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떡이 타원형으로 길어진 까닭은
원래는 동전 모양이었다 길쭉해진 떡국 떡의 과학
‘만 나이 통일법’이 지난해 시행됐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인은 나이를 설날 떡국 한 그릇과 함께 먹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설날 먹는 절식(節食)의 대명사 떡국을 들여다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묻게 된다. 떡국 떡은 왜 길쭉한 타원형인가?
가래떡을 직각으로 썰면 동그란 떡국 떡(왼쪽)이 되고, 대각선으로 썰면 길쭉한 떡국 떡이 된다. 타원형 떡국 떡 표면적이 원형의 2배이고, 숟가락으로 뜨면 푸짐한 느낌을 준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원래 동그랗던 떡국 떡
떡국 떡은 본래 동그란 모양이었다. 요즘도 경북 등 일부 지역에서는 동그랗게 썬 떡국 떡으로 떡국을 끓인다. 떡국 떡이 해처럼 동그랗다고 ‘태양떡국’이라고도 부른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조선 시대 궁중에서 가래떡을 동그랗게 썰어서 떡국을 끓여 겨울 밤참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옛날에는 떡국점(떡국 떡의 표준어)이 원형이었지, 타원형으로 썰지는 않았다”고 했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19세기 ‘경도잡지(京都雜志)’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는 설 음식으로 떡국을 소개하면서 ‘멥쌀로 만든 흰 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고기 국물에 넣어 먹는다’고 적혀 있다”며 “동전 모양 떡국을 먹으며 돈 벌고 부자 되기를 바란 것”이라고 했다.
떡국 떡을 언제부터 비스듬하게 썰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꽤 오래전에 바뀐 듯하다. 서울 망원동 ‘경기떡집’ 사장 최길선(71)씨는 “열일곱 살 때부터 떡집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가래떡을 지금처럼 타원형으로 썰었다”고 했다. 적어도 50년 전부터는 떡국 떡이 타원형이었다는 말이다.
떡국 떡이 원형에서 타원형으로 바뀐 이유도 확실히 알려진 건 없다. 한 원장은 “떡국 떡을 타원형으로 썰면 훨씬 커지기 때문에 푸짐하고 풍성한 느낌이 들어서가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같은 가래떡을 원형으로도 썰고 타원형으로도 썰어봤다. 숟가락으로 떠보니 원형 떡국 떡은 남는 공간이 생기는 반면, 타원형 떡국 떡은 꽉 찼다.
◇길쭉해진 과학적 이유
떡국 떡이 타원형으로 변한 데는 시각적 포만감뿐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도 있다. 평균 지름이 2.5cm가량인 가래떡을 똑바로 썰어 원 모양으로 만들면 넓이가 1.5625π(1.25×1.25×π)㎠가 된다. 같은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타원형으로 만들면 넓이가 3.125π(1.25×2.5×π)㎠로, 원형 떡국 떡의 2배가 된다.
표면적이 넓어지면 양념이 쉽게 배고, 열도 많이 받아들일 수 있어 조리 시간도 줄어든다. 떡국 떡뿐 아니라 오이, 당근 등 채소도 어슷썰기를 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떡국 떡을 과거처럼 사람이 칼로 썰지 않고 기계로 썰면서 어슷썰기가 확산됐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원장도 “칼질하기도 직각보다 사선이 더 쉽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기계연구원 관계자는 “기계화 때문에 떡국 떡 모양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래떡을 직각으로 썰 때보다 사선으로 썰 때 드는 총에너지가 많습니다. 에너지 효율성에서는 직각 썰기가 낫죠.”
◇원형이냐 타원형이냐
원형과 타원형 중 어느 쪽이 나은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대부분은 “타원형으로 바뀐 데는 여러 합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타원형 떡국 떡을 지지한다. 한 원장은 ‘절충파’다. 그는 “완전한 원형은 너무 작고, 그렇다고 너무 길쭉한 타원형이면 숟가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기 십상”이라며 “살짝 타원형이 이상적”이라고 했다.
음식 연구가 박종숙씨는 “본래의 원형 떡국 떡을 고수해야 한다”는 쪽이다. 박씨는 “하얗고 동그란 떡국 떡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순수함, 완전함을 상징한다”며 “새해 복이 들어오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이든 돈이든, 떡국을 먹던 본래 의미를 고려한다면 원형 떡국 떡이 맞는다.
떡국 떡은 타원형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원형 떡국 떡은 타원형에 밀려 찾아 보기 쉽지 않다. 동그란 떡국 떡으로 떡국을 끓이려면 과거에 그랬듯 집에서 손수 썰어야 한다. 박씨는 “가래떡을 다용도실이나 난방하지 않는 뒷방 등 서늘한 곳에서 하루 이틀 정도 두면 잘 썰린다”며 “가래떡 표면만 마르는 게 아니라, 속까지 단단히 굳히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