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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 보물 1호

인생 식탁

독거 청춘 3인의 맨땅에 살림


"얼마 대출하셨어요?"


요새 사회 초년생끼리 모이면 꼭 대출 얘기가 나옵니다. "형제는 있으세요?"처럼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통과 의례 같은 거죠. 교복 벗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등에 업고 사는 세대의 화법입니다. 서로의 궁핍함을 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생활형 대화가 등장합니다. '집에선 뭘 먹나요' '더울 땐 어떻게 하나요'…. 대출 원금 상환에 이자, 밀린 카드 값 내랴 아무리 월급이 통장에 발만 살짝 담갔다 빠져나가도 시원한 곳에서 배불리 먹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깐요.


20대 후반 1인 가구인 저희 세 기자도 그렇습니다. 냉장고는 텅텅 비었는데 냉동실은 미어터지는 '냉동인간' 김상윤 기자, 제 밥은 굶어도 고양이 밥은 반드시 챙겨주는 '고양이 집사' 양승주 기자, 가스레인지도 밥솥도 없이 전자레인지만으로 요리하는 '전자족' 표태준 기자.


'평균 자산 마이너스 8667만원'인 세 기자가 빠듯한 살림 속에서 터득한 살림 요령을 이번 주부터 들려 드립니다. 짠내 나는 팁, 그러나 잘 보면 알짜 팁 가득합니다. 첫 주제는 '1인 가구의 냉동실 보물 1호'입니다.

대박 할인 때 쟁여놓은 냉동만두, 곰탕육수 넣고 끓이면 만둣국 뚝딱

냉동실 보물 1호

하루라도 냉동 음식 없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냉동 음식이 주식이나 다름없다. 그 중 보물 1호는 냉동 만두. 별별 냉동 만두 섭렵한 결과 그중 으뜸은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 정가는 한 봉지 455g(35g짜리 13개입)에 3550원꼴이지만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인터넷에서 산다. 대충 찾아도 같은 용량 기준 2000원 정도에 살 수 있고 가끔 1000원대 '대박 딜'도 나온다. 만두 1개에 100원 정도인 것.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고, 라면이나 찌개에 넣어 먹는다. 레토르트 곰탕 육수(이것도 비슷한 방법으로 샀다)를 부어 끓이다가 만두와 소금, 다진 마늘, MSG만 넣어도 그럴듯한 만둣국이 된다. 냉동고 문을 여는 순간 쟁여놓은 만두들이 우수수 쏟아질 정도인데도 '한 봉지에 1300원이라니!'라고 생각하며 또 주문하다 보면 '다음에 이사 갈 방은 냉장고 큰 곳으로 골라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 사료'급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자랑하지만 맛도 꽤 괜찮다. 싸구려 만두는 피에서 밀가루 냄새가 많이 나고 동글동글한 가공육의 식감이 영 좋지 않으며 먹고 나면 입에 불쾌한 향이 남는 경우가 많은데, 비비고 왕교자 등 요즘 만두는 그렇지 않다. 냉동 만두의 한계를 넘진 못하나 냉동 만두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맛은 낸달까.

배달 떡볶이 조금씩 나눠서 얼려, 출출한 밤 집에서 '혼떡'하지요

냉동실 보물 1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요즘 인기다. 냉장고 문에 떡볶이 가게 쿠폰 빼곡하게 붙여둔 나로선 눈에 콕 박히는 제목이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도, 그 반대일 때도 떡볶이는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이었으니까.


이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를 자취를 시작하고 한동안 먹지 못했다. 집 주변에 떡볶이 가게가 없었다. 배달시킬 수도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고 양도 너무 많다. 친구들을 만날 때 떡볶이 메뉴를 강력히 밀어 보았지만 매번 받아들여질 순 없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으니까. 뭣보다도 떡볶이는 집에서 '츄리닝' 바람에 눈물 콧물에 스트레스를 함께 쏟아내면서 먹는 게 제맛인지라 출출한 밤이면 떡볶이 금단현상에 시달리곤 했다.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남김 없이 '혼떡(혼자 떡볶이)' 하는 법! ①배달 떡볶이를 시킨다(야속하다. 보통 2~3인분 분량) ②한 번에 먹을 만큼씩 비닐봉지 3~4개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얼린다 ③해동할 때 비닐을 벗겨 냄비에 넣고 물을 약간 넣는 게 핵심. 눌어붙지 않게 저어가며 중불에 끓인다. 피자 치즈나 삶은 계란을 추가하면 방금 시킨 떡볶이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 '소분해 먹었으니 살도 별로 찌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최면은 덤이다.

닭 가슴살 대신 돼지 뒷다리, 살구이·찌개… 식탁이 푸짐해져

냉동실 보물 1호

집 냉동실에는 시뻘건 돼지 뒷다리살 2㎏이 상주한다. 돼지 다리가 냉동실에 살게 된 건 닭 가슴 때문. 단백질 보충한답시고 닭 가슴살 한가득 사놓고 먹었다. 2주 지나니 닭은 가슴이 메마른 동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3주째, 그 모질고 질긴 가슴에 내 목이 턱 막힌다. 치킨일 때는 멋있는 척 다하더니 튀김옷 벗겨놓으니 이렇게 맛없다. 역시 사람도 고기도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차라리 고무에 케첩 발라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돼지고기 뒷다리살 얘기를 들었다. 단백질은 풍부한데 지방은 삼겹살의 3분의 1. 체중 관리하는 이들 사이에서 닭 가슴살 대안으로 인기란다. 안심 다음으로 비타민 B1이 많이 함유돼 영양가 높고 피로 회복에도 좋다. 구워 먹어도, 삶아 먹어도, 라면 끓일 때 얇게 썰어 다진 마늘이랑 같이 넣어 먹어도 맛있다. 재능도 많아 1인 가구 주식인 제육볶음·김치찌개·불고기 어느 요리에나 쓰인다.


가격은 1㎏에 5000원. 인터넷 쇼핑몰에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검색하면 구할 수 있다. 500~1000원 정도 더 내면 잘라도 준다. 자를 땐 '구이용'을 추천. '찌개용'이나 '불고기용'으로 자르면 활용도가 떨어진다. 1인분씩 덜어내 비닐 팩에 넣어두면 편하다. 배송비 3000원이 아까우니 2~3㎏씩 구매해 냉동실에 모셔둔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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