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사들의 단골 복집…“구본무 회장님은 아픈 몸 이끌고 오셨죠”
[아무튼, 주말]
‘복 지리’ 35년 끓여온 ‘태진복집’ 김진옥 대표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 중국 소동파는 복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서울 청와대 앞 통의동 골목에 있는 ‘태진복집’은 이 치명적인 맛의 주인공 복어를 가장 잘하는 식당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1988년 탁자 다섯 개에 불과한 10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해 오로지 복 하나만으로 역대 국무총리, 장관, 재벌 총수, 국회의원, 병원장, 법조인, 국민 배우 등 유명·유력 인사들을 단골로 수두룩하게 거느리며 35년째 영업 중이다.
그 비결이 궁금해 지난 17일 저녁 태진복집 주인 김진옥(63)씨와 마주 앉았다. 마침 이날 여기서 식사 중이던 인요한 연세대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25년 단골”이라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복 지리(맑은탕)가 그렇게 맛있어. 복 튀김은 지구상에서 제일 맛있어. 명이나물에 싸 먹는 맛이 그렇게 좋아. 다른 집 가면 계속 실망해. 재료를 뭘 쓰는지 몰라도 맛이 달라요. 나가 편견이 좀 심하제(웃음)?”
◇유명인사는 모두 우리 집 단골
-인 박사님 말고도 단골 리스트가 어마어마하다고.
“이한동, 고건, 김황식 등 역대 국무총리님 다 드나드셨다. 한덕수 총리도 얼마 전 오셨다. 지난 문재인 정권, 현 윤석열 정권 등 정치인들도 좌우 관계없이 다 온다. 노주현씨, 일용이 엄마(김수미) 등 유명 배우들도 단골이다. 김수현·유호 선생 등 방송작가들은 본인의 ‘사단’을 끌고 오셨다.”
-나이 지긋한 손님들을 오빠라고 부르던데.
“단골들과는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왔다. 말도 반말과 존댓말이 마구 섞인다, 하하! 옛날에는 부끄러워서 ‘맛있게 드세요’ 소리도 못 했다. 손님들이 ‘아이고, 벙어린가’ 그럴 정도였다. 하지만 손님이란 생각은 사실 처음부터 안 했다. 오빠 같고 아버지 같고 동생 같고 조카 같고 자식 같고 그렇다. 음식도 우리 식구한테 먹인다는 마음으로 만든다.”
남편 권승주씨가 “이 사람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안 듣는다”며 겸연쩍어했다. 김씨는 “상대방이 괜찮다는데 당신이 왜 그러느냐”며 깔깔 웃었다.
-재계 단골도 많다고 소문 났더라.
“삼성, GS, LG, 두산 등 재계 분들이 다 우리 집 단골이다. 오지 않은 대기업 회장님이 없다. 제일 존경한 분은 구본무 LG 회장님이었다. 항상 들어서면서 ‘김 사장, 나 왔어’라고 부르셨다. 그렇게 소탈하실 수가 없었다. 마지막 오셨을 때 ‘왜 이렇게 왜소해지셨어요’ 하면서 부축해 2층 방으로 모셨던 기억이 난다. 그랬더니 회장님이 ‘나 아파, 아픈데도 먹고 싶어 왔어’ 하셨다.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다.”
-제일 까탈스러운 단골은 누구였나.
“우리 집은 불평하는 분이 없었다. 다들 잘 먹고 칭찬만 하시지(웃음).”
-매너는 누가 제일 좋은가.
“인간미는 이재용 회장이 제일이다. 옛날 이 근처에 살 때 토요일 등산 가는 길에 전화해서는 ‘사장님, 제가 점심 좀 얻어 먹으러 가려는데 점심 좀 주세요’ 부탁하더라. 농도 잘하고 진짜 소탈하다. 한 번은 집에서 일하는 분들을 16명인가 전부 데리고와서 복 지리와 튀김을 주문해주고 ‘모자라면 말씀하셔서 실컷 드세요’ 하더라. 또 한 번은 손님과 와서 복 사시미(회) 두 접시를 시키더니, 한 접시를 수행원과 운전기사에게 들고 가서 ‘맛 보라’며 나눠줬다. 가정 교육도 철저했다. 아들이 꼬마일 때 데려와서는 ‘사장님께 인사하라’고 시켰다. 아들이 90도로 인사하더니, 들어갈 때는 신발 끝이 바깥을 향하도록 벗어서 가지런히 놓더라.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서로 껄끄러운 손님들이 동시에 오는 경우는 없나.
“왜 없겠나. 그럴 때는 한 팀은 지하 방으로, 다른 팀은 2층 방으로 모신다.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옛날에 내무부(현 행안부) 모 장관이 저녁 약속을 잡았다. 예약 명단을 확인하니 내무부 모 국장도 그날 예약했더라. 국장에게 전화해서 ‘오늘 장관님 오시니까 약속을 옮기라’고 알려줬더니 무척 고마워했다.”
◇자연산 참복 지리만 고집하는 이유
태진복집은 허름하지만 가격이 세다. 지리가 1인분 4만5000원, 튀김은 9만·14만원이나 한다. 미리 예약해야 하는 복어회는 시가로 받는다. 최고 수준의 식재료만 사용하는 고집 때문이다. 1kg짜리 자연산 참복만 쓴다. 매운탕은 손님이 부탁해도 안 끓여준다. 주방에서 직접 담그는 김치에 들어가는 배추 등 각종 채소도 오랫동안 거래해온 농가와 계약 재배해서 받는다.
-참복을 그것도 자연산만 쓰는 이유는?
“복어는 까치복·검복·은복·밀복 등 다양하지만, 흔히 참복이라 부르는 자주복이 가장 맛있다. 우리는 참복 중에서도 1kg짜리만 골라 쓴다. 더 커도 고기(복어)가 늙어서 질기고, 그보다 작으면 맛이 덜하다. 양식 복어는 800g 이상 키우는 경우가 드물다. 채산성이 떨어져서다. 원양에서 잡아 급속 냉동한 참복 1년 치를 선금 주고 확보해둔다. 복어를 잡다 보면 크기와 종류가 뒤섞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납품업체에 돈을 더 주고 1kg짜리만 골라서 받는다. 납품업체가 복집 10곳과 거래하는데, 참복만 받는 건 우리 집밖에 없다.”
-양식 복어는 독이 없다는데 사실인지.
“복어의 맹독 테트로도톡신은 특정 해조류를 먹어서 생성된다고 한다. 양식은 사료만 먹여 키우니 당연히 생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산 복어는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물론 미식가들은 테트로도톡신이 극소량 남아 있는 복어를 먹었을 때 입술이 얼얼하달까 찌르르한 느낌을 즐긴다지만.”
-소동파가 “천계(天界)의 옥찬(玉饌)”이라고 상찬한 건 봄에 산란하러 강으로 올라오는 황복이었다.
“예전엔 아카시아꽃 필 무렵 황복을 냈다. 새벽 4시에 남편과 둘이서 임진강에 차 타고 가서 황복을 사서 10kg, 20kg씩 비닐봉지에 담아와서 내곤 했다. 최근엔 거의 멸종 수준이라 물량 확보가 어렵다. 경기도 문산에 가면 양식을 하기도 하지만 양식 황복은 맛이 차이 나서 쓰지 않는다.”
-매운탕은 왜 안 하나.
“매운탕은 복어 품질이 좀 떨어지거나 다른 복어를 써도 양념 때문에 잘 모른다. 지리는 복어의 종류, 선도가 완전히 드러난다. 속일 수가 없다. 좋은 복어를 써야만 한다. 반대로 좋은 복어를 양념 맛으로 가리기가 아깝기도 하다.”
태진복집에서는 지리를 끓일 때 다시마, 가쓰오부시, 양파, 배추, 대파, 약간의 다진 마늘만으로 뽑은 육수를 쓴다. 김씨는 “멸치로 육수 내는 집도 많은데, 그렇게 하면 멸치 풍미에 복이 가려질 수 있다”고 했다. 담백하고 비린내 없는 복어 특유의 풍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살은 딱딱하달 만큼 쫄깃하다. 감칠맛을 내는 이노신산과 단맛을 내는 글리신, 알라닌, 타우린 성분이 더해져 국물에서 설탕을 넣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맛이 난다.
복튀김도 독특하다. 일식당에선 일반적으로 복어에 튀김옷을 입히지만, 이 집에선 전분과 달걀노른자를 최소량만 버무려 튀긴다. 그걸 울릉도 자연산 명이나물 장아찌를 곁들여 낸다. 짭조름한 명이로 복튀김을 돌돌 말듯 싸 먹는다. 맛의 조화가 색다르다. 반찬처럼 내는 복껍질 무침도 탱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장사 하라는 사주에 국물 장사 선택
복 요리는 부산, 경남 마산, 인천, 전북 군산 등 바닷가에서 발달했다. 김진옥씨는 내륙 도시인 충남 천안 출신이다.
-어떻게 복집을 하게 됐나.
“언니가 34살에 혼자가 됐다. 조카들 키우며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엄마, 아버지도 부양해야 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뭘 할까 고민하다 사주 잘 본다는 스님을 찾아가니 ‘물장사를 하라, 남한테 많이 퍼주는 장사를 하라’고 하더라.”
-물장사는 원래 술 아닌가.
“복국이 물이잖나(웃음). 술은 싫었다. 밥집을 해야겠다 싶어서 알아보다 복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흔한 음식이 아니니까 해보면 괜찮을 거다, 배워보라고 지인이 권했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청와대 앞이라 여러 일을 겪었겠다.
“광우병 사태, 촛불 시위, 코로나까지 힘든 시간이 많았다. 광우병 때는 세종대왕상부터 완전 봉쇄해 광화문 광장이 텅 비었다. 자동차 진입도 100% 차단되고 지하철도 경복궁역에 아예 서지 않고 통과해 손님들이 오지를 못했다. 그나마 촛불 시위는 주말에만 했기 때문에 좀 나았다. 가장 힘든 건 코로나였다. 2인, 4인 이상 만나지도 모이지도 못하게 하니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코로나 이후로 뜸해진 단골들 발걸음이 아직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게다가 청와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손님이 30%는 줄어든 것 같다.”
-용산으로 옮길 생각은 없나.
“없다. 여기는 큰길가가 아니란 장점이 있다. 얼굴 많이 알려진 분들이 다니기 좋다. 누가 왔다 가도 모른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님한테 얼마 전 전화로 ‘오빠, 진짜 안 올 거야?’ 투정했더니 ‘멀리 가서 자주 못 가 미안하다’고 하더라, 하하!”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