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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장난 이스터에그에서 만우절까지

[김국현의 만평줌] 제36화

곧 죽어도 장난 이스터에그에서 만우절

올해도 만우절은 찾아왔다가 지나갔다. 해마다 벌어지는 만우절 대소동. 1년 동안 만우절만을 기다리며 준비한 듯 공들여 만든 다양한 장난들로 넘쳐났다.

 

동물들의 의미 없어 보이는 화려한 장식은 많은 경우 자신의 여유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 과시가 종족 보존을 위해 의미가 있듯이, 각 기업의 의미 없어 보이는 현란한 장난도 결국은 자신의 잉여와 여유를 드러낸다. 그 여유로움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비결이기도 하니, 한낮 장난이지만 기업 활동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는 무엇하다.

 

구글은 이 만우절 장난의 선두주자다. 올해도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구글 이전의 장난 대장을 찾다 보면 만우절보다는 이스터에그 쪽이 재미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명절인 부활절 아침, 계란을 여기저기 숨기고 이걸 찾게 하는 게임이 있는데, 이를 지칭하는 말인 이스터 에그(Easter egg). 우리에게 이스터에그는 소프트웨어에 숨겨진 개발자의 장난을 나타내는 외래어로 더 유명하다.

 

8비트 시절의 원시적 게임에는 숨겨진 제작자의 이름을 찾는 낭만적 이스터에그가 감초처럼 들어 있었다. 이 이스터에그의 최전성기는 세기말이었다. 당시 오늘날 구글 같은 리딩 기업의 입장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이스터에그에 심취해 있었다. 엑셀95에는 둠(DOOM) 같은 3차원 게임을, 엑셀 97에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그리고 워드 97에는 핀볼까지 숨겨 놓았을 정도였으니 약간만 더 나가면 주객 전도될 지경이다. 그러나 이 장난의 황금시대도 오래가지는 않아, 인터넷 익스플로러 5.0 이후에 그리고 윈도우 XP 이후에 이스터에그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소프트웨어의 품질과 보안에 신경 쓰기에도 힘든데, 한가롭게 유머를 집어넣을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 실제로 주 기능과 무관한 이런 장난이 코드에 혼입되어 있노라면 악성 코드의 공략 대상이 되는 허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타당해 보인다. 완벽주의의 완성도 높은 제품에 불필요한 장난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잡스도 97년 애플에 귀환한 후 모든 이스터에그를 금지시켰다. (2012년 잡스 사후 발표된 OS 마운틴 라이언에는 1984년을 표시하는 소심한 이스터에그가 살짝 부활했다)

 

이스터에그 빙하기가 찾아온 후, 장난기는 구글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만우절은 늘 구글 잉여력의 공연일이었고, 엔지니어의 개성이 마음껏 발휘되었다. 올해도 10개 이상의 만우절 장난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올해, 결국 문제가 생겼다. 지메일에 갑자기 ‘마이크 드롭’ 기능을 장난이라고 넣어 둔 것, 그것도 보내기 버튼 바로 옆에.

 

마이크 드롭(Mic Drop)이란 마이크를 쥔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기에 결정적이고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내뱉은 후 마이크를 던진다는 영어 속어다. 할 말만 하고 방을 나가 버린다거나, 댓글을 적고 노티를 꺼버리는 일 같은 일이다. 이 버튼을 무심결에 잘못 누르면 상대방이 어떤 기분일지 명약관화하건만 이걸 엄청난 인구가 쓰는 서비스에 갑자기 끼워 넣었고, 또 게다가 버그까지 있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메일 쓰레드를 무례하게 끊어 버릴 수 있다.

 

급기야 이 버튼을 잘못 눌러 일자리를 잃었다는 호소가 등장하며 항의가 쏟아졌고, 구글은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별 재미도 없고, 무의미한 장난이긴 했다. 구글의 감이 떨어졌다. 그 지메일은 2004년 만우절에 런칭했다. 1GB의 대용량이라니 사람들은 모두 만우절 장난이라 생각했다. 이를 역으로 노린 센스였다.

 

구글도 곧 어른이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처럼 점점 장난을 잊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 두어 업체의 장난이 사라져도 세상이 각박하고 몰인정한 동네가 될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상상할 줄 아는 모든 이들은 장난을 하고 싶어 하니까.

 

우리의 걱정은 그 장난에 속지 않는 촉과 더불어 그 장난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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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