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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절대 가지 마세요!” 신경건축학자가 보는 노후 주거의 요건

실버타운이 과연 노후의 해답일까요? 신경건축학자가 말하는 노인의 자립과 존엄을 지키는 노후 주거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 권유

노인 격리하는 한국 실버타운

지역과 섞이는 일본 노인홈

고령자, 노후에도 자립하고

다른 세대와 어울려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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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씨가 경관 디자인 공유 대표가 십자성 경로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경로당 1층은 모두를 위한 카페,2층과 3층은 각각 할머니 방, 할아버지 방으로 사용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할 화두다. 물론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고령자를 위한 시설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전원살이를 꿈꾸며 누군가는 경제적 여건에 맞춰 작은 집으로 이사할 것이다.


신경건축학자의 의견은 달랐다. 건강하고 자립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살던 곳에서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것. 특히 실버타운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58)가 최근 저서 ‘나이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투래빗)를 통해 던진 주장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불편해지는 집을 노년의 삶에 맞게 수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노후를 권한다. 이를 위한 사회와 국가의 역할도 짚어준다.


좀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지난달 27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십자성 경로당에서 만났다. 이곳은 그가 2019년부터 2년간 강동구 도시경관 총괄기획가(부구청장급)로 일하며 공을 많이 들인 공간 중 하나다.

공공건물 1층은 ‘모두의 거실’

경로당은 건평 30평의 3층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강동구청이 다세대 빌라를 사들여 허물고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 1층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카페다. 시니어 바리스타가 내주는 커피 한 잔이 2000원. 대체로 5060세대로 보이는 중장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긴다. 사람이 많고 왁자지껄해서 인터뷰 녹음이 제대로 될까 신경 쓰일 정도였다.


이 건물은 김 대표가 강동구청 민간 전문가로서 건축설계사를 들볶으며 만들어냈다고 한다.


“당초 세워놓은 리모델링 계획이 불법 건축물이어서 제가 재건축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고령자에게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새로 지어야 했어요. 건물에는 제가 아는 노인시설의 노하우를 모두 반영했습니다.”


주민센터 지하층에 있던 경로당을 옮기는 작업. 예산은 더 들었지만 어르신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2층은 할머니 방. 3층은 할아버지 방으로 하고 그 방 귀퉁이에 인근 아동들이 저녁마다 모여 지내는 공간 ‘꿈미소’를 넣었다. 4층에 해당하는 옥상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데, 날씨 좋은 날 어르신들이 간단한 운동을 하고 바람 쐬기에 좋다.


김 대표는 2019년부터 2년간 자신의 사무실에 주 3일, 구청에 주 2일 출근하는 생활을 하며 40여개 학교와 공공도서관, 노인복지관, 청소년 문화의 집 등 300여 공공장소들의 디자인을 바꿨다. 강동구는 2020년 ‘대한민국 공간복지대상’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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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한쪽 벽면에 설치된 고령자용 운동 안내. 전신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바른 자세로 걷기 연습을 해볼 수 있고 한쪽다리로 서 있기를 통해 치매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눈운동을 따라하면 시력보호에 도움이 된다. 김경인 대표가 만든 ‘인지건강 디자인’들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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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할아버지들의 방 한귀퉁이에 인근 아동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꿈미소’ 공간을 넣었다. 학생들이 모이는 5시가 되면 할아버지들은 귀가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노인 5명 중 1명이 혼자 산다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는 사실 요즘 ‘핫’한 테마이기도 하다. 경관디자인 1세대인 그가 신경건축학 관점으로 설명한다는 게 새로웠다. 그는 2007년부터 신경건축학에 기반해 학교공간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고 2014년 이 경험을 담은 저서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중앙북스)를 펴내 반향을 불렀다.


―신경건축학이란 뭔가요.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환경이 인간의 정서 사고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공간설계와 건축에 반영하는 학문이예요. 예를 들어 ‘색을 바꿨더니 아이들이 밝아졌다’ 같은 겁니다. 인지장애(치매) 환자가 요양하는 곳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행복감을 느낄지를 연구하는 식이죠.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가 연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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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들을 위한 핸드레일이 설치된 일본의 화장실. 김경인 씨 제공

―노인 5명 중 1명이 독거노인입니다. 또 고령자 사고의 63%가 집에서 발생한다는데요.


“편안했던 집이 나이 들면서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되기 쉽습니다. 미끄러운 바닥, 불편한 가구배치, 어두운 조명….


고령자가 집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려면 환경을 조금씩 손볼 필요가 있지요. 문턱 낮추고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간단한 변화로도 효과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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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틀의 턱을 없애 휠체어가 다니기 원활하게 만든 일본 고령자주택 . 김경인 씨 제공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의 기본이 자립이예요. 그러려면 개인도 노력해야 해요. 연령대에 맞춰 필요한 부분들을 조금씩 개선해나가야 하죠.


50대 후반인 저도 목욕탕 바닥에 시트지를 바르고 슬리퍼를 바꿨어요. 식탁을 각진 것에서 둥근 것으로 바꿨구요. 이렇게 조금씩 불편한 부분들을 개선해나가는 거죠.


국가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일본은 개호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에서 화장실 핸드레일 같은 고령자 안전을 위한 설비비용을 지원해주는데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하더군요. 전체 사회로는 이득인 거죠.”



―‘나이 들어도 살기 좋은 도시’란.


“‘지역사회에서 나이들기(aging in community)’도 중요합니다. 고령자가 쉴 수 있는 벤치나 산책로 조성, 아파트 단지내 공용공간을 세대간 교류의 장으로 바꾸는 등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도시를 ‘나이 들어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실버타운, 노년의 낙원인가 새로운 고립인가

―실버타운은 반대하신다고요.


“지금과 같은 모습의 실버타운이라면 반대합니다. 그곳이 노인 격리시설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실버타운에 가보면 보안 시스템이 몇겹으로 되어있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지요. 고령자 입장에서 보호라기보다 격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가뜩이나 외로운 노인들을 으리으리한 건물에 격리시켜서 더 외롭게 만드는 거죠. ”



―실버타운 인기가 높아져서 입주하려면 2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던데요.


“저는 유명 실버타운 내부 시설 보면서도 충격을 받았어요. 시설은 첨단인데 따뜻한 느낌이 없고 노인 감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더군요. 주거가 아니고 그저 시설인 거에요. 체육시설도 잘 돼 있지만 이용자가 없어요. 고령자에게 맞지 않는 기계들이거든요.


예컨대 사이클은 안장이 높고 작은데 자칫 낙상사고가 나겠더라구요.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사고가 난대요. 문화시설도 많은데 활기가 전혀 없어요. 노인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시설을 만들었다는 느낌이었어요.”



―고령자 입장에서는 식사 챙겨주고 의료적 비상상황에 대처하기도 좋지 않을까요.


“글쎄요. 신경 건축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요리만들기가 치매 예방에 굉장히 좋아요. 힘들어도 고령자가 하루 한 끼 정도는 해 먹는 게 좋다는 거죠. 요리가 어떻게 보면 종합적인 운동이에요. 대근육과 소근육을 다 쓰니까요.


실버타운도 청소 매일은 안 해줘요.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요. 어르신들도 너무 편하게 지내시는 것보다 자꾸 움직이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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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단지의 어린이 놀이터를 노인운동기구를 포함한 3세대 놀이터로 전환했다. 김경인 씨 제공

외부에 개방돼 세상과 소통하는 일본의 노인시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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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양시설은 2003년부터 1인실을 의무화해 입소자가 독립성과 생활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김경인 씨 제공

―일본의 시설들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을 하셨더군요.


“모두 개방돼 있어요. 최고급 노인홈도 커뮤니티 시설 일부가 개방돼 외부와 섞이게 설계합니다. 노인들을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취지죠. 노년층과 젊은 층을 자꾸 분리하려 하지 말고 섞어줘야 해요. 노인복지시설하고 양육시설을 같이 만들죠.


일본도 처음부터 이렇게 한 건 아니예요. 본래 따로따로 돼 있던 거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세대교류 세대공존 컨셉을 넣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그들이 실패한 경로를 우리가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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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현 사찰을 개조한 사회복지시설 ‘사이엔지’의 식당. 낮에는 고령자 데이케어센터와 방과후 아동 케어 기능을 모두 담당한다. 사이엔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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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밤이 되면 지역 주민들과 온천 이용객들의 술집으로 변신한다. 사이엔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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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작은 라이브 콘서트도 열린다. 사이엔지 홈페이지 캡처

―경로당에 설치된 꿈미소가 그런 개념인가요.


“2층 할머니가 그러시잖아요. 아이들이 옥상에서 행사하면 보러 가신다고.


일본은 자연스럽게 동선을 섞은 커뮤니티 시설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노인홈 식당을 오픈해서 지역 주민들도 이용하게 한다든지 아이들 공간을 연결해서 운영한다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하더군요.


예컨대 ‘붓시엔’ 법인하에 있는 4개 시설은 온천이 메인이에요. 온천은 남녀노소 누구나 가잖아요. 외부인이나 주민들도 와서 그 시설을 이용하고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도록 공간 배치에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더라고요. 모토는 ‘뒤섞임’, ‘어울림’이에요. 우린 폐쇄성이 너무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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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에고타노모리’는 주거, 의료, 육아, 간병을 통합한 세대 순환형 복합 커뮤니티다. 마을의 중심에 편의점, 보육원, 레스토랑 등 교류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게 했다. 김경인 씨 제공

노년의 존엄과 자립

―노년의 귀촌 귀향에 대해서는.


“익숙한 공간이라면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너무 한적한 시골은 의료가 안 되잖아요. 결국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때까지로 한정되는 것 아닐까요.”



―정작 본인은 어떻게?


“제 경우는 지금 사는 동네가 너무 좋아요. 전철역에 바로 붙어 있는 아파트인데 병원도 가깝고 자연환경도 좋아요. 문화시설은 전철 타고 가면 다 있죠. 그러니 제 경우 실버타운에 갈 필요가 없더라는 거죠. 이제 재건축 연한이 됐는데 그때 데이케어 시설을 넣자고 제가 나서서 하겠다고 했더니 아는 교수님이 ‘야, 너 그러다가 맞아 죽어’라고 하시더라구요. 하하.”



―언젠가는 본인들이 이용할 시설인데, 왜 싫어할까요.


“초고령 사회에서는 재건축이나 신도시 계획할 때 데이케어 시설이나 요양시설을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그런 시설들이 곳곳에 확충되면 주민들이 굳이 실버타운에 갈 필요가 없어요. 사실 요즘 신축아파트들은 커뮤니티 시설에 헬스장 사우나가 다 있어요. 심지어 ‘아침밥 주는 아파트’도 생기잖아요.


한국은 아파트 주거가 많은데, 아무리 낡은 아파트라도 엘리베이터니 경사로 등은 기본적으로 다 돼 있어요. 여기에 커뮤니티 시설을 고령친화적으로 구성한다면 상당수 고령자들은 내 집에서 편하게 나이들며 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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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거실’ 개념으로 꾸민 강동구 청소년문화의 집 1층 . 청소년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와서 쉬다 갈 수 있게 했다. 김경인 씨 제공

다른 세대와의 어울림 통해 공존 추구

그가 보내준 이력서는 깨알같은 글씨로 무려 27쪽에 이르렀다. 대학에서는 조경학을 전공했고 환경대학원을 거쳐 일본 교토대 ‘인간 환경 설계학 연구실’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2001년 경관디자인회사 ‘브이아이랜드’를 설립해 22년간 지자체와 관공서에서 10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나 2023년 4월 갑자기 사업을 접었다.


“이 분야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로 잘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팠어요. 그동안 제가 시속 150km로 달리듯 살았거든요. 지금까지 낸 책이 번역 포함 20여 권이고 회사 운영하고 남편 밥해주고 아이도 키웠어요.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겠구나 싶어서, 사업은 정리했습니다.”


―강동구 일을 힘들게 병행한 이유는.


“돌아보면 제가 아는 것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세대 공존과 교류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게 되더군요. 이를 테면 강동구 구도시에는 커뮤니티 시설이 거의 없어서 이것저것 손을 댔는데, 노인복지관 짓는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싫어합니다. 반대로 청소년 문화의 집 짓겠다고 하면 노인들이 싫어하세요. 서로 싫어하는 거죠. 제 방침은 과감하게 섞는 거예요.


그래서 강동구의 복지시설들은 1층을 비워 ‘모두의 거실’로 만들었어요. 십자성 경로당 1층에 카페를 둔 것처럼 청소년 문화의 집 1층도 어르신들이 들어가 즐길 수 있고 노인복지관도 일반인 누구나 들어와서 쉬고 갈 수 있게 했어요. 세대는 서로 섞여야 하고 그걸 잘 이어주는 게 공간의 힘입니다.”



―지금의 활동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고령자에게 필요한 건 돌봄이 아니라 자립이고 시설이 아니라 주거입니다. 노인을 따로 보호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거죠. 저는 노년의 삶을 존엄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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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 경로당 옥상에 마련된 휴게시설에서. 김경인 씨는 2019년부터 2년간 강동구청의 도시경관 총괄기획가로 일하면서 이 경로당을 비롯한 300여개 공공시설의 디자인을 바꿨다. 등뒤의 빗살무늬 장식은 강동구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를 표현한 것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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