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마다 헬스클럽 갔죠” 20년 넘게 이어온 근육운동
국제회의통역사 조재범 한국외대 EICC학과 외래교수
조재범 교수가 피트니스101 광화문점 웨이트트레이닝 기구 사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1996년 1월이었다. 동시통역을 공부하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 풀 방법을 찾았다. ‘술을 마실까?’ ‘아니다. 운동을 하자.’ 그래도 건전하게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국제회의통역사 조재범 한국외대 EICC학과 외래교수(49)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일찌감치 시작한 근육운동 덕분에 최근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까지 떨치고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조재범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전한 한 보디빌딩대회 직전 포즈 연습을 하고 있다. 조재범 교수 제공. |
“전 순수 국내파로 동시통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경쟁하다보니 늘 모든 게 부족하게 느껴졌죠.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잘하지?’ ‘왜 난 이렇게 못하는 거야?’ 스트레스 없는 공부가 없겠지만 저는 너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통역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 어떨까하는 우려감에 경쟁자들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까지….”
조 교수는 최근 20년 넘게 이어온 근육운동 덕에 우울증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2019년 봄부터 크고 작은 안 좋은 일이 이어졌습니다. 사람관계에서 오는 상실감도 있었고…. 믿고 의지하던 분까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우울한 나날 이어졌죠.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에 거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일도 잘 안 풀리는 데다 늘 의지하던 분까지 떠나니 모든 게 공허했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그는 “우울할 때마다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갔다. 자칫 깨질 수 있었던 삶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근육운동이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한껏 땀을 흘리다보면 우울한 세상을 잊을 수 있었다. 우울증을 완전히 떨쳐내는 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근육운동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재범 교수(오른쪽)가 지난해 10월 출전한 한 보디빌딩대회 40대 이상 부문에서 1위를 한 뒤 포즈를 취했다. 조재범 교수 제공. |
조 교수의 운동을 통한 우울증 탈출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운동처방을 해줄 정도로 운동이 우울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운동은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우울증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운동 기간이 길수록 우울증을 낮추는 효과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돼 한 때 3주간 헬스클럽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덤벨 등을 구입해 홈트레이닝을 하며 슬기롭게 버텨냈다. 조 교수는 “사실 26년 전 스트레스를 술로 풀까도 고민했다. 술도 제법 잘 마셨었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술로 풀었으면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운동을 하니 삶이 달라졌다. 처음엔 그저 헬스클럽에 도장 찍으러 주 2,3회 나갔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는 횟수가 늘었다. 땀을 쫙 빼고 나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근육운동이 단순해 재미는 없지만 몸이 조금씩 변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원래 체력이 약했는데 강해지다 보니 정신력도 좋아졌다”고 했다. 부정기적으로 헬스클럽을 찾던 그가 거의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1998년부터다.
“한 3년 운동하니 근육도 좀 잡히고 재미도 좀 붙었죠. 경제난으로 취업 길이 막히다보니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에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동시통역까지 공부하고 졸업했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월급 100만 원도 안 되는 인턴사원 자리만 나올 때였죠. 거의 매일 헬스클럽으로 향했습니다.”
다음해 취업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해 LG전자에 입사했고 삼성SDS, SK텔레콤 등 회사를 다니던 그는 2003년부터 다시 본격 통역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SK텔레콤 다닐 때 저랑 통역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분이 통역을 왔다. 그 때 ‘아, 나도 저 일 하려고 공부했는데…’라는 생각이 밀려와 다시 동시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스페인어(한국외대) 과정을 이미 마친 그는 영어(서울외대) 통역대학원까지 섭렵했다.
조재범 교수가 피트니스101 광화문점에서 웨이트트레이닝 레그프레스를 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을 26년째 즐기고 있는 근육운동 덕에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한국외대에서 영어 통역번역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근육운동을 계속 하긴 했지만 ‘저 친구 헬스 좀 했네’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가 제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운동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속칭 ‘각(근육)’이 제대로 안 나왔어요. 건강해 보이긴 했지만 어디 가서 운동했다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제 불찰도 있었지만 좀 억울했습니다. 10년 넘게 했는데…. 그래서 체계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체, 하체, 코어 3분할로 나눠 몸을 만들었다. 근육운동도 피로회복을 위해 부위별로 나눠서 해야 효과적이다. 매일 새벽 6시 30분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헬스클럽은 서울 광화문과 명동 2군데에 등록했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학부 통번역학 강의를 나가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시간이 많을 땐 명동에서, 집(독립문)에 있을 땐 광화문에서 운동을 한다. 매일 2시간 운동하는데 끝날 때쯤엔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 근육운동을 한 뒤 트레드밀을 달리거나 고정식자전거를 타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에너지소비량이 더 높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지방이 빨리 끼는 몸이라 근육운동 뒤에는 꼭 유산소운동을 했다. 그런데 결국 중요한 것은 음식조절이다. 운동 열심히 하고 과식하면 효과가 없다“고 했다.
조재범 교수가 피트니스101 광화문점 웨이트트레이닝 기구 사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조 교수는 지난해 10월 아마추어 보디빌딩대회에 출전해 40대 이상부 1위를 했다. 그는 ”코로나19 탓에 혼자 출전해 1위를 하다보니 좀 멋쩍었다. 그래서 11월 20일 서울보디빌딩협회에서 주최하는 ‘미스터 서울’ 마스터스부문에 출전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더 훈련에 집중해야 해 운동의 질이 달라진다. 또 목표가 있어야 운동 효율도 좋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아침저녁 3시간 이상 몸을 만들고 있다.
조 교수는 운동을 일상생활을 매끄럽게 하는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통역을 하는 날에는 준비할 게 많기 때문에 운동을 통역이 끝난 뒤에 한다. 그는 ”어떤 통역을 하든지 자료 준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새벽 시간도 뺄 여력이 없다. 대신 통역을 마친 뒤 스트레스 해소를 하기 위해 꼭 운동을 한다“고 했다. 강의나 번역을 할 땐 사전에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 집중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재범 교수가 피트니스101 광화문점에서 웨이트트레이닝 레그익스텐션을 하고 있다. 26년전 근육운동을 시작한 그는 “운동은 스트레스를 날려줘 공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조 교수는 26년째 근육운동을 하며 긍정의 선순환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근육운동은 스트레스로 날려줬고 공부 집중력도 높여줬다. 삶도 활기차졌다“고 했다. 다음날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주량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는 ”운동을 하다보면 가사에 등한시할 수 있지만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도 반겨준다. 또 미안한 마음에 더 가정에 봉사한다. 이런 게 선순환 아니겠나“라며 활짝 웃었다.
운동을 안 하면 숙제를 안 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는 ”100세 시대, 건강이 중요해졌다. 돌이켜보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온 게 지금 삶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주위에서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그게 자극이 돼 더 운동에 매진하는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재범 교수가 피트니스101 광화문점에서 웨이트트레이닝 암컬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을 26년째 즐기고 있는 근육운동 덕에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조 교수는 11월 27, 28일 서울 세종문화관에서 열리는 제13기 시민연극교실 연극무대에도 선다. 서울시극단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경험을 주는 무대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6월 신청했고 합격해 7월부터 매주 2일씩 연습을 했다. 대학 강의와 번역 및 통역, 그리고 헬스에 연극까지. 1인4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매일이 즐겁다.
”아직 바쁜 게 좋습니다. 딴 생각도 나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는 밑바탕에 근육운동이 있습니다. 평생 몸 만들며 건강하고 즐겁게 살겠습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