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친해야 이런 밥집에 같이 올 수 있을까
[아무튼, 주말]
[구두쇠氏 혼밥기행] 서울 청량리시장 간판 없는 밥집의 오징어볶음
세상에 싸고 맛있는 집은 없다고 구두쇠씨는 생각했다. 싼 건 비지떡이었다. 콩비지에 밀가루 섞어 부친 떡이 맛있을 리 없다. 싸고 배부르니 먹는 것이다. 다만 비싸고 맛없는 집이 너무 많았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가는 기분 나빠져 나올 게 뻔했다.
얼마 전 두쇠씨는 거래처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여기 어떠신가요, 하며 식당 링크가 문자로 날아왔다. 광화문 한복판 고층 건물 지하, 무슨 뜻인지 모를 외국어 옥호(屋號), 어두침침한 인테리어, 그리고 터무니없는 가격까지 두쇠씨가 싫어하는 요소를 두루 갖춘 집이었다. 호불호 따질 계제가 아니어서 알겠노라고 했다.
음식은 달고 짰다. 그릇들은 장난감처럼 작았다. 잘게 편 썬 채소가 종지에 담겼기에 물어보니 백김치란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두쇠씨는 김치로 소꿉놀이하는 집들을 혐오했다. 게다가 태블릿으로 주문을 해야 했다. 가격은 최고급에 서비스는 셀프. 유행이라면 빈 그릇 주고 돈 내라고 할 기세였다.
두쇠씨는 메뉴를 훑다가 숨이 턱 막혔다. 소주가 8000원이었다. 물가가 아니라 시건방이 고공행진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법인카드로 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꼼꼼히 챙겼다. 남의 돈도 아까웠다.
청량리시장 간판 없는 밥집 전경. 문을 닫았을 때는 무엇 하는 곳인지 알 도리가 없다. |
저녁이 되자 두쇠씨는 뭔가 푸짐한 것, 따끈하고 매콤한 것, 흰쌀밥과 잘 어울리는 것을 먹고 싶었다. 그는 청량리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복판에서 벗어난 한가한 골목에 간판 없는 밥집이 하나 있었다. 인터넷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 ‘국수 만드는 집’을 검색해야 했다. 그 골목 초입에 밥집이 있었다.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매일 오후 3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장사하는 백반집이었다. 반찬과 음식이 두루 맛있어서 언제 가도 만족스러웠다.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다시 여는데 일요일에 물건들이 새로 들어와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식당엔 드럼통 탁자 두 개와 짧은 선반 식탁이 전부였다. 날씨가 더워져 가게 앞에 플라스틱 식탁을 놓을 수 있었다. 백반이 8000원이니 싼 맛에 가는 곳은 아니었다. 한쪽에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반찬 여덟 가지가 있었다. 김치 3종과 오징어채 볶음, 깻잎·시금치·미나리·도라지 무침이 있었는데 그 간이 하나같이 짜지 않고 달지 않고 맵지 않은 맛의 삼각지대에 있었다. 여기에 흰쌀밥과 그날 끓인 찌개나 국을 주는 게 백반이었다.
백반값에 1000원을 더하면 제육볶음, 2000원이면 오징어볶음을 추가로 먹을 수 있었다. 객들은 대개 둘 중 하나를 시켰지만 시장 사람들은 시키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제집 부엌처럼 술을 마시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한 남자가 냉장고에서 반 병 남은 소주를 꺼내 “이것 먹고 갈게요” 하고 맥주컵에 따르더니 한 번에 들이켰다. 조금 남은 소주를 개수대에 버리고는 나물 한 젓가락을 집어 먹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두툼한 돈다발을 꺼내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화투 떼듯 세어 부엌 선반에 놓고 나갔다.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류소 같은 곳이었다.
두쇠씨가 주문한 오징어볶음이 금세 나왔다. 오징어 90%, 채소 10%라고 할 만큼 알찼다. 비벼 먹으면 족히 밥 세 공기는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징어를 듬뿍듬뿍 집어 먹었지만 그래도 남았고 결국 밥솥을 열어 한 주걱 더 푸는 수밖에 없었다. 밥은 이렇게 먹는 거지, 하고 두쇠씨는 속으로 말했다.
푸짐한 오징어볶음 한 접시와 여덟 가지 반찬, 밥과 찌개를 단돈 1만원에 먹을 수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는 반찬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반찬과 술은 손수 갖다 먹는 게 이 집 손님들의 매너다. /한현우 기자 |
순두부찌개가 딸려 나왔는데도 주인은 “방금 끓인 것”이라며 바지락 듬뿍 든 된장찌개를 또 내왔다. 소주와 막걸리를 5병째 섞어 마시던 남자들은 정치 얘기로 중구난방이었다. 한 사내가 “대통령 월급이 500만원인데 마누라가 3억짜리 빽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핏대를 세웠다. 뉴스는 시장에서 제멋대로 해체되고 재조립돼 마구 흩어졌다.
한 무리 남자들이 부엌 앞을 서성이며 소주에 닭발을 먹었다. 닭발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건 술 드시는 분들 안주”라며 “좀 드릴 테니 드시고 가라”고 했다. 도로 앉았다가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사양했다.
두쇠씨는 생각했다. 여기는 친한 사람과 오는 곳일까, 누구든 함께 왔다가 친해지는 곳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현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