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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지 100년, 호랑이는 백두대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무튼, 주말] 백두산호랑이 보존 프로젝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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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범’ 중 순우리말은?


어느 대기업 공채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출제됐다. 상당수 응시자가 혼비백산했다. 무서운 문제로 회자될 정도였다. 정답은 '범'. '호랑이'는 한자 '虎'(범 호)와 '狼'(이리 랑)에 접미사 '이'를 더해 만들어진 단어다.


우리 문화에서 호랑이의 영토는 거대하다.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고분 벽화를 비롯해 민화와 석상에 묘사돼 있을 만큼 한국인은 이 맹수와 더불어 살아왔다. 구태여 속담을 뒤지지 않아도 그 애착을 입증할 수 있다.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는 호돌이였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는 수호랑(백호)이었다.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정작 호랑이는 사라지고 없다.


1921년 10월 경주 대덕산(320m)에서 수컷 호랑이 한 마리가 붙잡혔다. 흑백사진도 남아 있다. 그 사진이 이 땅에서 호랑이의 마지막 기록이 될 줄은 사냥꾼도 몰이꾼도 당시에는 몰랐다. 야생 호랑이 없이 산 지 100년이 된 셈이다.


호랑이는 왜 절멸했나


우리 산과 들에서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창덕궁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선조 36년)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군사를 동원해 호랑이를 잡는 포호(捕虎) 정책을 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수구제(害獸驅除)를 명분으로 호랑이를 사냥했다. 하지만 호랑이 멸절 책임을 일본에만 돌릴 수는 없다. 광복 이후에도 6·25 전쟁과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됐다.


엔도 기미오가 펴낸 책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에 따르면 1915년부터 1924년까지 호랑이나 표범의 공격으로 연평균 13.8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 기간에 사살된 호랑이는 89마리, 표범은 521마리에 이른다. 그러나 1930년대에 포획된 호랑이와 표범의 숫자는 1910년대에 비해 23% 수준으로 줄었다. 당시 야생 호랑이의 규모와 해수구제 정책의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호랑이는 표범, 늑대 등과 함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다. 1990년대까지도 강원도 화천과 치악산, 경북 영주 소백산 등지에서 호랑이 또는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는 주장이 더러 있었지만 학술적으로 인정할 만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임정은 선임연구원은 "100년간 발견되지 않았으니 남한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셈"이라고 했다.


그동안 우리가 본 호랑이는 동물원에 등록된 호랑이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는 올해 6월 기준으로 국내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호랑이는 모두 91마리(수컷 52마리)라고 했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작은 동물원, 일부 수목원에 있는 호랑이까지 합치면 약 100마리로 추산된다.


백두산호랑이를 복원한다고?


산림청이 2018년 경북 봉화에 문을 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호랑이를 사육, 전시하며 종을 보존하는 작업을 한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호랑이 숲'(4만8000㎡)에서 19세 수컷 '두만', 15세 암컷 '한청', 9세 수컷 '우리', 7세 남매 '한'과 '도' 등 호랑이 5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가장 고령인 두만은 2005년 중국에서 도입했고 나머지 호랑이는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났다. 호랑이 수명은 야생에서 13~15년, 사육 환경에선 17~20년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곰이 야생 복원(서식지 내 보존)이라면 호랑이 숲은 '서식지 외 보존' 프로젝트다.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백두산호랑이)는 유전자 분석 결과 현존하는 시베리아호랑이와 계통이 같다.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는 "백두산호랑이 보존은 혈통이 등록된 호랑이를 들여와 근친 번식을 피하면서 유전자 다양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 국제적 표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호랑이는 방문객을 끄는 미끼 상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축구장 7개 넓이의 방사장에서 호랑이들이 야생성 회복 훈련을 받고 있다"며 "국외에서 우수한 혈통의 유전자를 도입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번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국의 혈통 기록이 엉망이라 백두산호랑이가 아닌 잡종'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두만은 고령으로 번식이 불가능하다. 근본이 분명한 개체를 들여와 종 보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항 교수는 “호랑이를 당장 남한에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러시아와 중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지지 않도록 서식지를 보호하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백두산을 통해 한반도에 호랑이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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