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퀸, 눈물 터졌다” vs “어설픈 서사, 하품 나왔다”
컬처 까talk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100만명 돌파
40대 男-30대 女 기자의 극과극 리뷰
국내에서 15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전에는 단편적인 서사에 혹평이 쏟아졌지만 퀸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해 전 세계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록 밴드 퀸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10월 31일 개봉)는 화제성과 별개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네이버 영화’ 기준 평점은 관람객이 9.55, 기자·평론가는 6.14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은 ‘걸작을 기대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이라며 별 두세 개를 줬다. 그런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눈물범벅의 리뷰가 넘쳐나고 영국 싱글차트 100위권 내에 퀸이 30∼40년 전 발표한 곡이 세 곡이나 재진입했다. 엇갈리는 평가에도 ‘보헤미안…’은 파죽지세. 개봉 9일 만에 국내 관객 수 100만 명을 넘겼다. ‘퀸 세대’라는 임희윤 기자(40대), ‘나도 퀸을 안다’는 김민 기자(30대)가 본 ‘보헤미안…’은 어떻게 달랐을까?
“은근슬쩍 넘어가” vs “꽤 살아있는 디테일”
▽임희윤=비판할 준비를 하고 봤는데 당황스러웠어. 보다가 울컥했다니까.
▽김민=퀸을 사랑하는데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니! 같이 비판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임=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 건가.
▽김=스토리가 엉망이야. 내가 생각한 프레디 머큐리를 망쳐 놨어. 머큐리가 제작자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며 “우리도 오페라를 하겠다”며 앨범 ‘A Night at the Opera’를 제안하는 장면을 봐. 전혀 안 와닿아. 이렇게 가볍게 앨범을 만들었을 리가 없어.
▽임=감정 과잉은 맞지만 필요한 장면이야. 머큐리가 오페라를 각별히 사랑했다는 건 사실이거든. 나중에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듀엣(1987년 ‘Barcelona’)을 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정도로.
▽김=최악은 노래 ‘Bohemian Rhapsody’를 여자친구와 누운 채로 피아노를 치다 작곡하는 장면이야. 가사의 철학적 의미나 과감한 실험성은 살리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어.
“일차원적 인물 묘사” vs “퀸 이미지 살린 것”
▽임=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히트곡이 너무 많아 미안할 지경이지. 두 시간 안에 자세하게 담기엔 역부족이니까. 영화는 깊이는 없지만 퀸의 특징을 잘 알고 적소에 넣었어. 이를테면 음반 제작자가 ‘Bohemian Rhapsody’에 대해 “청년들이 머리 흔들며 따라 부를 만한 노래가 아니다”라고 어깃장 놓는 장면이 그래. 이 노래가 훗날 영화 ‘웨인즈 월드’의 차 안 헤드뱅잉 장면에 쓰여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을 염두에 둔 유머 장치야.
▽김=머큐리의 특별함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어. 보수적 영국 사회에서 인도계이자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도 성공한 인물인데. 후반부에서는 심지어 머큐리의 동성애가 밴드의 몰락을 이끈 것처럼 그렸잖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
▽임=1980년대에는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엄청났어. 그런 분위기를 오히려 잘 반영했다고 생각해. 퀸은 천체물리학도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쇼 맨’ 머큐리의 영혼이 결합된 그룹이야. 사이버펑크 세대의 예술적 농담이지.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가 퀸의 과장된 맥시멀리즘과 이상하게 맞아떨어지기까지 한다니까.
“공연 영상이 나아” vs “상업영화의 영리한 선택”
▽임=소싯적 엘피판과 해설지, 잡지 활자를 보며 상상만 하던 퀸 멤버들이 눈앞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움직이고 클로즈업되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
▽김=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공연 영상을 보는 게 낫지 않아? 2018년에 퀸을 재현한 영화라면 좀 달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임=시중에 나와 있는 콘서트 영상물에서 카메라는 3인칭이야.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에서 2인칭처럼 바싹 달라붙는 카메라 앵글을 봐. 음반 녹음 장면에서는 굳이 릴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을 계속 삽입함으로써 중장년층의 아날로그 향수를 영민하게 자극했어.
▽김=난 그런 향수가 없어서…. 마지막 20분이 그나마 좋았어. 하지만 ‘유튜브로 다 볼 수 있는데…’ 싶었어. 영화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2년 뒤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속은 기분마저 든다니까.
▽임=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도, 공익영화도 아니야. 상업영화이고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어. 빼어난 캐나다 공연 실황 영상물 ‘퀸 락 몬트리올’(2007년)이 국내에도 개봉하고 블루레이로도 나왔지만 대중은 잘 몰랐잖아. 음악 마니아들은 알음알음 보고 눈물을 흘린 작품인데. ‘보헤미안…’이 다소 유치한 건 인정해. 하지만 상업적 드라마가 있기에 퀸을 다시 조명 아래로 올려놨어. 요즘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도 ‘퀸’으로 도배됐고. 이런 게 진짜 역주행이지. 그런데 ‘The Show Must Go On’이 흐를 때 자리를 뜨는 관객들은 아쉬웠어. 말년의 머큐리가 보드카 마시고 혼신의 힘으로 부른 곡이잖아. 퀸의 사실상 마지막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 이 노래만 한 드라마가 어딨어.
▽김=그건 그래. 한편으로는 멤버들 중 메이와 로저 테일러(드럼)만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정적으로, 프레디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그렸다는 생각도 들어.
▽임=친구들의 수다 모임에서 자리 비우고 화장실 갈 때마다 불안하긴 해.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일까. 아무쪼록 오래 살고 보자.
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