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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이 조각상 제발 일으키지 마세요

서현석이 구현한 '폐허가 된 미술관'

쓰러진 조각상 세우려는 해프닝 만발… 일평균 관람객 2600명 넘기며 흥행

조선일보

/북서울미술관

"대체 누구야?"

최근 북서울미술관 학예실 측은 CCTV 돌려 볼 일이 부쩍 늘었다. 퍼포먼스·설치미술가 서현석(54)씨가 전시실에 어렵사리(?) 구현한 '폐허'를 자꾸 누군가 '정돈'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사건이 있기 전 서씨는 2인전 '미완의 폐허' 준비를 위해 미술관 1층에 있는 75평짜리 프로젝트갤러리 전체를 싹 비웠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 오늘날의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즐길 거리 넘쳐나는 시대, '재미없는 미술관을 대체 왜 가야 하느냐'는 괴로운 질문 앞에서 폐허가 된 미술관을 상상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문화재단이 발표한 '2018 서울시민 문화 향유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334명 중 30% 가까운 응답자가 "지금까지 미술관 전시를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서씨는 텅 빈 공간 맨 안쪽 구석에 천사상(像) 하나를 덩그러니 쓰러뜨려 놓았다. 〈사진〉 이는 어떤 좌절처럼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개막 직후 누군가 쓰러져 있던 천사상을 바로 세워놓은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배치되는 데다 40㎏으로 제법 무거운 물건이기에 안전 문제 등을 염려한 미술관 측은 급히 CCTV를 돌려 봤다. 학예실 관계자는 "웬 부자(父子)가 낑낑대며 천사상을 다시 세워놓고 있었다"며 "이 쓰러진 상황 자체가 '작품'인 줄 모르고 선의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관 측이 다시 천사상을 쓰러뜨린 지 얼마 안 돼 다른 관람객이 이를 또 바로 세웠다. 같은 일이 네 번이나 되풀이됐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서씨는 "관람객들의 이 행동이야말로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기혜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이후 어쩔 수 없이 '눈으로만 보세요' 안내판을 세워야 했지만 폐허가 된 미술관을 일으키는 건 역시 관람객이라는 사실을 은유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전시는 일평균 관람객 2600명을 넘기며 이 미술관 역대 최고기록을 새로 썼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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