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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동아일보

가족화의 반전

동아일보

다비드 데 그랑주 ‘솔턴스톨 가족’, 1636∼1637년경.

잘 차려입은 남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서고 있다. 침대에 누운 아내는 손을 뻗어 이들을 맞이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유모처럼 보이는 여성이 갓난아기를 안고 있다. 아내의 출산을 축하하러 온 남편과 아이들을 그린 그림일까?


17세기 영국 화가 다비드 데 그랑주가 그린 이 그림 속 모델은 영국 귀족 리처드 솔턴스톨 경의 가족이다. 붉은색 침대 커튼과 의상, 화려한 실내 장식은 이 가족의 부와 높은 신분을 보여 준다. 언뜻 보면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갓 출산한 아내를 보러 온 장면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여성은 솔턴스톨의 첫 부인으로 왼쪽 두 아이의 엄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은 두 번째 부인으로 자신이 낳은 아들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솔턴스톨이 한 지붕 아래 두 부인을 거느리고 살았던 건 아니다. 이 그림을 의뢰했을 당시, 본부인은 이미 수년 전에 사망했고, 재혼한 부인은 아들을 낳은 직후였다. 그러니까 그는 막내아들의 탄생을 기념함과 동시에 죽은 부인을 애도하기 위해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는 가족화를 주문한 것이다. 그림의 또 다른 반전은 왼쪽의 두 아이다. 복장 때문에 둘 다 딸로 보이지만 사실은 딸 앤(Ann)과 아들 리처드(Richard)다. 당시 각각 3세, 7세였다. 7세 무렵까지는 남아도 여아 옷을 입던 당시 관행에 따라 리처드는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편의 흰 장갑이다. 그는 한쪽 장갑을 벗어 누워 있는 부인에게 건네고 있다. 흰 장갑은 애도의 의미도 있지만 약속을 상징한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재산도 상속할 것이라는 약속일 것이다. 흰 옷에 흰 천을 머리에 두른 아내는 곧 숨을 거두기 직전이지만 장갑보다는 죽어서도 눈에 밟힐 어린 자녀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마지막 반전은 남편의 시선이다. 손은 과거 부인의 자녀들과 연결돼 있지만 그의 시선은 새로 얻은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향하고 있다. 과연 그는 본부인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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