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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19세기 유럽 여인들 '최고 명품'은 바로 이것

허윤희 기자의 고색창연

상아·나전으로 만든 부채 한 점에 수백 년 이어온 동서 교류사 담겨

내년 2월까지 화정박물관 특별전


상아로 만든 부채 한 점이 활짝 펼쳐졌다. 앞면엔 청나라 인물 군상이 등장하는 풍속화, 뒷면엔 화조(花鳥)를 그려넣었다. 얼굴 하나하나에 상아를 얇게 잘라 붙이고, 옷에는 비단을 오려 붙여 장식했다. 갓대와 부챗살은 상아 표면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다시 금으로 장식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19세기 중국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한 접선(摺扇·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 아래 사진 왼쪽)이다.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 특별전 '유럽으로 건너간 중국 부채'는 부채라는 생활 소품을 통해 시대상의 한 토막을 들여다본다. 19세기 유럽 여성에게 '중국산 부채'는 요즘 명품백 못지않은 사치품이었다. 바다 건너온 이국적 디자인과 화려한 색채, 상아·나전·거북 등딱지 같은 진귀한 소재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동서 교역의 중심 물품이었던 차와 비단, 도자기는 국가적인 관리 대상이었으나, 부채 같은 소품은 광저우를 출입하는 서양인들의 개인 교역이 허용됐다. 중국을 방문한 유럽 동인도회사 관계자, 선교사, 군인들이 선물용으로 부채를 구입해 유럽으로 가져갔다.

(사진 오른쪽)19세기 중국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한 부채. 상아로 만든 윤선(輪扇·둥근 부채)으로 세 개의 원형 문양판 안에 누각이 투각됐다. /화정박물관

가장 대표적인 수출용 부채가 채색풍속화 접선. 중국에서 왔다고 '만다린 팬(fan)'이라고 흔히 불렸다. 반제품으로 수출해 유럽에서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는 방식도 유행했다. 유럽 귀족들은 광저우를 출입하는 상인을 통해 가문의 문장, 개인 이니셜을 넣은 부채를 주문하기도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15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접선을 들여와 소개했고, 16세기부터 유럽 귀족 사이에서 부채는 인기 있는 소품으로 자리 잡았다. 17~18세기에는 신분의 상징이자 여성의 필수 장식품이 됐다"고 했다.


중국에서 제작해 유럽으로 수출한 부채 60여점, 유럽 부채 20여점, 관련 회화와 공예품 10여점이 나왔다. 유럽 취향에 맞춰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성인을 묘사한 접선,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부채, 단향목(檀香木)을 깎아 만든 브리제 부채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부채 한 점에 수백 년 동서 교류사와 공예사가 들어 있다. 내년 2월 16일까지. 월요일 휴관.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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