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아무튼, 주말]
보신탕부터 흑염소까지
복달임 음식의 흥망성쇠
경기도 하남에 있는 흑염소 전문점 ‘까치산장’은 중복이던 지난 21일을 앞두고 흑염소탕 가격을 2만원으로 1000원 올렸다. 식당 주인 차형자씨는 “염소 가격이 말도 못하게 올랐다”고 했다. “염소 고기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넘게 뛰었어요. 2020년만 해도 탕 한 그릇에 1만7000원을 받았는데, 손님들에겐 죄송하지만 이제는 2만원을 받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염소가 개, 닭, 장어, 민어 등 쟁쟁한 강자들을 제치고 보양식계 지존 자리에 오를 기세다. 인기와 가격이 치솟고 있다. 한국흑염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산지 염소값(생체)은 1kg 기준 거세·암염소 1만9000원, 비거세 1만7500원이었다. 크게 오르기 전인 2021년 7월 1kg당 거세 1만3000원, 비거세·암염소 1만1000원과 비교하면 평균 52% 상승했다. 염소 한 마리 무게가 평균 60~70kg인 점을 감안하면 마리당 120만원꼴이다. 5년 전만 해도 염소 한 마리 가격은 10만~15만원 정도였으니, 10배 정도 오른 셈이다.
◇개 밀어내고 왕좌 차지한 삼계탕
전통적으로 한국 보신 식문화의 중심은 개장(狗醬) 즉 개고기 국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개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저렴한 단백질원이었다. 19세기에 발간된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는 개장국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때도 개고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개발된 게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육개장이다. 19세기 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육개장은 대구에서 꽃피웠다. 20세기 초까지 ‘대구탕’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울과 호남에서는 민어가 개고기만큼 인기가 높았다. ‘서울에서는 복중에 민엇국으로 복달임해 온 식습관이 있다. 60세 이상이 되는 분들은 예부터 민어 등 물고기를 쇠고기 대신 즐겨 먹는다(1974년 3월 14일 자 조선일보).’ 민어는 1934년 어획량이 7만4000t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남획으로 급감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복달임 음식 대표 자리에서 밀려났다.
삼계탕은 1950년대 이후 외식으로 등장했다. 비슷한 음식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지만, 음식보다는 보약으로 인식됐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10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여름 3개월간 삼계탕, 즉 인삼을 암탉의 배에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나온다.
요리로서 삼계탕은 ‘조선요리제법’ 1817년판에 나온다. 저자 방신영은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배 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 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이나니라’라고 적었다.
당시 삼계탕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던 약선(藥膳)음식이었다. 닭과 인삼은 비싸고 귀했다. 삼계탕 대중화는 인삼 전매가 풀리고, 양계산업이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다. 닭 배 속에 인삼 가루 대신 수삼(水蔘)을 넣은 삼계탕 전문점이 속속 문을 열었다. 최고의 보양식 타이틀을 바로 차지하진 못했다. 보신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신탕이란 이름은 1950년대에 등장한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저 식당에서 뭘 파는 거냐’고 묻자 보좌진이 차마 개고기 국이라 답할 수 없어 보신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알려졌다”고 했다. 보신탕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에서 논란이 됐다. 보신탕집은 서울 4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삼계탕은 때를 놓치지 않고 국민 보양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장어·민어·염소… 보양식 춘추전국
요즘 염소 가격이 치솟는 건 개고기 식용 문화가 차츰 사라지면서 대체품으로 염소 고기가 뜨기 때문.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라 불릴 정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까치산장 차형자씨는 “흑염소 인기를 체감한 건 3년 전부터”라고 했다.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개고기는 꺼려진다는 거예요. 그런 손님들이 흑염소로 많이 전향하셨죠.”
염소 고기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오래전부터 합법적으로는 구할 수 없는 개고기 대체육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김진출(78)씨는 “여기서는 한국에서 염소탕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염소탕이나 염소전골을 먹으며 개고기 수육과 보신탕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염소 고기는 개고기와 맛과 질감이 비슷하다. 갈비나 배받이 부위를 수육으로 먹으면 개고기와 차이가 나지만, 얼큰하고 구수하게 양념해 끓이는 탕이나 무침은 구분하기 힘들다.
염소에 앞서 뱀장어(민물장어)와 갯장어(하모)가 삼계탕의 패권에 도전했다. 박정배 작가는 “뱀장어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먹어왔지만 반으로 갈라 간장양념을 발라 굽는 현재의 조리법은 일제강점기에 소개됐고, 1970년대 육식·보양식 문화가 본격화하며 퍼졌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던 갯장어가 뱀장어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양식이 불가능한 데다 여름에만 잡혀 연중 먹을 수 없는 희소성, 양식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뱀장어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프리미엄’ 이미지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개처럼 이빨이 날카롭고 잘 물어 갯장어(개+장어)란 이름을 얻었다. 일본명 하모(ハモ)’도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갯장어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에서 특히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한반도 남해안산이 일본산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방 이후로 한참 동안 남해안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전량 수출됐다. 전남 여수, 경남 통영·고성 등 남해안 일부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에서 갯장어를 몰랐던 이유다.
한때 잊힌 민어도 2000년대 중반부터 언론에 다시 소개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서해를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 서해에서 배로 올라올 수 있는 서울에서 주로 먹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어를 찾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다. 2014년쯤 민어 양식이 성공하면서 가격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여름 대표 복달임 자리를 삼계탕으로부터 빼앗지는 못하고 있다.
박 작가는 “삼계탕은 주재료인 닭과 인삼의 생산·유통이 산업적으로 완전히 정착된 상태”라며 “염소는 물론 어떤 음식도 삼계탕을 끌어내리고 보양식 ‘존엄’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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