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칠 때마다 신기록 “올해도 멈추지 않겠다”
한국 수영 간판 황선우가 지난달 본지 인터뷰에서 2021~2022년 차지한 메달을 어깨에 건 모습. 황선우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쇼트코스 금, 롱코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기록과 한국 기록도 갈아치웠다. 2023년 7월 세계선수권과 9월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을 노리는 황선우는 “메달보다 세계신기록에 더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
“올림픽 금메달은 여러 명에게 있지만, 세계기록은 딱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잖아요. 그 종목 얘기를 할 때마다 계속 언급되고 싶습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올림픽이 아닌 대회에서 세계신기록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황선우(20·강원도청)는 거침없이 ‘세계신기록’을 골랐다. 불멸의 역사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포부가 엿보였다.
그는 지난해 출전한 대회에서 물살을 가를 때마다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 수영 역사를 새로 쓰고 아시아를 놀라게 했다. 이젠 세계기록도 넘본다.
황선우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렸다면, 2022년엔 세계적 선수임을 입증했다. 올 한 해 누구보다 높이 서고 싶어 하는 약관(弱冠)의 청년을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부스터 온’ 2022년
황선우에게 2022년을 돌아보며 한마디로 정리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10초가량 고민한 뒤 “부스터 온(Booster On)!”을 외쳤다.
황선우는 3월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 자유형 100m·200m에서 당시 세계 1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우승하더니,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FINA(국제수영연맹) 롱코스(50m풀에서 경기)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 결선에서 한국신기록(1분44초47)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를 앞세운 대표팀은 계영 8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단체전 결선에 진출해 한국신기록(7분06초93)을 작성하며 6위를 차지했다. 황선우는 박태환(34) 이후 11년 만에 세계선수권 경영 종목에서 입상한 두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황선우의 부스터는 12월에도 꺼지지 않았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FINA 제16회 쇼트코스(25m풀)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에선 1분39초72의 대회 및 아시아 신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 패드를 찍어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2009년 ‘기술 도핑’ 논란을 일으킨 전신수영복을 입고 세웠던 현 세계기록(1분39초37)에 불과 0.35초 뒤졌다. 계영 800m 결선에선 첫 주자로 나서 6분49초67 기록을 내며 사상 최고 성적인 4위에 올랐다.
비록 쇼트코스였지만 자유형 200m에서 ‘마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1분39초대에 유일하게 진입했다. 또 부상을 딛고 쟁취해 낸 결과라 특히 값졌다. 황선우는 “결선을 앞두고 터치하는 과정에서 주먹도 쥘 수 없을 정도로 오른쪽 중지를 다쳐 기권까지 고민했다”면서 “2연패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꾹 참고 뛰었다”고 했다. 황선우는 작년 성과 중 이 대회 2연패가 가장 뜻깊었다고 꼽았다.
황선우가 지난달 본지 인터뷰에서 2021~2022년 차지한 메달을 목에 건 채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년 7월 세계선수권과 9월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을 노리는 황선우는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발판 삼아 정말 높이 뛰어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이태경 기자 |
◇'멈추지 마’ 2023년
누군가는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세계 정상급 스타트 능력과 헤엄치는 감각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선우의 이러한 영예 뒤엔 숨 가쁜 노력이 있었다. 지난해 4월 말부터 45일간 호주에서 잠영 동작인 돌핀킥 등 기술적인 부분을 가다듬고 레이스 운영과 관련한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9월엔 튀르키예 에르주룸의 해발 2100m 고산지대에서 매일 1만3000m씩 수영하며 3주 동안 심폐 능력 및 체력 강화를 위한 훈련을 견뎠다. 지금도 쉬는 토요일을 제외하곤 진천선수촌에서 빠짐없이 오전, 오후, 야간 훈련까지 소화해낸다.
“사실 중·고교 때는 노력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잘 나와서 ‘내가 그냥 수영을 잘하나’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근데 작년에 성인이 된 이후부턴 천재라기보단 엄청나게 노력하며 지금의 제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훈련을 하면서 정말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올해엔 7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롱코스 세계선수권과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황선우를 기다린다. 롱코스 세계선수권은 원래 2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2021년 열릴 예정이었던 후쿠오카 대회가 코로나 문제로 거듭 연기돼 2년 연속 열리게 됐다.
아시안게임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1년 미뤄졌다. 처음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황선우는 “아시아 국가들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라면서 “개인 종목인 자유형 100m·200m는 물론이고 단체전인 계영에서도 최초로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서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황선우는 수영복과 수영모 등 모든 수영 장비를 직접 구매해 사용한다.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장비와 함께 올해에도 역영할 준비를 마쳤다. 사진은 황선우가 본지 인터뷰에서 활짝 웃는 모습. /이태경 기자 |
지난해 또래들이 대학 신입생으로 캠퍼스를 활보할 때 황선우는 수영 선수로 세계무대를 누볐다. 뚜렷한 족적도 남겼다. 그래도 평범한 청춘이 그립진 않을까. 황선우는 “캠퍼스의 향기도 느껴보고 싶지만, 지금은 수영이 더 좋아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 없이 올인해야죠”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처럼 수영에 ‘진심’인 청년은 “올해 국민들의 응원에 꼭 보답하겠다”고 눈을 빛내며 2023년 각오를 외쳤다. “Keep Going!(멈추지 마)”
[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