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식 지도를 재편하고 있는 한국의 발효
[푸드 NOW]
뉴욕에서 핫한 한국 레스토랑
발효, 감칠맛의 키포인트
트렌디한 조리법으로 재평가… 펑키한 식재료로 쓰이는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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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고 황홀한 경험!”
“어떻게 한 접시에 이렇게 많은 맛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발효의 맛은 결국 눈물을 흘리게끔 만들었다.”
이는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미국 뉴욕의 코리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아토믹스(ATOMIX)’를 다녀온 사람들이 남긴 소감이다. 지난해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뉴욕 2023에 등재된 식당 71곳 중 한국 식당이 무려 11곳을 차지했고, 앞서 언급한 아토믹스는 미식 업계 최고 권위의 2023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미국 내 1위에 올랐다. 미국의 음식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피터 웰스는 ‘한국 레스토랑은 어떻게 뉴욕의 파인다이닝 지도를 재정립했을까(How Korean Restaurants Remade Fine Dining in New York)’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에 특집 기사를 실으며 한식의 위상을 높게 평가했다.
불닭볶음면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많은 세계인이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게 했고, 세계 다이닝 트렌드의 주역으로 된장, 미소, 콤부차, 템페 등과 같은 발효 음식이 꼽히면서 발효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맛을 구사하는 한국 음식은 트렌디하고 펑키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맛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 등 다섯 가지를 말하지만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여섯 번째 맛이 있다. 바로 감칠맛이다. 감칠맛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깊고, 중독적인 맛이 특징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발효 문화가 감칠맛을 구사하는 데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고 있다.
영국의 대표 식품유통 업체 웨이트로즈는 2024 식음료 트렌드 리포트에서 발효를 톱 트렌드로 꼽으며 매력적인 식재료로 된장을 언급했다. 일본의 미소를 좋아한다면 ‘된장(DOENJANG)’도 좋아할 것이라며 한국의 콩 발효 식품인 된장은 간장의 사촌격으로 묵직하면서 짜고 신 감칠맛이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이어 된장은 튀김 요리에 사용하거나 채소,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캐러멜과 된장이 만나면 완전히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통 한국 사람은 찌개나 국을 끓일 때 된장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샐러드 드레싱이나 튀김 요리에 활용하고 심지어 캐러멜과 믹스하라니! 오히려 된장의 종주국인 한국이 된장을 보수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해외에 있는 셰프나 요리 연구가들은 된장을 펑키한 식재료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실 발효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채소를 소금물에 절여 만든 피클이나 치즈, 와인, 콤부차 모두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발효(Fermentation)의 어원은 끓는다는 뜻의 라틴어 ‘Fever’에서 유래되었다. 효모(Yeast) 역시 거품을 만들며 끓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Gyst’에서 유래되었다. 무언가가 끓는다는 부분이 공통적인데 이는 뜨거운 열로 인해 끓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로 인해 새로운 맛이 펼쳐진다는 의미다. 과거의 발효는 식재료를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지만 요즘의 발효는 한 단계 더 새로운 맛을 내는 데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트렌디한 조리법으로 가치를 재평가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코리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코리 KORII’는 발효를 테마로 12가지가 넘는 코스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코리의 김현빈 셰프는 계절마다 새로운 제철 식재료를 발효시키는데, 요리에 무려 100가지 이상의 발효 재료를 사용한다. 부사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플루이드 사과겔, 젖산이 생긴 겨울 딸기와 오렌지, 6개월간 숙성시킨 콩테 치즈, 소의 머리 모양으로 생긴 비스킷 위에 뿌린 된장 파우더, 저온 흑발효시킨 공주 알밤, 30일간 우리밀과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지게미빵 등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맛으로 다채로운 미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0년 넘게 파인다이닝을 즐겨온 사람으로서 많은 요리들이 다소 뻔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 즈음 만난 코리의 미식 경험은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전 세계 미식 지도에 지각 변동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가 미식의 근본이고 교과서였다면 요즘에는 한국, 태국, 인도, 아프리카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가의 요리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발효가 있다. 적지 않은 해외 셰프나 미식가들은 발효를 거쳐 탄생한 한국의 요리를 신비롭고, 힙한 음식으로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 외국에서 탄생한 된장 소스가 한국으로 역수출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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