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라마 항체 뿌려 코로나 잡는다
[사이언스샷]
치료제 개발...소형 나노항체 3종 연결해 바이러스 표면에 완전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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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안데스산맥에 사는 라마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새로운 무기를 제공했다. 미국 바이오 전문지인 피어스바이오텍은 17일(현지 시각) “UC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이 라마의 소형 항체를 이용해 호흡기로 흡입할 수 있는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해 전임상 시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인간 4분의 1 크기의 라마 항체로 코로나 치료제 개발
항체는 인체 면역 단백질로,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스파이크)에 달라붙어 감염을 차단한다.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숙주 세포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하지만 항체가 스파이크에 달라붙으면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어 다른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사멸된다.
항체 치료제는 이처럼 코로나 치료 효과와 함께 단기간 감염 예방 효과도 있어 백신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전 코로나를 막아줄 대안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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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이 라마에 주목한 것은 항체의 크기다. 라마는 알파카 같은 다른 낙타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두 가지 형태의 항체를 생산한다. 하나는 인간의 항체와 유사하지만 다른 항체는 크기가 인간 항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라마의 소형 항체는 크기가 작다고 나노항체(nanobody)라고 불린다. 나노항체는 크기가 작아 바로 호흡기로 흡입할 수 있다. 호흡기에 감염되는 바이러스 치료에 안성맞춤이다. 유사시 병원에 가지 않고도 환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크기가 작은 나노항체는 연구하거나 대량 생산하기도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스파이크 단백질 3부분에 모두 결합하는 3중 항체
아시시 맨글릭 UCSF 교수 연구진은 지난 11일 논문 사전 출판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먼저 발표한 논문에서 라마의 나노항체를 분무형으로 개발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능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먼저 라마 항체 20억종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가장 잘 결합할 형태를 찾았다. 3주 연구 끝에 코로나 스파이크에 잘 결합하는 후보 20종이 추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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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나노항체는 각각 하나의 단백질 부분에 결합한다. 따라서 나노항체 한 개로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다. 연구진은 항체의 바이러스 감염 차단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노항체 3가지를 연결해 최종 항체 치료제 후보를 만들었다.
3중 나노항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를 이루는 세 부분에 모두 결합해 하나의 나노항체보다 효과가 20만 배나 높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나노항체 결합체를 동결 건조해 분무형으로 개발해 ‘에어로나노항체(AeroNabs)’란 이름을 붙였다.
분무형 나노항체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한번 결합하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연구진은 나노항체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시키면 1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고 밝혔다.
◇벨기에 연구진도 라마 항체로 코로나 치료 효과 입증
벨기에 엑스비르 바이오(ExeVir Bio)도 라마 항체를 이용해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5월 벨기에 플랑드르 생명공학 연구소(VIB)의 크사비르 살런스 교수진은 국제 학술지 ‘셀’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항체를 라마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VIB에서 창업한 엑스비르 바이오는 최근 27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회사는 올 연말까지 라마 항체의 임상시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엑스비르의 라마 항체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앞서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유발한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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