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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송이 화제인 이유

대통령의 딸, 세기의 결혼, 그리고 화제의 이혼 소송까지

국내 재계 서열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SK그룹이 현재 시끄럽다. SK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하 직함 생략)의 이혼소송이 재산분할 다툼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이 세기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노소영의 특이한 배경, 그리고 SK그룹의 성장 과정에서 그 배경이 큰 영향을 끼친 연유에서다.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SK그룹, 그리고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의 결혼과 그 뒤에 이어진 일련의 선경그룹의 발전사는 지금도 ‘정경유착’의 사례로 의심을 받으며 논란을 빚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이자 아트센터 나비의 운영자인 노소영 관장

1961년 3월 31일 대구시에서 태어난 노소영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비교적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학창시절에도 그다지 튀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을 때는 170cm에 달하는 큰 키로 학내에서 화제였다. 서울대 공대 내에서 같은 학년에 여성은 5명에 불과했기에, 키가 크고 세련된 패션 감각의 그녀는 서울대 공대 퀸카로 주로 불렸다.


하지만 대학교 시절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입학 후 도시락을 혼자 먹기도 하는 등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노소영은 결국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2학년 때 미국의 윌리엄앤메리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이어서 시카고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기에서 지금의 배우자인 최태원 회장과 선후배 관계로 처음 만나게 된다.

미국에서 만난 최태원 회장과의 결혼

노소영 관장의 배우자이자 지금은 이혼 소송 중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시카고대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갔을 때, 학교에 남은 그녀는 식생활에 곤란을 겪었다. 학내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고, 차도 없었기에 마땅히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며칠을 힘들게 보내던 와중에 학교 선배에게서 연락을 받고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 최태원 회장이 나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금반지를 나눠 끼고, 테니스를 함께 치면서 소박한 연애를 즐겼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요리를 해서 그녀에게 대접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유학 시절의 관계는 이후로도 줄곧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장녀인 최윤정 씨를 1989년에, 차녀 최민정 씨를 1991년에 봤다. 1995년에는 장남인 최인근 씨가 태어났다. 아이들의 육아에 집중하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에 나선 것은 1997년부터였다. 고 최종현 SK그룹 2대 회장의 부인인 박계희 여사로부터 워커힐미술관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관 경영에 나선 것이다.

워커힐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그리고 지금

SK그룹 신사옥으로 자리를 옮겨 개관한 아트센터 나비

1984년 개관한 워커힐미술관은 1997년 박계희 여사의 사망 전까지 14년 동안 총 138회의 전시회를 연 유서 깊은 미술관이었다. 이곳은 1999년 지금의 신사옥으로 주소를 이전했으며, 2000년에는 노소영의 주도하에 ‘아트센터 나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개관하게 된다. 서울 서린동 SK본사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는 평범한 미술관이 아니라, 미디어아트 쪽으로 특화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소영은 디지털아트 분야에서는 국내 최정상에 선 전문가로 꼽힌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중국 칭화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서울예술대 디지털아트학과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술할 이혼 소송으로 인해, 현재 아트센터 나비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트센터 나비의 경영 상당 부분은 SK그룹, 그리고 최태원 회장에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관 자체가 SK본사 4층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워커힐미술관이 아트센터 나비가 되기까지, 노소영의 삶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배우자인 최태원 회장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나날이 길었기 때문이다. 2003년 최태원 회장은 1조 2,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로, 2013년에는 횡령으로 수감생활을 지냈다. 가정에 닥친 악재 속에서, 두 사람의 부부로서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잦은 말다툼 속에서 2013년, 횡령으로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은 최태원 회장은 내심 ‘이혼’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기의 결혼이 이혼 소송으로

노소영 관장은 이혼 소송을 응하지 않다가, 마침내 대규모의 맞소송에 나섰다

2015년 12월 29일, 최태원 회장은 세계일보에 서신을 보내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과 노소영과의 이혼을 계획 중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동의 없이 발표했다. 노소영은 이에 대해 혼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6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참아왔으며 이혼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혼외 자식도 직접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으며, 남편의 모든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안겠다는 입장이었다.


2017년 7월, 최태원 회장은 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했으며, 법원은 조정 절차에 돌입했으나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세 차례의 조정 끝에 결국 2018년 2월 조정 불성립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청구했으며, 줄곧 이에 응하지 않던 노소영은 작년 12월 서울가정법원에 최태원 회장을 상대로 하는 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 소송을 청구하면서 처음으로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송에 대한 반소(맞고소)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노소영이 청구한 재산 분할 규모는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의 42.29%로, 청구 당시의 주식 종가 기준으로는 1조 3천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아직 불투명한 향후의 전개 방향

국내 최고의 미디어아트 센터인 아트센터 나비의 앞날도 불투명한 상황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이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재벌가의 이혼 소송 혹은 혼외자 및 혼외 자식과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이 소송이 주된 화두가 ‘정경유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보다 중요하다. SK그룹은 1953년 고 최종건 창업주가 선경직물을 불하받은 것이 시초인 곳이다. 1980년에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면서 주력 업종이 직물에서 에너지, 화학 분야로 옮겨졌으며, 지금의 주력 사업인 정보통신 분야는 비교적 늦은 때인 1985년부터 준비했다. 이들이 순식간에 통신 시장의 1인자로 올라선 것은 노소영과 최태원 회장의 결혼 이후부터였다. 1992년에는 대한텔레콤을 통해 쌍용, 동부, 동양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으며, 이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유로 이를 반납하게 된다.


그룹사의 성장에서 주된 키포인트가 된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그리고 ‘유공 민영화 대상자 선정’은 정경유착의 결과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이 본격화되면서, 분할이 필요한 재산의 형성 과정의 기여도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SK텔레콤과 SK에너지를 포함한 그룹사의 성장에 노소영이 기여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이는 곧 정경유착이 있었다는 결과로도 이어져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조 원 규모의 이혼 소송의 첫 재판은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 심리로 지난 4월 7일 열렸으며, 여기에서 노소영은 최태원 회장이 가정으로 돌아오면 모든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 변론 기일은 오는 5월 26일 오후로 예정돼 있다.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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