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의 세상]
숨 막히는 열대야, 밤이 두렵다
23일 오후 8시 서울 을지로 일대 술집들의 야외 탁자는 한산했다. 10석 중 1석 차는 수준이다. 원래 여름철이면 퇴근한 직장인들이 파라솔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앉아 삼삼오오 맥주를 마시던 곳이었다.
골뱅이 무침을 파는 을지로의 한 맥줏집은 지난 17일부터 야외 영업을 중단했다. 열대야 때문에 야외 영업을 중단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 식당 종업원은 "열대야가 심해 야외 탁자에 앉는 손님이 없다"며 "더위가 한풀 꺾인 다음에 야외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이 무더위로 펄펄 끓고 있다. 특히 밤사이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23일 오전 6시 기준 강릉(31.1도), 서울 (29.2도), 울릉도(29.2도), 수원(28.2도), 울진(29.3도) 등이 111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아침을 맞이했다. 특히 강릉에서는 밤사이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超)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 2014년 8월 8일 강릉에서 발생한 관측 사상 유일한 초열대야(당시 기온 30.9도) 기온을 경신하는 기록이다.
열대야를 피하려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튼 실내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 잠실의 한 실내 골프 연습장은 오후 11시까지였던 영업시간을 4시간 더 늘려 오전 3시까지 문을 연다. 직원 김모(30)씨는 "잠을 못 잘 바에 에어컨 바람 맞으며 골프를 하는 게 좋다는 손님이 많다"며 "손님이 늘어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을 더 뽑았다"고 말했다.
노인들도 경로당 등 에어컨이 있는 무더위쉼터를 찾고 있다. 일부 경로당은 오후 6시까지였던 운영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연장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2동 경로당 김용진 부회장은 "경로당 회원 85명 중에서 20여 명은 요즘 오후 9시까지 매일 경로당에 남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위로 밤잠을 포기한 일부 사람은 "운동이라도 하자"며 한강변으로 나오고 있다. 평소 아침운동을 했지만 아침 기온이 높자 몇 도라도 온도가 낮은 밤에 나온 사람도 있다. 자전거 동호회 게시판에는 야간이나 새벽 시간대를 이용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한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늘면서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반면 아침 일찍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일부 대학생·직장인은 열대야를 이기려 수면 유도제를 먹기도 한다. 대학원생 김수연(25)씨는 "열대야 때문에 생활 리듬이 깨져 외국 여행 때 상비약으로 사뒀던 '멜라토닌' 성분이 들어간 수면 유도제를 한 알씩 먹어야 잠이 온다"고 했다.
23일 낮 기온 역시 전날보다 올랐다. 경북 영천(38도), 경주(38도), 대구(37.9도), 의성(37.9도), 합천(37.3도) 등이 37도를 넘는 낮 최고기온을 보였다. 서울은 35.7도를 기록했다.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기록으로는 경북 경산(하양읍)이 39.9도를 기록해 40도에 육박했다.
코레일은 이날 경부고속선 천안아산~오송역 구간에서 시속 300㎞로 달리던 고속열차(KTX)를 시속 70㎞ 이하로 운행했다. 폭염으로 이 구간 선로 온도가 오후 3시 14분 61.4도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더위 때문에 속도 제한을 한 것은 KTX 개통 이래 처음이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린 폭염특보는 24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전국의 낮 최고기온은 서울 36도, 대구 37도, 광주 36도, 강릉 35도 등으로 예보됐다. 기상청은 이날 발표한 향후 3개월 장기 예보에서 오는 8월의 기온이 평년과 같거나 더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더위가 빨리 시작했다고 해서 빨리 물러가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9월에는 점차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으며 일시적으로 저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예보됐다. 기상청 윤기한 사무관은 "현재 필리핀 해상에서 11호 태풍이 발달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한반도가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권 안에 있으면 태풍이 접근하기 어렵다"며 "해수면 온도 하강, 티베트 고온 저하 등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일러도 8월 중반까지 지금과 같은 무더위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윤동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