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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지콜론북

핸드메이드 인 라라

핸드메이드 인 라라

저에겐 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 덕분에 이리저리 뒤집어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해보기도 하죠. 그렇게 경계 없이 놀이도 일처럼 하게 되고,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도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게다가 홀로 손으로 작업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우니 그런 생활은 곧 일상으로 연결됩니다. 시간을 스스로 활용해야 하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놀아도 어느 순간 그것이 일과 연결되기도 하고, 또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놀이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어떤 경계를 만들지 않는 이런 패턴 덕분에 작업적으로도 우연한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경계가 없어서 불규칙해 보이지만, 어떤 면에선 그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요.

 

창작활동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딘가 메여서 자신의 시간을 쓰기보단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효율적이죠. 그리고 그렇게 에너지를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힘을 다시 충전해야 하므로 더욱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해진 시간이나 또 다른 압박, 일정한 틀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하기에 더욱 자유로운 시간으로 넘나들며 활용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 없이 놀이와 일을 넘나들며 힘의 균형을 맞추고, 그 균형 속에서 창작해야 하는 것이죠.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정할 수 없는 규칙 속 나름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라면 규칙입니다.

 

그런 애매한 상태처럼 어쩌면 손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손으로 무엇을 다루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릴 줄 안 다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죠. 혹은 그런 손작업들은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명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면 창의적인 작업도 그때그때 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출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마음을 헤아려 평정의 균형을 이뤄야 하니까, 어쩌면 창작활동은 고행길과 참 닮아있는 것 같네요.

핸드메이드 인 라라

저는 개인 작업에 힘을 분출하는 것을 일명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합니다. 정말이지 그분은 순식간에 오셔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시고 떠나시죠. 그런 몰입의 순간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합니다. 마치 내가 만들었지만 정녕 내가 만든 것인지 혹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는 것인지 생소할 때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생각에서 영감의 순간을 ‘그분’ 혹은 ‘영감님이 오셨다’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영감의 순간을 원할 때마다 찾을 순 없죠. 그래서 때로는 ‘접선’이라는 것을 시도하는데, 예고 없이 불쑥 찾아만 오는 ‘그분’을 만나고는 싶지만 부를 수가 없기에 간혹 마음을 이끄는 음악을 듣는다든가, 술 한 잔 기울이며 기다려 본다거나, 외로움이 느껴질 때, 내 마음을 잡아끄는 어떠한 영감의 소재를 본다든가 하면 가만히 기다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가만히 기다리는 것을 접선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죠.

 

오랫동안 홀로 작업을 하다 보니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그분이 오시는지 기다릴 순간이 오는지, 뭐 그런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인 느낌들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함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예민해서 그런 부분이 감지되는 것인지, 늘 온 마음을 다 쓰다 보니 예민한 감각이 길러져 그런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분이 오시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배설catharsis’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내키는 대로 배설 욕구를 분출한다면 그것은 정말 한낱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비단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요, 창작의 욕구를, 어떤 목적을 갖고 분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창작물이 위치한 환경과 태도에 따라 그 여부는 달라진다고는 생각합니다.

 

나 혼자 좋아서 하는 것은 단순한 배설과 같아서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와의 소통을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 소통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분명 건강한 증거이며, 또 건강을 보완하고 지킬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을 때도 오겠지만 그것 또한 받아들이면서 산다면, 어쨌든 해볼도리는 다했으니 참 근사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에 따른 처방을 전적으로 믿고 그것만이 옳다고 따라 할 수는 없겠지요. 검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처방과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타인의 의견을 넓게 수용하면서, 자신을 직시하고 자각하며 소신껏 나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죠. 그것은 자신에게 엄격하되, 타인을 너그럽게 대하는 데서 오는 열린 마음입니다. 그리고 감성이 풍부하게 넘쳐흐르는 가운데 창작의 열정은 피어오르고 그 순간, 자신에 대한 엄격함도 조금 해방되어 가는 것이죠.

핸드메이드 인 라라

항상 물음을 갖게 된 것은 제가 모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순적이란 것이 싫어서 한동안은 자기모순을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순이 창작활동으로 표출된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자 결국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지요. 그 생각의 경험은 더 단단하고 명확하게 저 자신을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부서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지키고 지키며 연약한 부분을 감추려 어떤 부분은 연극적으로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툭하면 모든 것이 부서질 줄 알았던 제 안의 저를 부수자, 온전한 제 모습을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안을 부수면 단단한 유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유리란 단단하지만 깨지는 것이고, 그 유리가 깨지고 나니 그 안에 있던 온전한 저를 마주 볼 수가 있게 된 것이죠. 제 안을 부수면 모든 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갇혀있던 저를 볼 수 있던 것입니다. 그 경험 이후, 저 깊이 버려서 없앴다고 생각했던, 꼭꼭 감추고 싶었던 제 안의 찌꺼기-자격지심과 열등감-를 발견했고, 그 찌꺼기는 썩고 썩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계속 그 위를 덮으며 눈 가리고 아웅한 격이었죠.

 

사실 저는 그런 썩은 부분의 제 일부를 인정하지 못하겠고, 또 마주하기 두려워서 회피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휴지통의 쓰레기는 컴퓨터에서 하듯 휴지통에 넣기만 하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 삭제’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핸드메이드 인 라라

인간은 모두 모순된 부분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순된 부분을 수면 위에 올리고 또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저로서는 그 말이 맥 빠지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죠. 모순이란 것은 저에겐 작업의 씨앗과도 같은데, 알고 보면 참 흥미로운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 모순되는 점들을 찾아 탐구하게 되니까요. 하나 더, 자신의 어떤 점을 장단점으로 나누기 이전에 자기 자신 그대로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은 마음을 만드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자신을 잘 알아봐야 하고, 자신의 인정하기 싫은 못난 구석, 마주하기 무서운 괴물 같은 모습까지도 인정할 필요가 있죠. 그렇게 마음과 소통하다 보면,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명쾌하고 자명한 사실이 명확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줄 테니깐요.

 

글_라라 임소희

저자 소개

라라 임소희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고 무작정 작업을 시작했다. 별 것 없는 듯 재미지게 삶은 살아졌고,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시간들로 인해 나름대로 현재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손은 특별함, 소중함, 신기함 등 많은 감정들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손으로 이루어지는 경험들은 내면까지 어루만져 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현재는 생애 첫 반려동물인 고양이 토리와 또 다른 삶을 배우고 있다. 참여한 작업으로는 드라마‘트리플’의 타이틀 캘리그래피와 포스터 일러스트, 디자인 및 소품 그림, 방송 전반적인 아트웍이 있고, 방송 포스터 작업으로는‘반짝반짝 빛나는’, ‘아들녀석들’, ‘왔다 장보리’등이 있다. 그외 다수의 단행본 캘리그래피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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