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O형 남자 감독과 A형 여자 코치…어떻게 18년을 한 팀에서 동고동락 했을까?

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남녀가 평생의 벗이 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남사친(남자사람친구),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이라는 존재가 생겨나긴 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동성 친구 이상의 우정이 영원히 갈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오랜 가르침 때문일까. 여전히 남자는 남자를 대하기 편하고, 여자는 여자끼리가 익숙하다. ‘톡 까놓고’ 남녀가 친구 되기가 어려운 정서가 아직 지배적이다.


일로 만난 사이라면 더 힘들지 않을까. 같은 회사에서 상하 관계인 남녀가 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추고 비즈니스 성과를 계속 내는 경우가 흔할까.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이혼으로 숱하게 갈라서는 세상이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비즈니스 커플’이 가족과 같은 편한 관계가 되려면 정말 세심한 상호 배려가 절대적이다.



동아일보

여자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전략을 논의하고 있는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오른쪽)과 전주원 코치. 동아 DB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위성우(52) 감독과 전주원(51) 코치는 ‘비즈니스 커플의 최상급’이라는 표현을 넘어 ‘절대 깐부’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되는 관계다. 2005년 신한은행에서 코치와 선수(플레잉 코치)로 처음 만나 2012년 우리은행에서 다시 감독과 코치로 뭉쳐 무려 18년째 동고동락을 하고 있다. 국내 스포츠계를 통틀어 유례가 없다.


둘이 뭉치니 복도 뭉쳤다. 미더스의 ‘두 손’이다. 위 감독이 혹독하게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몰면 전 코치가 벼랑에서 손을 잡고 다독이면서 여자 농구의 역사를 써버렸다. 신한은행에서는 2005년 이후 7차례 우승(5연패 포함) 기쁨을 함께 누렸고, 우리은행에서도 감독과 코치로 함께 부임해 첫 시즌에 고사 직전인 팀을 살려 깜짝 우승을 시키는 등 7차례 챔피언(6연패 포함)에 올려놓았다.


● ‘위성우 코치’를 추천한 ‘코치에서 물러난 전주원’


“ ‘위성우 코치’ 저는 좋다고 추천했어요.”


최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위 감독과 전 코치가 첫 만남의 기억을 더듬었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 레전드 가드였던 전 코치는 2004년 신한은행 선수 시절 임신으로 현역 활동을 중단하고 이듬해 딸(정수빈)을 출산한 후 코치가 됐으나 코트를 잊지 못해 선수 복귀를 했다. 전 코치가 다시 현역 복귀를 하면서 공석이 된 코치를 위 감독이 맡게 된 것이다.


위 감독은 프로농구 현대모비스에서 은퇴 기로에 서 있던 상황이었다. 타 구단으로부터 2년 계약 제안을 받은 상태에서 위 감독은 당시 이영주 신한은행 감독의 부름으로 신한은행 연습장을 찾았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은퇴 후 신한은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 코치께서 위 감독님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거네요?

“(전 코치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위성우)


당시 연습이 끝나고 위 감독은 선수인 전 코치에게 “안 힘들어요”라고 물었고, 전 코치는 “네 조금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게 둘의 첫 대화다. 전 코치는 당시 감독과 사무국장에게 긍정적인 의사 표현을 해줬다. ‘성실한 위성우’로 기억하고 있어 코치로 좋을 것 같다고.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전 코치의 ‘픽’은 나름 영향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전 코치가 손사래를 치며 “저는 여러 명 중 한 표였다”고 말하는 찰나 위 감독이 다시 치고 들어온다.


“저 같은 듣보잡을 택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동아일보

척하면 척. 18년 비즈니스 커플 위 감독(오른쪽)과 전 코치는 서로 떼어놓고는 존재감을 말하기 어렵다. 여자농구연맹 제공

● ‘단무지’를 알아준 ‘전주원’


위 감독은 자신을 ‘단무지’로 표현한다. 성격이 ‘단순-무식-지X’이라서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여자 농구팀 코치를 맡았으니 스타일이 더 도드라졌다고 한다. 한 살 어린 전 코치가 이런 위 감독의 거친 기질이 평상시가 아닌 훈련 때에 선수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게만 발휘되도록 잘 수습해줬다고.


덕분에 위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와 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가 선수 본인이 가진 경기력의 120%까지를 끌어올려 코트에 쏟게 하는 자신의 지도 스타일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신한은행에 부임해서 선수들 연습을 보는데, 운동을 하는 건지 워밍업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가더라고요. 100% 힘을 쓰는 건지, 50%만인지 감이 안 왔어요. 감독님한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전 코치가 정리를 잘해주더라고요. 전 코치가 대스타여서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깍듯이 대해줬어요. 알아서 선수들의 스타일과 성향에 대해 피드백을 수시로 많이 줬죠.”(위성우)


“첫 훈련을 보더니 뛰는 게 맞느냐고 물어 보시기에,‘그냥 열심히 하는 거예요. 남자 선수들 보시다가 그러실 거예요’라고 한 것 밖에 없어요. 하하.”(전주원)



동아일보

코트에서는 열혈남아가 되는 O형 남자 위 감독의 스타일을 A형 여자 전 코치는 뒤에서 묵묵히 받아주고 살렸다. 경기 도중 같이 심판에 항의하고 있는 위 감독과 전 코치. 여자농구연맹 제공

현역 때도 찰거머리 수비수로 독종처럼 상대를 압박했던 위 감독의 강성 스타일을 전 코치가 처음부터 마냥 좋다고 받아들인 건 아니다.


-안 싸우면 다행인데 못 믿겠어요. 트러블이 전혀 없지 않았죠?


“위 감독님이 코치로 오고 경기 중에 저도 플레이가 안 돼서 짜증이 나 죽겠는데 엄청 뭐라고 지적을 하는 거예요. 저도 열이 받아서 ‘아! 알았다고요. 정말!’ 이러면서 들이받았죠. (이영주) 감독님한테 딱 걸렸는데, 둘이 싸울 거면 둘 다 팀을 나가라고 해서 다음부터는 절대 부딪히지 않았죠. 하하.”(전주원)


● 농구 천재 전주원에게 유일무이 지적을 한 ‘위성우’


전 코치는 ‘농구 대통령’ 허재와 비교되는 여자농구의 역대급 스타다. 여자프로농구에서만 출산을 하고 8시즌을 더 뛰었다. 한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영구 결번도 유일하게 2개나 갖고 있는 별 중의 별이다. 이런 전 코치에게 레이저를 쏜 지도자는 없었다.


“저에게 농구 지적을 한 지도자는 없었거든요. 감독님은 저한테 유일하게 ‘엄청 뭐라 해주신 분’이에요. 그런데 감사하더라고요. 경기를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생각했던 때이거든요. 플레이를 못 할 때 누군가 나를 꾸짖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감독님의 한 방 때문에 40살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현역으로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전주원)


위 감독은 “나만의 지도 스타일이 생긴 건 전부 ‘니(전 코치를 지칭)’ 때문인 것 같다. 전 코치에게 쏘아붙이고 나서 정선민(현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등 대스타들에게도 그냥 똑같이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웃었다. 위 감독은 “나는 코치의 역할이 있고, 선수는 선수로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서 행동한 거다. 전 코치가 회사에다 안 좋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잘 이해해줬다”며 “의도한 콘셉트는 아니었는데 지금의 내 성향으로 정착된 것 같다”고 감사해했다.



동아일보

시즌이 끝난 뒤 구단의 우승 선물로 선수들과 해외 휴가를 간 위 감독(뒤)과 전 코치. 18년 동안 감독과 코치로 1년 365일을 붙어 다녔지만 둘이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 순진한 웃음을 짓고 있는 위 감독이 정말 ‘코트의 독사’ 위성우와 동일인일까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전주원 제공

전 코치가 감독과 선수들과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들에게 감독의 성향을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준 부분도 고맙다는 위 감독이다.


전 코치는 코트 안팎에서 위 감독의 180도 다른 성향을 접하고 진심을 알았다. 위 감독은 코트만 벗어나면 허허실실 코드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무조건 아이스크림 사줄 것 같은 아저씨다. 코트에서 말이 거칠어도 뒤끝이 없다. 작전 타임 때는 작전을 막힘없이 지시하는데 평소에는 말이 꼬인다. 말하는 사람이 별 생각 안 하고 던지는 농담에도 박장대소로 웃어준다.


“농구장이나 연습 때는 우리가 늘 ‘그분이 오신다’고 표현을 하는데 평상시는 아주 일반적이세요. 너무 가정적이고 세심하게 선수들을 챙기세요. 의외로 어렵지 않은 분이에요. 성격이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이었다면 지금까지 같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네요.”(전주원)


“농구장 밖에서도 그러면 선수들이 저를 정신병자로 생각하겠죠.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됩니다.”(위성우)


● 나를 처음으로 시험 들게 한 ‘위성우’


위 감독과 전 코치의 인연은 중간에 한 번 끊길 뻔 했다. 신한은행에서 단단한 커리어를 쌓은 위 감독이 2012년 우리은행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 단골 꼴찌였던 우리은행은 신한은행의 우승 DNA를 이식해줄 적임자로 위 감독을 찍었다. 위 감독은 생애 첫 감독직을 수락했고, 2011년 은퇴를 하고 신한은행 코치가 된 전 코치를 적으로 마주해야 했다.


위 감독은 고민하지 않았다.


“전 코치 신랑한테 먼저 제안했어요. 전 코치를 우리은행 코치로 보내달라고요. 우리은행은 당시 훈련을 혹독하게 해야 하는 팀이었는데, 전 코치라면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잘하겠다 싶었죠.”



동아일보

2012년 우리은행의 지휘봉을 잡은 위성우 감독은 1초의 고민 없이 전주원을 코치로 모셔와 인연을 이어갔다. 우리은행에서 함께 독종이 돼 만년 꼴찌였던 팀을 부임하자마자 정상에 올려놨다. 한국여자농구연맹 제공

전 코치 입장에선 위 감독의 제안을 안 받아도 되는 상황. 그런데 이번에도 새로운 내적 동기 부여가 필요할 때 위 감독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콜’을 해줬다.


“신한은행에 있으면 계속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한 팀에서만 성공했던 내가 팀을 옮기고 잘하지 못하면 어떤 자리에서도 실패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첫 도전 결심을 한 거죠.”


-우리은행으로 옮겨서는 다시 새롭게 리셋된 목표에 또 일심동체가 되셔야했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용감했죠. 40경기에서 5~10승 하던 팀에 전 코치를 데려와 어떻게 하지?…그랬다니까. 3년 동안은 스트레스로 죽다 간신히 살아났었죠.”(위성우)

“3~4년 동안은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잘할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당시는 선수들하고 말도 안 했어요. 피도 눈물도 없었죠. 우리가 느슨함을 보이면 선수들이 분위기에 휩쓸릴까 봐 더 악랄하게 했죠.”(전주원)


-시어머니가 둘이었겠는데요.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를 같은 사람으로 인식했을 거예요. 이 팀에 와보니 에이스가 없었어요. 승부처에서 선수들이 서로 해결을 미루고 공 돌리기를 해요. ‘정해진 것도 없고, 자신감도 실종됐구나’라는 판단에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더 감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위성우)


위 감독과 전 코치는 ‘악역’을 자처하며 100%의 호흡으로 부임 첫해인 2012~2013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어내며 우리은행 왕조의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다.


● 그래서 다 맞춰주는 A형 ‘전주원’


“전 코치는 누구든 다 맞출 수 있는 사람이에요.”


19년 차가 된 ‘커플’은 이제 척하면 척이다. 혈액형이 A형인 전 코치는 살뜰하게 위 감독의 기분과 습관을 배려한다. O형인 위 감독은 코트 안에서 계획적이지만, 코트 밖에서는 무서운 무질서를 지향한다. 그러면서도 전 코치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고집이 세지만 선수 관리나 소통 등에서 전 코치로부터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 같다는 의견 제시가 오면 바로 수정을 한다.



동아일보

서로 고마운 건 많지만 선물은 주고받지 않기로 선을 그었다는 위 감독과 전 코치. 선물 고르는 게 서로 스트레스란다. 그래도 위 감독이 밥은 기꺼이 전 코치에게 대접을 한다. 전 코치는 “감독님 사모님께서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시는데 어차피 감독님 돈이니까 굳이 따지면 나만 선물을 받는 셈”이라고 했다. 전주원 제공

-연인이었으면 위 감독이 피곤한 스타일이었을까요?


“만약 점심식사로 자장면을 먹기로 했다고 쳐요. 감독님은 그러다 갑자기 다른 메뉴가 꽂히면 바로 바꾸는 스타일이세요. 저는 어디에 맛있는 자장면 집이 있는지 미리 알아봐 두거든요. 당연히 감독님 취향은 맞춰야 하는데 한 번 여쭤봤어요. ‘그냥 자장면 먹으면 안 돼요’라고 물었더니 ‘나중에 네가 감독을 해’라고 하셨어요. 하하.”(전주원)

“다 맞춰주니 편하죠. 미안할 때도 있는데 제가 뻔뻔해진 거죠.”(위성우)


-뻔뻔해졌다는 건 전 코치를 아주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감독님이 제 눈치를 보고 있으면 제가 코치로 못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감독님이 편해야 제가 잘하고 있는 거죠.”(전주원)


-전 코치께서 A형입니다.


“저도 전 코치가 진지하게 제안을 하면 아무 소리 안 하고 들어주죠. 예를 들어 저하고 선수 사이에 트러블이 생긴다, 그럴 때 전 코치가 ‘감독님. 이런 부분은 감독님이 조금 지나친 면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줍니다. 그러면 내가 선수에게 사과를 해요. 감독이 선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전 코치가 깨우쳐줬어요.”(위성우)


-A형들은 보통 마음 상한 일이 있어도 말 못 하고 속으로 삭 다고 하잖아요.


“그럴 것 같으면 제가 눈치를 보죠. 제가 뭐라고 지적을 하다가 순간 ‘내가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히 내가 맞는데, 내가 잘못한 것으로 결론 날 때가 있어요.”(위성우)


“약간 저를 오해할때 설명을 드린 것뿐이에요. 여자는 살면서 2만 단어를 구사하고 남자는 5000단어 정도 쓴다고 해요. 그런데 남자가 단어를 다 쓰면 할 말이 없어 집을 나간다고 해요. 남자들은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한 겁니다. 하하.”(전주원)



동아일보

2015년에는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과 코치로 중국 우한에서 열린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선수단을 이끌고 나선 위 감독과 전 코치가 대회 도중 포즈를 취했다. 전주원 제공

18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교집합이 넓어졌다. “100% 전 코치를 안다. 여자팀에 오래 있다보니 여성화가 됐다”는 위 감독의 말에 전 코치는 “감독님이 술자리 약속이 많았다면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둘은 오래 떨어져 있는 자체가 어색하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전 코치는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잠시 팀을 떠났다. 새 시즌을 앞두고 위 감독이 팀의 모든 살림을 챙겨야 했다.


“혼자 여름 보내느라 힘들었어요.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후회했어요. 왜 대표팀에 보냈는지. 하하.”


전 코치도 위 감독이 곁에 없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항상 감독님을 도왔는데 처음으로 결정 주체자가 돼서 이상했어요. 서툴러서 뭐가 잘못될까 봐 늘 걱정이었죠.”


● ‘엄마 식혜’를 지켜주는 ‘위성우’… 헤어질 결심 없는 ‘우리’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중간에 생긴 예상치 못한 고충과 아픈 추억을 깊게 공유하는 것도 둘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다.


2017년 위 감독은 몸이 아파 수술을 받은 아내를 보고 처음으로 농구에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라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권태기죠. 주변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지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쉬는 방법도 몰라 혼란스러워했죠. 그때 알았죠. 아등바등해봐야 소용없다는 걸요.”


-감독님께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느꼈나요?


“성실하셔서 모든 걸 내려놓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10개 중 서너 개만 버리겠구나’ 정도? 그러다 지난 시즌 김단비 선수가 이적하면서 다시 ‘웨이크업(Wake up)’을 하셨어요.”(전주원)


자신은 크게 감독을 도운 게 없고 농구 일이 좋아 편했다는 전 코치. 하지만 힘든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2013년 3월 18일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앞두고 전 코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전날 2차전을 관전한 어머니가 다음 날 새벽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증세로 세상을 떠난 것. 어머니는 2차전이 끝나고 손수 만들어 빨간 통에 담은 식혜를 전 코치 손에 쥐여줬는데 그게 딸과의 마지막 조우였다.



동아일보
동아일보
동아일보

2013년 3월 19일 전주원 코치는 전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별세에도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 나가 퉁퉁 부은 눈으로 위 감독을 보좌하며 벤치를 지켰다.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고. 결국 3차전 승리로 우리은행에서 첫 우승을 확정지은 뒤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동아일보 DB

-식혜는 어떻게 했어요?


“아직 갖고 있어요. 제 방에 좋은 냉동실에…. 못 먹어요. 먹지는 못하고….”


겉으로는 웃는데 전 코치의 눈에서 눈물이 핑 한 번 돈다.


“이사 갈 때 버리자.”


우리은행 장위동 숙소와 연습장 부지와 주변은 2026년 재개발이 된다. 이사를 가야 한다. 위 감독은 퉁명스럽게 식혜를 버리자고는 했지만 속은 아니다. 전 코치가 식혜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상한 마음을 힘들게 다스렸을까’라는 걱정을 줄곧 해왔다. 전 코치는 식혜가 있어서 위 코치나 자신에게 기분 좋은 일들이 계속 올 것 같다.


“제가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는 갖고 있을 것 같아요.”

동아일보
동아일보

간식과 수다로 평상시 취미까지 비슷해져 버린 여자농구 최고의 지도자 커플 위 감독과 전 코치가 14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농구단 숙소에서 전 코치의 반려견과 함께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둘은 언제까지 같은 팀에 있을까.


위 감독은 언젠가 전 코치가 감독이 될 것이라 했고, 전 코치는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둘은 앞으로의 세월을 대하는 태도가 절묘하게 같다.


“나이가 드니 뭐든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고 사는 것 같아요.”(전주원)


“맞아. 그런데 전 코치는 오늘 이 인터뷰를 감독만 하는지 알고 있었다며? 흠. 그럴 수도 있지.”(위성우)


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

오늘의 실시간
BEST
donga
채널명
동아일보
소개글
세상을 보는 맑은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