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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언어 유전자’는 없다”

美 연구팀, 유전학계 정설 뒤집어

인간부터 침팬지까지 게놈 분석

“기존엔 아프리카인들 포함 안해 전세계 대상 연구에 오류 발생”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언어 유전자

침팬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표정과 몸짓 외에 언어를 사용해 소통한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인간만의 언어 유전자는 없다.”

 

한 젊은 과학자의 연구 결과로 전 세계 인류학계와 유전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2002년 화려하게 등장해 진화나 생명과학 관련 교과서에도 소개될 정도로 ‘정설’이 된 인간 언어 유전자 연구가 더 이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앳킨슨 미국 브로드연구소 연구원은 “언어 유전자로 불리는 폭스피투(FOXP2) 유전자가 현생인류가 모두 갖고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생명과학 학술지 ‘셀’ 온라인판 2일자에 발표했다.


FOXP2 유전자는 2002년 볼프강 에나르트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교수팀에 의해 유명해진 유전자다. 원래 이 유전자는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유전병으로 고통 받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KE 가족’이라고 불리는 일가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 가족이 이상하게 인지능력은 정상이지만 말하는 능력이 뒤처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연구자들은 FOXP2 유전자의 특정 영역에 변이가 생기면 말을 하는 기관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언어 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에나르트 교수팀은 이 유전자가 유인원과 다르며 약 2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전 세계 20명의 유전자를 분석해 확인했다. 이 연구는 섬세한 언어능력이 인류의 번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가설과 함께 빠르게 퍼졌다. 특히 에나르트 교수와 함께 연구한 연구 총책임자가 고(古)게놈학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인 스판테 페에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라 더욱 그랬다.


이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쥐나 박쥐로 하여금 소리를 내게 하거나, 문법을 지닌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밝혀진 노래하는 새(명금류)가 노래를 하게 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언어 유전자는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러 반론이 등장했다. 먼저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등 다른 친척 인류의 게놈 해독 결과 그들에게도 우리와 아주 닮은 FOXP2 유전자가 있음이 발견됐다. 이 유전자가 퍼진 시점이 20만 년 전이 아니라 세 인류의 공통 조상이 존재하던 최소 50만 년 이전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 고인류의 게놈을 처음 해독한 것은 2002년 연구 총책임자였던 페에보 소장이었다. 이 유전자에 의한 고도의 언어능력이 현생인류의 특징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반대로 “네안데르탈인 역시 현생인류 못지않은 언어 능력이 있었다”는 해석을 채택해 넘어갔다.


유전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직접적으로 언어를 구사하게 하기보다는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해 성장기 어린이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일 가능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언어와 관련이 있지만 간접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단 한 개의 유전자로 언어라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회의론도 나왔다. 하지만 이 유전자가 현생인류 등장 직후인 20만 년 전부터 급격히 퍼졌다는 2002년 연구 결과가 버티고 있어 ‘언어 유전자’라는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 앳킨슨 연구원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람을 포함해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3명의 사람과 침팬지 10마리, 3명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으로부터 게놈 정보를 모아 FOXP2 유전자의 전 영역을 해독한 뒤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유전자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에 널리 퍼졌다는 증거가 없으며 아프리카 등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지만 언어 문제가 없는 인류가 많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앳킨슨 연구원은 “기존 연구는 유럽인과 아시아인만을 대상으로 해 자료 선정에 한계가 있었다”며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이 유전자가 특별히 인간에게 언어를 선사한 유전자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과학 연구 결과에서 더 나은 연구 결과에 의해 기존 정설이 뒤집히는 경우는 흔하다. 2002년 논문의 제1저자였던 에나르트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한 결론이 나왔다. 연구자로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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