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슐랭 등극 삼겹살집, ‘재벌3세’가 한다던데…” [사장의 맛]

‘돼지품종’을 말하는 삼겹살집 금돼지식당

박수경 사장 “3세는커녕, 빚쟁이 전화 하루 100통”

“연탄제육 굽다 연탄가스 중독될 뻔...시련이 지금을 만들었다”


BTS,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 있습니다. 이마트, 현대백화점, GS25, 농심 등 국내 대표적인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콜라보(협업)를 제안해 햄, 돼지고기구이 밀키트, 도시락, 라면에 이불까지 출시했습니다. 돼지고기구이집 가운데 국내에선 처음으로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됐습니다. 개업 때부터 문전성시니 ‘해외 유학파 출신들이 만들었다’ ‘재벌가라 유명 인사들이 밀어준다’ 등의 말이 무성했습니다.


모두 서울 신당동 금돼지식당 얘기입니다.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금돼지식당 박수경(37) 사장을 만났습니다. 박 사장은 화려한 현재 대신 짠맛, 쓴맛, 매운맛 나는 이른바 ‘헝그리했던 과거’를 얘기하는 데 인터뷰 시간의 대부분을 썼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빚만 2억, 독촉전화 하루 100통


“재벌가 3세라더라.” “벤처캐피탈이 작정하고 투자했다던데.”


요즘 좀 뜬다는 식당, 알고보니 부잣집 자제들이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금돼지식당을 두고도 그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초기부터 유명인들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박 사장은 “남편과 동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노점상이라고요?


“2010년 여름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동대문시장에서 생과일주스 노점을 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남편이 의류쇼핑몰을 하다가 잘 안 됐어요. 동대문 아는 형들이 노점 자리를 내줬어요. 저는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일 끝나고 동대문에 가서 남편이랑 주스 만들어 팔았어요. 하루에 과일 3만원어치 사면 30만원 넘게 팔았어요. 요즘 말로 정말 ‘꿀’이었어요.”


-왜 계속 안 했나요?


“생과일주스 4개월 정도 팔고나니 날씨가 추워지고 뭔가 다른 걸 해야겠더라고요. 언제까지 노점만 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근처에 1.5평짜리 가게를 얻었어요. 3개월치 깔세 60만원을 선불로 내고 당시 인기였던 수제버거를 팔았죠.”


-시련의 시작인가요.


“장사는 정말 잘 됐어요. 남편이랑 1500만원씩 내서 6평짜리 가게로 확장까지 했어요. 그런데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순쇠고기 100% 패티를 직접 만들고, 빵도 좋은 거 썼어요. 모양 예뻐야 하니까 포장지만 1000원 넘는 거 썼고요. 제일 싼 버거가 3800원이었는데 배달도 무료였어요. 당연히 장사가 잘 돼도 마이너스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둔 박 사장은 그 자리에서 2년 동안 장사를 합니다. 메뉴는 계속 바뀝니다. 수제버거, 뼈없는 치킨, 족발, 아구찜, 쌀국수, 샐러드. 10여가지 메뉴를 했습니다. ‘폐업의 악순환’ 고리에 들어간 겁니다.


-얼마나 안좋았습니까.


“빚이 2억원 가까이 쌓였어요. 다 사채였죠. 하루에 일수를 7개까지 찍었어요. 돈 없어서 남자친구와 핸드폰도 하나만 썼는데, 빚 상환 전화가 하루에 100통씩 왔어요. ‘오빠 우리 한강 가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제 집에는 절대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회사 그만두고 동대문에서 장사한다고 하는데 빚까지 있다? 엄마가 알았으면 제 머리 깎아서 방문 잠가서 감금했을 거예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탄제육에서 빛을 보다


가게 월세도 10개월이 밀렸습니다. 마음씨 좋은 건물주 덕에 쫓겨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닥까지 내려간 박 사장은 승부수가 필요했습니다. 연탄제육 배달점 ‘구공탄’입니다. 2012년이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줄곧 끌려다녔던 거 같아요. 될만한 아이템 내놨다가 안 되면 바로 거둬들이는 식으로요. 그런데 밑바닥까지 가면서 구공탄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뭐가 잘 될지 생각하기 보다 우리가 먹어도 맛있고 좋은 걸 팔아보자 생각했죠.”


-고기를 잘 알지 못했을 거 같은데요.


“동대문 시장 영업을 새벽 6시에 끝내고 바로 마장동으로 넘어갔어요. 서너시간씩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거칠게 보이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무작정 계속 물어봤어요. 젊은 여자애가 매일 와서 물으니 마음을 열어준 마장동 상인들이 계셨어요. 두 달 가까이 매일 마장동을 다니면서 좋은 돼지고기 보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좋은 돼지고기가 뭔데요?


“눈으로 봤을 때 새빨갛거나 흐리멍텅하지 않고 선홍빛이어야 해요. 부위마다 색깔 차이도 있죠. 항정살의 경우는 연한 분홍색에 기름이 껴있는데, 흰색 부분이 너무 많으면 안 돼요.”


-구공탄은 잘 됐어요?


“배달하는 직원만 4명, 한 번 나갈 때 13개씩 배달했어요.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엔 고기를 구워서 배달하는 게 정말 특이했거든요. 골목이 우리집 고기 굽는 연기로 가득 찰 정도였어요. 환풍기 하나 틀어놓고 구우니, 정말 연탄중독될 거 같았어요. 몽롱해지면 번갈아 나가서 바람 쐬고 들어왔습니다. 그때 결혼도 했어요. 동대문시장이 토요일마다 쉬는데, 토요일 새벽까지 일하고 바로 결혼하러 갔어요. 신혼여행 안 가고 일요일에 다시 장사했습니다.”


-신혼여행도 안 갔다고요?


“손님이 주문 전화했는데 안 받으면 다른집에 시키잖아요. 그랬다가 그 집이 마음에 들면, 다른 집 손님이 되잖아요. 그게 무서웠어요. 그리고 가게만큼 마음 편한 곳이 없더라고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품종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다


박 사장은 구공탄을 4년 운영합니다. 2억원 빚은 구공탄 시작 1년이 안 돼 청산했습니다. 부부는 다시 모험을 합니다. 번듯한 식당을 내기로 한 것입니다. 2016년 금돼지식당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강남, 성수, 마포가 아닌 신당동에 낸 이유가 있나요.


“강남에서 접근성이 좋고, 약수역 주변이라 거주자가 많아요. 그리고 저희가 많이 망해봤잖아요. 정말 최악으로 안 됐을 때 이 매장에서 동대문시장으로 배달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뭐하던 자리예요?


“1층은 호프집, 2층 3층은 노래방이었어요. 계약하고 다른 부동산에 얘기했더니 ‘계약금 얼마 안 줬으면 그냥 물러라’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외관 공사를 다 해서 사람들이 자리 좋다고 하는데, 그때는 ‘터가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장사 안되는 자리라고요.”


-금돼지식당은 오픈할 때부터 잘 됐나요?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밀려들었어요. 부모님이 식사하러 오셨는데, 어떤 손님이 ‘아저씨는 뭔데 줄 안 서느냐’고 욕 먹었대요.”


-맛으로 소문나기 전부터 잘 된 이유가 뭐예요?


“호기심. 오픈하기 전까지 공사만 육칠개월 했어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데, 첫날 오셨던 손님들이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문을 저리 천천히 여나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전문업체에 맡겨서 하면 좋은데,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요. 사실상 저희가 다 했죠. 목수 불러서 ‘여기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하고, 타일 붙였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다 뜯어서 하고요. 저희 인테리어가 마감이 깔끔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측면이 자연스럽고 오래된 느낌이 나게 한 것 같아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2018년 자기 소셜미디어에 금돼지식당 로고가 박힌 앞치마를 입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게시물에는 ‘내 생애 최고의 삼겹살, 목살 발견’, ‘금돼지식당 강추’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이듬해 금돼지식당은 이마트와 손잡고 돈육햄을 출시했습니다.


-천지가 삼겹살집인데, 금돼지식당의 특별한 맛이 있나요?


“저희가 사실상 처음으로 돼지 품종에 대해 얘기한 식당이에요. 요즘은 이베리코(스페인 돼지 품종)란 말도 흔해졌지만, 이전에는 뭘 먹인 돼지다 아니면 흑돼지다, 한돈이다 이 정도였어요. 저희는 품종이 다르면 근본적으로 맛도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서 요크셔, 버크셔, 듀록을 교배한 YBD란 돼지 품종을 알게 됐고, 지금도 YBD를 쓰고 있죠.”


박 사장은 YBD가 금돼지식당 성공의 효자노릇을 했다고 봅니다. 그럼 맛은 어떨까요. 금돼지식당을 국내 돼지고기구이집 가운데선 처음으로 빕구르망에 선정한 미슐랭(미쉐린가이드)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이곳의 대표는 살코기의 풍부한 육즙,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 그리고 지방의 풍미가 잘 살아 있는 돼지 품종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갈비뼈가 붙어 있는 본삼겹과 등 목살 등의 특수 부위를 연탄불에 달군 주물 판에 구우면 고기가 타지 않고 맛있게 익는다. 그 흔한 돼지고기지만,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품종이 성공의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요.


“맛과 친절함은 기본이죠. 거기에 더해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느껴지고 비주얼도 더 요즘 스타일에 맞을까 엄청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뼈를 붙인 채로 썰어서 내놓기로 결정했죠. 뼈 자체를 통으로 삼겹살에 붙여서 파는 데는 저희가 처음일 거예요. 한발짝 바꿔서 생각하면 손님들에게 새로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수경 대표의 사장의 맛 잘 보셨나요. 금돼지식당은 가맹점은 물론 분점조차 없습니다. 돼지고기구이집인데 이불가게, 라면회사와 손잡습니다. 박 사장은 그 이유로 ‘스토리텔링’을 얘기합니다. 박 사장이 말하는 금돼지식당의 스토리텔링, 27일 수요일 기사로 뵙겠습니다.



[석남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실시간
BEST
chosun
채널명
조선일보
소개글
대한민국 대표신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