기도 하다. 가상 현실 속에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VR로는 그냥 유튜브만 봐도 몰입감이 상당한데, 만약 VR로 글을 쓴다거나 표계산을 한다거나 포토샵을 하면 집중해서 잘할 것만 같다고 믿고 싶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윈도우 홀로그래픽’이라는 윈도우 10 산하의 플랫폼을 발표했는데, 혼합 현실(Mixed Reality)을 표방한 것으로 보아, VR보다는 자사의 AR(증강현실) 헤드셋 홀로렌즈를 염두에 둔 듯하다.
물론 작업창 너머에 현실의 풍경이 섞여 보이는 AR도 나름대로 좋지만, 답답한 현실은 깡그리 잊고 작업하고 싶은 때도 있다. 주위에 나는 지금 집중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어서, 각종 VR 데스크탑 앱들은 지금도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PC용 게임 마켓 플랫폼 스팀(Steam)에 지금 공개된 버추얼 데스크탑 등이 대표적이다.
웹쪽의 준비상황도 만전을 기하고 있는데, 컨텐츠를 직접 VR화하기 위한 API인 WebVR 표준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파이어폭스와 크롬의 최신 실험 버전에 들어와 있다.
크롬의 최신 베타에는 가상 현실 쉘(VR Shell)이라는 또 하나의 기특한 기능이 준비 중이어서, 특별히 VR용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대다수의 웹을 VR에서 보게 해준다. (아직 작동되지는 않는데, 아마도 구글의 VR 플랫폼인 데이드림(Daydream)의 등장과 함께 기능할 듯하다)
VR을 뒤집어쓴 모습이 흉하고 우스꽝스럽기는 해도, 모두가 착용한다면 훨씬 더 비좁은 공간에서도 집중적으로 화이트 컬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어깨를 붙이고 다닥다닥 앉아 있는 처지라도 광활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서 CEO처럼 업무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멀미가 나서 일을 오래 못할 테니 워크 라이프 밸런스도 알아서 보장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