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처럼… 몸속 ‘피’ 흐르는 로봇 물고기가 스르르 헤엄쳤다
美 코넬대, 소프트 로봇 개발 주목
미국 코넬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물고기가 수조 속을 헤엄치고 있다(왼쪽 사진). 미국 코넬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물고기의 내부 구조가 공개됐다. 지느러미의 회색 부분은 물고기에게 전원을 공급하는 ‘레독스 흐름 배터리’다. 로봇 내부에 흰색 혈관처럼 보이는 부분은 전해액이 이동하는 통로다. 펜실베이니아대 제공 |
20세기 초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자신의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인간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로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그 뒤 100년간 로봇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사람이나 동물과는 전혀 다른 딱딱한 몸체를 가진 복잡한 기계 장치로 주로 묘사됐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사람처럼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피가 흐르고 여기에서 힘을 얻어 헤엄을 치는 로봇 물고기를 개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로버트 셰퍼드 미국 코넬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전기를 공급하는 전해액과 로봇의 동력을 만드는 유압액을 섞은 이른바 ‘합성 혈액’으로 작동하는 로봇 물고기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20일자에 공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물고기는 부드럽고 휘는 소재로 만들어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이다. 몸에 가시처럼 난 등지느러미가 특징인 쏠배감펭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했다. 약 40cm 길이의 로봇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 배지느러미 등 물고기가 가진 몸 조건을 모두 갖췄다. 지느러미 속에는 합성 혈액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배터리를 넣었고, 심장 역할을 하는 순환 펌프로 몸 곳곳에 혈액을 공급한다. 로봇 물고기는 아직은 실제 물고기처럼 민첩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1분에 자기 몸길이의 1.56배(약 62cm)를 헤엄치는 데 성공했다. 재충전을 하지 않고 37시간 동안 헤엄친다.
소프트 로봇은 주로 실리콘이나 고무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로 만든다.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사람의 힘이 닿지 않는 재난 구조 현장이나 수중 탐색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은다. 이런 환경에서 활용하려면 외부와 단절된 채로 오랜 시간 혼자서 움직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주 충전하지 않고도 임무를 수행하려면 에너지 저장 기술이 핵심이다. 문제는 배터리를 추가하면 무게도 함께 늘어나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소프트 로봇은 에너지 저장 방식에 많이 좌우된다. 몸 전체가 유연해야 하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높은 딱딱한 배터리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최근 과산화수소를 분해할 때 나오는 산소 기체의 압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옥토봇’을 내놓기도 했다. 최정우 서강대 교수 연구진도 생쥐 심장 근육세포를 이식해 몸을 움직이게 한 가오리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로봇은 구동 시간의 한계가 컸다.
연구팀은 동물이 피를 동력원으로 활용하듯 액체 배터리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전해액을 활용하는 2차전지인 레독스 흐름 배터리(RFB)를 활용했다. 배터리에 음극액과 양극액을 막으로 분리한 채 담으면 둘 사이에 전기의 흐름이 생기는 원리를 이용하는 전지다. 이를 두고 ‘흐름 배터리’로 부르는 이유는 음극액과 양극액을 펌프로 계속 순환시켜 전해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펌프 역시 흐름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별도의 전기 공급이 필요 없다.
로봇 물고기는 이렇게 생산된 전기를 동력으로 바꾸지 않고 전해액을 유압액처럼 사용했다. 꼬리지느러미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레독스 흐름 배터리가 설치됐는데 몸통과 꼬리 연결부에 달린 펌프가 음극액을 왼쪽과 오른쪽 전지에 번갈아 보내는 식이다. 음극액이 왼쪽에 차면 반대로 오른쪽은 음극액이 없어져 쪼그라든다. 이런 과정을 좌우로 반복하면 물고기 꼬리가 좌우로 움직이며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로봇 물고기가 위아래로 움직이게 배지느러미도 상하로 움직이게 했다.
셰퍼드 교수는 “별도의 배터리와 유압 유체 시스템을 가지는 로봇에 비해 에너지양을 325% 늘렸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