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선수에서 한 주먹 요리사로, 긴자의 스시 대가 아오키 도시카츠
186cm 장신이 만든 6cm 초밥… 일본을 흔들다
"요리는 결국 체력 싸움, 28세에 아버지 가업 물려받아"
캘리포니아롤에 충격… 한국 불고기·족발 응용해 새 스시 창작도
더이상 유도를 하지 않지만, 아오키씨에게서는 여전히 체육인 혹은 무도인의 느낌이 묻어났다./김지호 기자 |
거대한 산 같은 사내가 스시(생선초밥) 카운터 뒤에 우뚝 서 있었다. 아오키 도시카츠(青木利勝·54). 도쿄 긴자를 대표하는 스시집 중 하나인 ‘스시 아오키’의 오너셰프다. 아오키는 에도마에(도쿄식) 스시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거듭하는 스시야(스시전문점)로 이름 높다. "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맛본 음식에서 새로운 스시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그는 "한식에서도 영감을 여럿 얻었다"고 했다. 서울 신라호텔 뷔페식당 파크뷰에서 스시 아오키의 맛을 선보이기 위해 방한한 아오키씨를 만났다.
유명 스시집 아들인데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했다.
"체격이 좋아선지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너는 유도를 해야된다’고 결정해주셔서 체대에 진학하게 됐다."
실례지만 키가 어떻게 되나.
"원래 186cm였는데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나니 3cm 줄었다."
스시 요리사들이 모두 당신처럼 건장하진 않아도 건강하더라. 스시 하려면 건강해야 하나.
"요리는 결국 체력 싸움이다. 스시뿐 아니라 어느 요리나 마찬가지. 항상 서서 일하니 체력이 좋아야 한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려면 계속해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살이 찌고 건강이 나빠진다."
그럼 요즘도 유도를 하나.
"유도는 더이상 하지 않지만 계속 운동하고 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트레이닝을 거의 매일 한다. 주방의 제자들에게도 운동 열심히 하라고 권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에 가서 1년을 지냈다.
"영어 배우러 간 건 아니고, 일본 밖 세계는 어떤지 보고 싶었고, 일본과 다른 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캘리포니아롤 먹고 놀랐고, 생선 카르파치오 먹고 충격 받아 일본에 있는 아버지에게 비싼 국제전화까지 걸었다던데.
"뉴욕의 일식 레스토랑에 가보니 일본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조명이 프랑스 레스토랑이나 바처럼 어두웠다. 무엇보다 생선회와 초밥 먹는 방식이 달랐다. 간장 대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뿌려 먹더라.(카르파치오) 이런 식문화가 문화적 충격이었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고정관념이 깨지는 긍정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스시 창작을 위한 영감을 얻으러 파리, 서울, 홍콩 등 해외로 여행을 자주 다닌다.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 맛, 소스가 있다. 이런 것들을 나의 스시에 적용해보는 걸 좋아한다. 전통 스시 사이에 새롭게 창작한 스시 한두 점씩 슬며시 밀어넣는다."
도쿄 긴자 ‘스시 아오키’ 오너셰프 아오키 도시카츠씨는 유도 전공으로 체육대학을 졸업한 뒤 스시에 입문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김지호 기자 |
미국에서 돌아와 스시 요리사로 입문했다.
"어려서부터 유명한 스시 장인이던 아버지가 일하는 걸 보았고, 가게에서 놀았다. 미흡하나마 돕기도 했다. 커서 스시 요리사가 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운 좋게도 학창시절 운동을 잘 해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스시 요리사의 꿈을 간직했었다."
아버지 가게가 아니라 남의 스시집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버지 밑에서는 아무래도 엄격하게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가게로 갔다. 거기서 2년 수련하고 아버지 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28세 젊은 나이에 스시 아오키를 책임지게 됐다.
"당시 59세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암이었다. 아버지를 이어 스시 아오키의 명성을 지킨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처음에는 초밥을 제대로 쥐지 못해 손님에게 내드릴 때 밥이 부서지기도 했다. 단골들에게 혼도 많이 나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단골들이 큰 힘이 돼주었다. 꾸준히 와주셨고, 피드백을 주셨고, 응원해주셨다. 그분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
‘아버지만큼 한다’고 언제 느꼈나.
"아버지처럼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단골들이 오셨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스시밖에 모르던 분이셨고, 옛날 스타일대로만 하던 분이다. 나는 아버지와 똑같이 맞출 수 없다. 나는 시대가 다른 사람이다’라고."
스시도 시대에 맞춰 혁신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스시는 정통과 응용이 부침을 거듭한다. 지금은 정통 스시의 시기다. 스시는 혁명적으로 달라지기보다 점진적 혁신이다. 에도마에 스시의 전통, 기본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갑자기 새로운 스타일로 가는 건 하지도 않지만 해서도 안 된다.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힌트를 얻어 창조한 스시도 있나.
"도로(참치 뱃살)을 불고기 양념에 재웠다가 초밥을 만들었다. 족발에서 힌트를 얻어 어란 젤라틴을 만들어 밥에 얹은 초밥을 내기도 했다. 현재 매장에서 내고 있는 지라시스시(그릇에 생선, 달걀부침, 오이, 채소를 초밥과 섞고 위에 달걀지단, 초생강 등 고명을 얹은 초밥)는 비빔밥에서 영감을 얻었다. 밥에다 우니(성게알)와 와사비(고추냉이)를 넣고 비빈 뒤 노릇노릇 바삭하게 구운 장어를 얹어 내고 섞어 먹도록 한다(일본 지라시스시는 비빔밥처럼 보이지만, 모든 재료를 따로따로 먹는다). 우니로 노랗게 된 밥에서 와사비 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면서 장어 기름기를 잡아준다."
이밖에도 그가 한국음식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많다. 입에 가득 찰 정도로 큰 일본 후토마키(일본 김밥의 일종)을 한국 김밥처럼 작게 만들기도 했다. "배가 덜 불러 손님들이 음식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맛본 물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처럼 차가운 국물을 좋아하지 않아 따뜻하게 데운 다시마 국물로 물회를 만들었다. 아오키씨는 "일본 손님들에게 이 물회가 엄청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대게로 간장게장을 담가 초밥에 앞서 전채로 내기도 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행사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한국 손님은 일본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에 처음 온 건 10년 전이다. 옛날에는 스시건 생선회건 초장에 찍어 먹는 한국분이 많았다. 초밥은 참치, 광어 같은 종류만 좋아하다가 지금은 고등어, 전갱이 등 일본인들이 즐기는 등푸른생선까지 드시더라. 스시에 대한 이해와 경험치가 그만큼 커진 듯하다."
무섭고 엄격한 스시야(스시전문점)도 많다. 아오키는 따뜻하고 편안하다. 이것도 시대 흐름에 맞춘 건가.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식당을 추구한다. 요리사가 손님에게 제때 먹지 않으면 ‘빨리 먹어’ ‘지금 먹어야 돼’라고 소리 지르는 스시야가 많다. 스시는 카운터라는 오픈된 공간에서 먹는다. 살벌한 분위기가 다른 손님들에게도 금세 전염된다. 식당 분위기가 위축되고 긴장될 수밖에 없다. 돈 내고 먹는 손님에게 왜 요리사가 갑질하는 지 모르겠다. 손님들 중에서도 스시를 먹을 때 어깨 올리고(심각하고 진지하게) 먹는 분들이 있다. 어깨를 내리고, 편안하게 대화하며 음식을 즐기는 식사를 추구한다. 이렇게 먹지 않으면 음식을 절대 맛있게 음미할 수 없다."
그는 큰 산이되 거칠고 험한 암산(岩山)이 아니라 부드럽고 포근한 토산(土山) 같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