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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78세 셰프는 평생 정리한 요리 노트를 딸에게 보냈다

[아무튼, 주말] 아버지의 레시피 책으로 펴낸 나카가와 히데코씨


서울 연희동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은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한 달 수강생 150명에 대기자도 150명이 넘던 인기 요리 교실이다. 요리 교실을 운영하는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씨 앞으로 9년 전 어느 날 일본 도쿄에서 당시 78세였던 아버지가 보낸 골판지 상자가 도착했다. ’60년 넘게 해온 요리업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라는 짧은 메모를 읽고 상자를 열었다.


얼마나 갈아 썼는지 얄팍해진 주방칼 10자루, 손때 묻은 요리 서적들과 함께 누렇게 바랜 공책 6권이 담겨 있었다. 공책을 펼치자 HB연필로 또박또박 적은 요리법과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그린 음식 그림으로 가득했다. 프랑스 식당 요리사였던 아버지가 견습생 시절부터 정리한 레시피 노트였다.


히데코씨는 “요리사로서 아버지의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그가 최근 펴낸 ‘아버지의 레시피’(이봄)는 아버지가 보낸 레시피와 거기 얽힌 가족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다.


◇운명처럼 음식 하게 된 요리사의 딸


히데코씨 아버지는 도쿄 임페리얼호텔(제국호텔)의 프랑스 요리사였다. 1890년 설립된 세계적으로도 유서 깊은 호텔 중 하나이자, 음식·서비스·시설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린다.


사도가시마(佐渡島)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난 히데코씨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로 상경, YMCA호텔에서 수습생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그는 성실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1년 뒤 임페리얼호텔로 이직, 요리사로서 본격적인 이력을 쌓았다. 1970년대 당시 서독 수도 본 주재 일본대사관 전속 조리장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며 78세가 될 때까지 요리사로 일했다.


이런 아버지를 뒀지만, 딸인 히데코씨가 ‘요리 선생’이 될 거라곤 가족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제가 음식 관련된 일을 하길 바라셨어요. 일본에도 인맥이 중요하잖아요. 아버지가 임페리얼호텔에 아는 분들이 있는 데다 제가 독일어·영어도 하니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겠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도쿄의 여자대학 영양학과에 진학하면 어떻겠니?’라고 물었어요.”


히데코씨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대학에서 언어학과 국제관계론을 공부했다. “보수적인 어머니가 내 진로를 ‘영양학과’ 그것도 ‘여대’로 못 박는, 일방적인 느낌이 싫어 더욱 반발했죠. 그러니 마흔 넘어 요리 교실을 시작했을 때 일본에 계신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난 히데코씨는 기자, 번역가 등으로 일했다. 1994년 한국·일본어 비교언어학을 공부하려고 서울에 왔다가 1998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며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요리 교실은 2008년 시작했다. “주변 지인들이 ‘스페인에서 살았으니 파에야(paella)도 만들 줄 알겠네요’ 묻길래 ‘그럼요’ 했더니 가르쳐달라고 해서 우연히 하게 됐어요.” 부모님께는 2011년 에세이 ‘셰프의 딸’을 펴내면서 비로소 요리를 가르친다고 알렸다.


“사실은 나, 서울에서 요리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 수강생도 꽤 많아. 예전에 아빠가 ‘레스토랑 나카가와’에서 운영하던 요리 교실처럼 풀코스를 가르쳐.”


부모님은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사로서 은퇴하며 자신이 평생 정리한 요리 레시피 500여 개가 담긴 노트와 칼, 요리책을 딸에게 보낸 것이다.


“아버지의 레시피는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서 한 번 들으면 바로 기억할 수 있고, 재료와 만드는 법이 정확해서 그대로만 따라하면 실패하지 않아요. 그런 레시피를 나 혼자 독점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의 레시피를 책으로 펴낸 까닭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딸은 수강생들에게


히데코씨는 책을 펴내기 이전부터 아버지의 레시피를 다른 이들과 공유해왔다. “요리 교실 학생들에게 가르쳐왔어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나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살짝 업그레이드했지요.”


아버지의 레시피 노트에 담긴 요리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비롯해 카레라이스, 돈가스, 비프스튜, 그라탱, 크로켓 등 흔히 ‘경양식’으로 분류되는, 일본식으로 변형된 서양식이다. 경양식은 임페리얼호텔에서 확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데코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요리 철학을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요리 교실을 한다고 했을 때 한참 침묵하시다가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데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라고 하셨던 정도?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먹고 즐거워하는 표정 보기를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1970년대 당시 셰프로서는 드물게 레스토랑 주방에서 주부 대상으로 요리 교실을 여셨고요. 제가 요리 교실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버지에게서 딸에게 전해진 레시피는 요리 교실로 그리고 히데코씨의 대학생 두 아들에게로 전해졌다. “큰아들은 외할아버지에게도, 제게도 햄버그스테이크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둘째는 요리 학교에 간대요. 아들들은 외할아버지의 레시피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해 재창조할까, 그 맛이 무척 기대돼요.”


제국호텔 ‘기업 비밀’ 담긴 햄버그스테이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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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히데코씨는 “요리교실 학생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레시피가 햄버그스테이크”라고 했다. “아버지는 ‘햄버그를 반죽할 때 마지막에 케첩과 돈가스 소스를 살짝 넣으면 맛있어. 마지막에는 간장으로 짠맛을 조절하는 거야. 이건 기업 비밀이니까 외부에 누설하면 안 돼’라고 ‘다짐’을 받으며 슬쩍 웃으셨어요.” 나카가와씨와 햄버그스테이크를 만들어봤다. 아래 동영상 참조.


재료: 양파 1개, 버터 1큰술, 식빵 2장, 우유 적당량, 다진 소고기 300g, 다진 돼지고기 300g, 소금 1/2큰술, 후추 약간, 토마토케첩 1큰술, 돈가스 소스 1큰술, 식용유 약간, 올리브오일 1~2큰술, 육두구(너트메그) 1작은술


스테이크 소스: 레드와인 3큰술, 토마토케첩 2큰술, 디종 머스터드(양겨자) 2작은술, 돈가스 소스·간장·물·설탕 약간씩



  1. 양파를 다진다. 프라이팬에 버터 1큰술을 넣고 센 불에서 양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은 뒤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힌다.
  2. 식빵을 손으로 찢어서 양푼에 담는다. 빵이 잠길 정도로 우유를 부어 부드럽게 만든다.
  3. 별도의 양푼에 다진 소·돼지고기, 양파, 2의 식빵, 소금, 후추, 토마토케첩, 돈가스 소스, 육두구를 넣는다. 점성이 생겨 귓불 정도 강도가 되도록 손으로 충분히 반죽한다.
  4. 손에 식용유를 조금 묻혀서 3의 반죽을 4등분해 둥글게 뭉친다. 캐치볼 하듯 양손으로 반죽을 던져서 공기를 완벽히 뺀다. 반죽을 타원형으로 만들어 달라붙지 않도록 물에 적신 도마에 놓고, 갈라진 부분이 없도록 식칼 옆쪽으로 잘 다듬은 후 가운데를 가볍게 눌러 살짝 움푹하게 만든다.
  5.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 1큰술을 두르고 중불에서 가열한다. 반죽의 움푹한 부분이 위로 향하도록 놓고 강불에서 굽는다. 뒷면 전체가 노르스름하게 구워지면 뒤집는다. 뚜껑을 덮고 속까지 잘 익도록 약불에서 5~7분 굽는다.
  6. 고기 표면에 투명한 즙이 배어나오고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을 때 탄력이 느껴지면 불을 끄고 햄버그스테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는다.
  7. 프라이팬에 남은 육즙에 레드와인을 넣고 중불로 끓여 알코올이 날아가게 한다. 레드와인과 육즙이 거품이 생길 정도로 졸여지면 토마토케첩, 돈가스 소스, 디종 머스터드를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조린다. 간장, 물, 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햄버그스테이크에 뿌린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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