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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by 김국현

우리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가 우리를 뒷바라지하는 날

우리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가 우리를
우리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가 우리를

신장개업한 업장에 발을 디디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대화면의 키오스크, 즉 무인단말기였다. 키오스크가 늘어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주라며 관련 업계가 들썩인 지도 꽤 되는데, 이제 거리의 풍경이 정말 달라졌다. 특히 각종 요식업장에서 사람이 주문을 받는 대신 기계를 터치해야 하는 추가 노동은 소비자의 일상이 되고 있다.

 

초기시설투자가 들더라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유혹. 지금까지 이 유혹을 자제했던 이유는 투자의 확신이 없어서였다. 비싼 기계를 들였는데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면 고철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런 대접 받고 여기 또 와야 하나? 여기 아니면 가게가 없나?”

 

고객이 왕이었던 시절, 손님 대접을 기계에게 맡기는 일은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소비자는 셀프 서비스와 터치에 익숙해져 버렸다. 키오스크라는 낯선 사물과 인터페이스 앞에서도 스마트폰에 의해 훈련받은 소비자들은 긴 줄을 서가며 기꺼이 미션을 수행한다. 기술혁신으로 비용도 내려갔다. 대화면 키오스크 시스템은 현실이 되었다. 식당은 어느덧 21세기 스마트 시대다.

 

심지어 사람과의 대면을 더 불편해하는 세대까지 등장했다는 주장마저 득세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언택트(Un-tact) 마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는데, ‘관계피로’에 지친 세대는 오히려 비대면에 안심감을 느끼니 이를 극대화하라는 듯하다. (이렇게 마치 최신 트렌드라도 되는 양 괜히 어색한 외래어풍의 단어를 만들어 유행을 시키는 풍조는 우리 사회에서 가끔 목격된다. 외국에서는 전혀 쓰이고 있지 않은 단어다.)

 

이렇게 대놓고 셀프서비스를 늘려나가며 인건비를 고객에게 떠넘기는 일은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일반 성인을 사용자로 삼기에 정보 약자들은 그 과정에서 소외되기 쉽다. 

 

실리콘밸리나 북유럽 일부 등 인건비가 폭등하고 있는 곳에서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서빙 대신 그냥 손님이 시키고 받아서 알아서 먹는 ‘카운터 서비스’가 급증하고 있다. 자리? 그런 것은 있으면 다행인 옵션이다.

 

카운터 서비스는 키오스크보다야 그나마 인간적이다. 낯선 사람과 카운터에서 “대치”하는 것보다 LCD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웨이트리스는 물론 카운터 담당이라는 보직마저 사라져 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은 저임금 노동자를 도심 밖으로 내몰고, 그 결과 지역 내에서의 일손을 부족하게 한다. 올라간 인건비에 임대료까지 모두가 힘들어지는 악순환은 실리콘밸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문명의 진화 단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먼저 걸은 일본 같은 선진국을 보면 제조업의 줄어든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돌봄 산업과 같은 대면 서비스업이었다. 일본의 경우 2002년 이후 고용증가분의 70%가 의료·복지였다.

 

정책목표인 고용이 늘어났다고 홍보할 수는 있겠지만, 저임금·저생산성 산업에 몰리니 실질임금은 늘지 않는다. 예전과 같은 고임금·고성장은 점점 힘들어진다. 게다가 돌봄 산업은 세금에 의존적이다 보니 고용 증가의 대가로 재정적자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뒷바라지나 간호를 하는 돌봄 산업이 첨단산업화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인간보다는 기계가 돌봐줬을 때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이 경감되어 마음이 편하다는 조사도 있다. 화면이 익숙한 세대의 노후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지금은 차갑고 불친절한 기계지만 언젠가는 사람의 따스한 말 한마디와 온기가 느껴지는 배려 또한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을 멈춘 사회의 유일한 성장산업은 지금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저 기계들이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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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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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