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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조선일보

“제2 ESS 사태 막아라”… 정부·지자체가 인프라 지원해야

[그래도 전기차가 미래다] [下] 120조원 생태계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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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옆·뒤서 물 뿜어… 전기차 화재 확산 막는‘워터 커튼’ - 전기차 화재 예방뿐 아니라 불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설비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인천 서구 하나금융그룹 통합데이터센터의 전기차 충전 구역에서 화재 진압 설비 ‘워터 커튼’이 시험 작동되는 모습. 전기차에서 불이 나면 충전 구역 천장, 바닥, 양옆, 뒤쪽에 설치된 노즐에서 물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한다. /장련성 기자

2017~2019년 전북 고창 등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가 잇따르자 정부는 실태 조사를 거쳐 대책을 내놨다. 2020년부터 ESS 충전율을 실내 80%, 실외 90%로 제한하고 기준을 넘기면 보조금을 깎았다. 그 결과는 당시 세계 선두권이었던 ESS 산업의 침체로 이어졌다. 2020년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의 ESS 시장 점유율은 합쳐 55%대로 각각 세계 2위, 3위였는데, 작년 말 기준 점유율은 9%까지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당시 정부 대책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은 하락했고, 중국 공세마저 이어져 벌어진 ‘참사’라 분석한다.


지금 이 일은 전기차·배터리 산업에도 일어나고 있다. 인천 청라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포비아(공포) 조짐이 나타나자 서울시 등 주요 지자체에서 충전율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주차장 진입을 막는 사례도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과 포비아에 정부·지자체의 섣부른 대책까지 겹쳐 작년 기준 120조원의 매출을 올린 우리 기업들의 전기차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제2의 ESS사태’가 일어날까 우려한다.


안전한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역할이지만, 동시에 시민의 불편과 불안을 해소할 제도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정부·지자체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탄탄한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이번 위기를 전기차·배터리 생태계의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고 조언한다.

지하주차장을 바꾸자

시급한 것 중 하나가 지하주차장 인프라다. 8월 기준 전국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20만6047개인데, 이 중 83%인 17만870개가 지하에 설치돼 있다. 특히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다수 건물에 전기차 충전소는 지하에서도 맨 아래층이나 구석에 둔 경우가 상당수라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선 전기차는 가급적 지상, 최소 지하 1~2층에 우선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불이 나면 삽시간에 지하에 연기가 차는데, 불이 난 곳이 깊을수록 소방관들이 연기를 빼면서 지하로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하 주차장은 층고가 낮은 곳도 많은데, 일반 소방차보다 높이가 낮은 저상 소방차도 넉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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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또 지하를 포함한 충전시설 주변 ‘전기차용 소화 장비’ 배치 기준도 필요하다. 전기차는 수조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작년 기준 누적 54만대, 충전기는 누적 약 31만대까지 늘었다. 전기차용 소화 장비는 법으로 정해진 기본적인 스프링클러 설치나 소화기 배치 등 외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 정부는 전국 공동주택이나 주요 건물에 전기차용 방재 장비인 질식소화포, 이동식 수조, 열 감지기 등이 얼마나 있는지, 사용법을 훈련하는지 여부 등은 전혀 파악도 못하고 있다. 기준이 없다 보니 이런 장비가 없는 곳에 이를 배치시킬 뾰족한 방법도 없다.

간이형 스프링클러 확대 검토

스프링클러도 핵심이다. 이번 청라 화재에서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많다. 작년까지 5년간 전국 공동주택 화재 2만3401건 중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한 경우는 3656건(16%)에 그쳤다. 고장 난 경우도 있고 인위적으로 잠가 두거나, 꺼버린 일도 많다는 뜻이다. 정기 소방 점검에서 스프링클러가 실제 작동하는지, 운영엔 문제가 없는지까지 더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사각지대도 감안해야 한다. 전국 공동주택 단지 약 4만4208곳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1만5388곳(35%)에 그친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오래된 건물까지 스프링클러 의무화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인센티브 등을 통해 최소 ‘간이형 스프링클러’ 등이라도 넣을 수 있게 유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전기차 맞춤 소방 신기술 절실

전기차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발맞춰서 정부의 소방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소방청에 전기차 화재 기술을 개발할 예산을 배정했다. 늦었을 뿐만 아니라 금액도 39억원에 그쳤다는 비판이 있다.


민간 기술도 정부 주도로 검증하고 보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전기차 충전시설의 위·아래·옆에서 물이 쏟아내 진화를 하는 장치를 개발해 도입했다. DL이앤씨는 차량 하부를 뚫고 물을 배터리에 분사하는 기술을 공동 개발했다. 그러나 수도권의 한 전기차 화재 진화 장치 개발 기업 관계자는 “권위 있는 기관이 장비의 효과를 검증·인증을 해줘야 더 많이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SS(에너지 저장 장치)사태

2017~2019년 ESS(에너지 저장 장치)에서 잇단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ESS 충전율을 100%가 아닌 90% 등으로 낮추게 하고, 보조금 지급 기준도 까다롭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제품의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2020년 세계시장 점유율 50%대였던 한국의 ESS 산업은 중국의 공세 등에 속수무책으로 밀려 작년 기준 한 자릿수 점유율까지 급락했다.


정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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