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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on ARM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은 어디인가요?

[김국현의 만평줌] 제69화

윈도우 on ARM 내가 있는 지금

PC의 황금기를 추억하는 이들 중에는 WinHEC이라는 이벤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윈도우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커뮤니티'의 약어로 윈텔 PC와 관련된 하드웨어 정보가 집대성되던 축제였다. 90년대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역시 추억의) PC 잡지들은 앞다투어 WinHEC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를 취재했다. 빌게이츠가 등단하여 '롱혼' 발표 등을 할 때가 절정이었다. 하지만 비스타라는 이름이 붙으며 평범해진 롱혼은 망했고, 빌게이츠는 은퇴했다. 윈도우의 열기가 빠지고 PC가 재미없어진 지난 10여 년간 WinHEC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작년 WinHEC이 돌아왔다. 그것도 중국 션전(深圳·심천)에서.

 

지난주에 열린 올해 WinHEC에서는 특히 빅뉴스가 있었는데, 바로 윈도우 10이 퀄컴의 스냅드래곤용으로 등장한다는 것. 이전에도 윈도우 RT처럼 모바일용 맛보기 판으로 비(非) 인텔 계열 윈도우를 출시한 적은 있었다. 결과는 망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풀 기능 64비트 윈도우 10 전체를 다른 CPU용으로 옮기다니 신선한 전개다. 윈도우 10 OS 자체를 ARM 코드로 개비한 뒤, 사용자들이 쓰던 종래의 x86판 win32 응용프로그램을 그 위에서 에뮬레이션하여 돌리는 구조. 포토샵이나 동영상, 게임을 키노트에서 직접 데모로 돌려주었는데, 어중간한 PC보다 빨라 보인다.

 

이 키노트 데모는 윈도우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으로 진행, 도메인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2017년 약속대로 이 제품들이 시중에 나오면, 퀄컴은 인텔과 AMD만의 영역이었던 B2B 시장에도 침투할 수 있게 된다. PC보다 훨씬 작게 만들 수 있고 저전력이다 보니 일반 사용자는 물론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좋아할 듯하다.

 

사실 윈도우(NT)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설치 CD 안에 I386(x86)과 함께 ALPHA, MIPS, PPC(PowerPC) 폴더가 있었다. 다양성이 있던 시절이었다.

 

이 다양성에 대한 수요도 줄고 하드웨어 벤더들도 지원을 멈추자 세상은 윈텔로 천하 통일되었고 CD의 그 폴더들도 전부 다 사라져 버렸다.

 

다양성이란 장기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막상 닥치면 늘 쉽지 않은 일이다. PC에서도 다양성이 복원될 수 있을까? 종래의 x86판 소프트웨어들이 얼마나 ARM에서 에뮬레이트 잘 될지가 관건일 듯하다(이번 윈도우10은 정확히는 ARM이라기보다 스냅드래곤 전용. ARM을 보편적으로 지원할 계획은 당장은 없는 듯하다). macOS도 PowerPC에서 인텔로 이행할 때, 그 과도기를 에뮬레이션으로 버텼는데 성능이 비참했다. 그리고 애플은 전면 이행이다 보니 떠나가면 뒤돌아볼 일 없었던 과도기였을 뿐이지만, 윈도우는 인텔을 절대 버릴 리 없다.

 

과연 두 마리 토끼를 윈도우가 잘 잡을지 지켜 보고 있는 이들은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macOS 시에라 커널에는 ARM기반 A시리즈 칩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다. 소문은 이미 무성해서 맥북이 ARM으로 가도 이상할 것이 없을 지경이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부트캠프로 윈도우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이마저도 이 ARM용 윈도우 덕에 해소될 희망마저 보인다. 즉, 스냅드래곤이 탑재되는 수많은 자그마한 기계에 ‘보통 윈도우’가 깔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x86 기반으로 ActiveX 따위를 만들던 개발업체는 이제 윈도우 위에 업혀서 '스마트 세상'으로 진출하는 꿈도 꿀 수 있게 된다.

 

잡스가 인텔로의 망명을 선언한 시기로부터도 10여 년이 흘렀고, 윈도우가 인텔과 일심동체가 된 때로부터는 20여 년이 흘렀다. 세월은 화살 같다. 그 사이 CPU 속도와 가상화, JIT 등 에뮬레이션을 위한 기술 발전도 그만큼 달려나갔다.

 

다양성의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을지, 2017년 그 분기점에 우리는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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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