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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참게는 어쩌다 ‘원조 밥도둑’ 자리를 꽃게에게 빼앗겼나

[아무튼, 주말] 가을 대표 별미 참게로 유명

파주 임진강 어촌계 가보니


“참게, 저기 들어오네요.” 지난 17일 어부 하나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파주어촌계’로 트럭을 몰고 들어왔다. 짐칸에 커다란 그물 포대 3개가 실려 있었다. 포대마다 참게로 가득했다. 탈출하고 싶어 안달 난 참게들이 “바글바글” 게거품 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박영숙(66) 파주어촌계 대표는 “임진강에 이틀 동안 통발을 쳐 놓아 잡은 참게들”이라며 “포대마다 1000마리쯤 들어가니 다 합치면 3000마리 정도겠다”고 했다. 박 대표가 어부를 도와 포대를 짐칸에서 내려 작은 수영장만 한 수조로 낑낑거리며 옮겼다. 포대를 들어 집게발에 털이 복슬복슬한 참게를 수조에 쏟아부었다. ‘해방’된 참게들이 사람이 없는 수조 반대편으로 빠르게 헤엄쳐 도망갔다.


게는 대표적인 가을 별미다. 우리 조상들은 참게를 최고로 쳤다.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참게를 ‘게 중에서 맛이 가장 좋다’고 평가했다. 조선 시대 임금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품이었다. ‘서리 내릴 무렵 참게는 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게장도 주로 참게로 담갔다. 미식가로 유명했던 문인·언론인 조풍연(1914~1991년)은 1978년 한 신문 칼럼에 ‘바다에서 잡히는 꽃게는 쳐주지 않았다. 논두렁이나 개울가에서 잡히는 참게가 오직 젓 담그기에 족한 게’라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게 하면 으레 꽃게를 떠올리고, 게장도 꽃게로 담그는 걸까.


◇식욕 자극하는 강렬한 내장의 풍미


참게는 민물게지만 고향은 바다다. 봄철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와 민물에서 성장한 참게는 가을이면 교미를 하고 알을 낳으러 바다로 돌아간다. 산란을 앞두고 살이 오르고 등딱지가 알과 내장으로 가득 찬다. 어민들이 잡아서 판매하는 참게는 등딱지가 가로 7㎝, 세로 6㎝쯤 된다. 박 대표는 “잡힌 참게 중 등딱지가 일회용 종이컵 밑바닥에 쏙 들어가면 도로 놓아준다”고 했다. “종이컵 바닥 지름이 대략 5㎝거든요. 이걸 넘는 참게는 2~3년생이 대부분입니다. 좀 크다 싶은 참게는 4~5년생이고요.”


참게는 집게발이 털로 감싸져 있다. 수게는 털이 빽빽하고, 암게는 성글다. 등딱지 한복판에 H자 모양 홈이 파여 있다. 등은 녹갈색이고 배는 희다. 삶거나 구우면 붉게 변한다. 단백질과 결합해 있던 아스타크산틴이란 붉은 색소 성분이 열을 가하면 단백질에서 분리돼 드러나는 것이다. 참게는 야행성으로 밤에 활동한다. 달이 없는 그믐께 잡은 참게가 가장 살이 많고 맛있고, 달 밝은 보름 앞뒤로는 먹지도 않고 강바닥에 웅크리고 활동하지 않아 여위고 맛도 떨어진다.


과거 한반도 대부분 강이나 개울에서 참게를 볼 수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해(蟹) 즉 참게가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1개 고을의 토산물이라고 기록했다. 이 중 임진강이 특히 참게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최대 참게 생산지는 임진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 파주였다. ‘파주게’ 또는 ‘임진강게’라고 따로 부를 정도였다. 파주게는 임금에게 진상되는 명품이었다. 참게가 하류로 이동하는 여울목에 대나무로 만든 ‘게살’을 설치, 참게를 얕은 수로로 유인해 잡았다.


임진강 참게는 9월 초부터 11월 하순까지 잡는다. 박 대표는 “등딱지에 내장이 가득 찼다”고 했다. 참게 맛의 핵심은 내장이다. 참게가 게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받는 건, 버터처럼 고소하면서 비릿한 듯 싱그러운 내장 특유의 식욕을 자극하는 풍미 때문이다. 꽃게나 대게보다 살은 없지만 등딱지 안쪽에 붙어있는 내장의 풍미가 압도적으로 진하다. 매운탕 끓일 때 작은 참게 한 마리만 넣어도 국물이 급격하게 달고 구수하고 깊어진다. 섬진강이 있는 경남 하동에서는 ‘참게가리장국’을 먹는다. 참게를 껍데기째 갈아 들깨, 밀가루, 쌀가루, 검은콩 가루 등 곡물·견과류 가루와 함께 끓인 보양탕이다. ‘가리’는 가루의 경남 사투리다.


참게 내장 맛을 극대화한 음식은 게장이다. 장독에 깨끗한 물을 붓고 참게를 하루 이틀 넣어두면 몸속 이물질을 토해낸다. 물을 따라낸 뒤 끓여서 식힌 간장을 붓는다. 이틀이나 사흘쯤 뒀다가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이고 식혀 붓는다. 서너 번 반복하면 참게에 간장이 고루 배면서 익는다. 등딱지를 열어보면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 내장이 들어있다. 짜고 비릿하고 고소하고 달큼하다.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게장이 왜 ‘원조 밥도둑’인지 실감하게 된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게는 알이 제일 맛있다고 착각하는데 진짜 맛있는 건 내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 손님들은 암게만 달라고 해요. 하지만 중국 동포분들은 수컷을 찾지요. ‘중국에선 가을 참게를 아무것도 넣지 않고 찌기만 해서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꽃게, 냉동고 보급 후 식탁 장악


귀한 대접 받던 참게가 꽃게에게 ‘게 중의 게’ 타이틀을 내준 건 1970년대부터지만, 위기는 훨씬 일찍 찾아왔다. 참게는 맛있지만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바로 디스토마 감염 위험이었다. ‘원래 게장은 특별한 풍미가 있는 음식으로 술상과 밥상에 없으면 안 될 진미가 되었으나 실상은 이 맛있는 음식이 해소와 혈담을 자아내는 토질(디스토마)의 원인’(1924년 5월 2일 자 동아일보)으로 지목됐고, 일제는 1924년 참게 어업과 판매를 전면 중단시켰다. 주요 수입원이었던 참게의 어획 금지는 파주 주민들에게 큰 타격이었다. 파주 주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진정서를 넣으며 저항했다. 일제는 위생 강화를 조건으로 10년 만인 1934년 참게 어업과 판매를 다시 허락했다.


1960년대 중반 디스토마가 다시 사회문제가 됐다. 1966년 11월 27일 자 조선일보에 ‘디스토마충(蟲) 없는 게장 담그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이 기사는 “노인규(서울대 보건대학원)씨의 가재 및 참게의 조리조작(調理操作)과 폐 디스토마에 관한 실험적 연구 등 ‘우리나라 디스토마의 감염원에 관한 연구’가 23일 서울의대에서 있은 학위 논문 심사에서 통과됨으로써 이에 따라 안심하고 게장을 담가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참게를 왜간장에 담글 때는 4일 18시간, 조선간장에서는 4일간 담그면 게 안의 폐 디스토마 유충은 완전히 죽는다. 빠른 시일에 먹으려면 70도 이상으로 가온 된 간장을 참게에 부으면 1~2시간 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소개하고 있다.


강에 하굿둑이 세워지고 공업화로 강물이 오염되면서 참게는 자취를 감췄다. 농약 사용 증가는 논에서 즐겨 서식하던 참게 개체 수 급감 원인이 됐다. 참게의 위상이 흔들리는 사이 꽃게가 식탁을 장악했다. 우리나라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은 “1970년대 냉동 창고가 보급되면서 꽃게가 도심까지 유통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서해 연평도 어부들이 지금은 봄가을 꽃게를 잡아 생활하지만 1960년대까지는 조기 어획에 의지했습니다. 꽃게는 쳐다보지도 않았죠. 오히려 그물을 훼손하고 떼내기 힘들어 천덕꾸러기 취급 받았어요. 조기잡이 그물에 꽃게가 걸리면 반찬거리 몇 마리 빼고는 버렸어요. 고추 모종 심고 거름 대신 꽃게 한 마리 푹 찔러놓았다는 주민도 있어요. 꽃게는 쉽게 상하고 보관도 어려운데 소비처가 멀어서 돈이 안 됐으니까요. 그러다 냉동고가 보급됐고, 조기가 연평 바다에서 사라졌으니 꽃게에 의지하게 됐지요.”


박영숙 대표는 “요즘 임진강에서 참게가 연평균 10t 정도 잡힌다”고 했다. 임진강 참게 어획량이 이 정도로 늘어난 건 1997년부터 정부가 새끼 참게 방류 사업을 벌인 덕분이다. “그래 봐야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파주 내에서 거의 다 소비된다고 봐야죠. 파주 이외 지역에서 임진강 참게라고 파는 건 대개 가짜일 거예요.” 참게 가격은 1㎏당 3만~4만원쯤 한다. 암컷 참게만 골라 담으면 1㎏당 5만~6만원쯤이다. 참게 한 마리가 100g쯤이니, 1㎏이면 10~11마리쯤 된다. 파주어촌계(031-958-8006~7)에 문의하면 진짜 임진강 참게를 내는 식당을 안내해준다. 전화로 구매하고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파주=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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