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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by 조선일보

나이는 묻지 마세요, 윤시내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아무튼, 주말-허윤희 기자의 발굴]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개봉

80년대 ‘전설의 디바’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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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디바’ 윤시내는 인터뷰 직전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사진은 따로 찍지 말고, 나이는 절대 쓰지 말아달라.”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닮은 이 사진을 그는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아림미디어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네. 지금 활동했으면 세계를 씹어드셨을 텐데!”


가수 윤시내가 등장한 TV 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이런 평이 달렸다. 지난 4월 ‘윤시내 가요제’ 특집에 출연한 전설의 디바는 단 두 곡의 무대로 격이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공연히, 내가 먼저 말,했나,부아!” 창자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 성량, 온몸을 비틀며 손을 뻗는 춤사위, 무릎까지 올라오는 롱부츠에 핫팬츠.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대에 20~30대는 “마돈나, 레이디 가가 이전에 윤시내가 있었다”며 열광했고, 그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은 “얼마나 혹독하게 자기 관리를 했기에 전성기 모습 그대로냐”며 감탄했다.


윤시내가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그는 음악을 멈춘 적이 없으니까. 1978년 ‘공연히’로 데뷔한 후 ‘열애’ ‘DJ에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등을 줄줄이 히트시키며 1980년대 가요계 지존으로 군림했던 그는 1990년대 이후 방송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노래를 쉴 수 없어서” 경기도 하남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를 열고 매주 무대에 올랐다.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과연 명불허전. 아이돌 못지않게 탄탄한 허벅지를 드러낸 관록의 디바가 용암이 분출하는 듯한 특유의 불꽃 창법으로 관객을 휘어잡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곡을 번안한 ‘마리아’부터 2001년생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의 최신곡, 전성기 히트곡 메들리까지 12곡을 내리 쏟아낸 그는 빠르게 무대를 내려갔고, 3층까지 채운 카페 관객들은 “윤시내!”를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며칠 후 미사리 카페에서 다시 만난 그는 무대 위 윤시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제가요, 두 가지만 미리 부탁드릴게요.” 모기만 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인터뷰 사진은 따로 찍지 마세요. 제가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나이는 절대 쓰시면 안 돼요.” 나이는 인터넷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오는 세상인데, 너무도 간곡한 요청에 “알겠다”고 답했다. 하얀 면 티셔츠에 스키니 청바지를 입은 그와 마주 앉았다.

◇디바, 연기에 도전하다


인터뷰는 영화 얘기로 시작했다. 8일 개봉한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1980년대 전설의 디바 윤시내가 고별 콘서트를 앞두고 돌연 사라졌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20년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한 신순이(오민애)와 유튜버인 딸 장하다(이주영)가 윤시내를 찾아나선다. 그는 영화 말미에 ‘전설의 윤시내’로 직접 등장한다. 김진화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라이브 카페를 찾아가서 공연을 보고 숨이 멎을 정도로 반했다”며 “윤시내의 아우라는 연출자가 연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실제 윤시내가 등장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제안을 드렸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승낙해주셨다”고 했다.


-생애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


“제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고민이 됐는데, 감독과 PD가 카페로 찾아와서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호기심도 생기고,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서 출연을 결심했다.”


-연기해보니 어땠나.


“처음이라 굉장히 힘들었다. 노래 가사는 저절로 외워지는데, 대사는 분명 다 외웠는데도 막상 하려니 생각이 안 나더라.”


-영화에 ‘가짜 윤시내’가 여러 명 나온다. ‘연시내’를 비롯해 ‘운시내’ ‘가시내’ ‘윤신애’까지 등장하는데, 실제로 활동하는 윤시내 이미테이션 가수가 있나.


“저는 한 번도 못 봤다. 완전히 영화적인 설정이다.”


하긴, 이 독보적인 보컬리스트의 창법을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대중음악사 어떤 카테고리에도 걸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말한다. 1978년 ‘제2회 서울국제가요제’에 등장한 ‘공연히’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작사가 이주엽은 “온몸을 비틀어 토해내던 솔(soul) 넘치는 노래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샤먼의 주문과도 같았다”고 했고,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를 낸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은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도무지 웃음이라곤 지을 것 같지 않은 표정, 그리고 양손을 내저으며 얼굴을 감쌌다가 내리는 독특한 퍼포먼스는 거대한 의문부호를 그리는 것 같았고, ‘나의 음악을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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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한 가수 윤시내가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출연진의 무대를 평가하고 있다./TV CHOSUN ‘화요일은 밤이 좋아’

◇윤시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V조선 무대는 어땠나.


“‘미스트롯’에 출연했던 후배들이 제 노래에 안무까지 더해 완벽한 무대를 펼쳤다. 모두 훌륭했지만, 10대 어린 친구 둘(김태연·김다현)은 정말 놀라웠다. 그 나이에 가사의 의미를 어떻게 알고 그런 감정을 쏟아내는지. 강혜연양이 부른 ‘몬테카를로의 추억’은 나조차 잊고 있던 곡인데 그날 들으니 느낌이 너무 좋아서 요즘 카페에서 부르고 있다.”


-전성기 목소리 그대로라 놀랐다. 관리 비법이 따로 있나.


“감기 걸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목이 좀 안 좋다 싶으면 소금물에 가글하는 정도. 겨울엔 찬바람 안 쐬려고 하고, 하루 6시간 푹 잔다. 저는 노래를 쉬면 감도 떨어지고 목도 잠기기 때문에 항상 노래를 해야 한다. 후배들 중엔 무대가 없어서 노래방을 찾는 이들도 있는데, 저는 무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입과 마이크의 거리를 상당히 둔 채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창법(일명 불꽃 창법)은 여전하다.


“내 음악의 롤모델인 미국 록 여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영향을 받았다. 노래 부르면서 내 안의 감정을 응축시켰다 폭발시키는 창법이 편하다.”


-독특한 춤사위는 따로 연구하는 건가, 아니면 즉흥적인 건가.


“춤이라기보다 그냥 필(feel)에 따라 리듬을 타는 거다. 어릴 때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했다. 가수가 앞에서 노래하면 뒤에서 여럿이 펑키하게 리듬 타는 거, 그런 움직임을 좋아한다. 미 8군 시절 팝스타들의 공연 실황을 보면서 따라하다가 몸에 밴 것 같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운동을 따로 하는 건 없다. 그날 보셔서 알겠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한 시간씩 무대서 뛰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만큼 격렬하기 때문에 그게 저한텐 운동이다.”


-체중 관리도 따로 안 하나.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계부터 올라간다. 어제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오늘은 조절하면서 적정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게 몇 ㎏?


“그것까지 말해야 되나. 요즘엔 38.5㎏. 보통 39.9~40㎏ 왔다 갔다 한다. 한창 활동할 때는 43㎏까지 나갔다. 저는 예쁜 옷을 입고 싶기 때문에 여기서 더 나가면 옷이 몸에 안 맞아 힘들다.”


-빌리 아일리시 선곡은 의외였다.


“최신 음악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요즘 곡들을 계속 듣는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가 나왔는데 노래가 너무 좋더라. 이런 노래도 부르냐며 놀라시는 분이 많은데 딱 제 취향이다. 데뷔 전부터 저는 외국 곡들을 많이 불렀다.”


-무대 의상은 직접 챙기나.


“예전에는 코디네이터 개념이 없었고 의상실에서 가끔 도움 받는 게 전부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의상은 직접 챙긴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고, 특이한 의상을 좋아해서 코디를 연구하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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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뒤흔든 전설의 디바 윤시내. /아림미디어

◇대체 불가능한 ‘뼛속까지 가수’


윤시내는 서울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다. 초등학교 땐 달리기, 중학교 땐 반 대항 배구 선수로 뛸 정도로 운동신경도 타고났다. 하지만 그는 “가수가 아닌 다른 꿈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영어 배우기 전부터 팝송을 즐겨 들었고, 소리 나는 대로 한국말로 가사를 적어 따라 불렀다. 예고 재학 중에도 보컬 학원에 다닌 그는 졸업 후 미 8군 클럽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대 그룹 사계절 보컬로 서울 명동 오비스캐빈에서 노래하던 그를 눈여겨보던 작곡가가 ‘공연히’와 ‘열애’ 등 숱한 히트곡을 낳은 최종혁이다. 윤시내는 “가요 인생을 열어준 최종혁 선생님과 그 전에 ‘나는 열아홉살이에요’로 TV에 데뷔시켜준 조용호 당시 TBC 국장님이 제 인생의 두 은사님”이라고 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가인 ‘나는 열아홉살이에요’가 윤시내 목소리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난 그으런 거 모올라요’라는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지금과는 다른 미성(美聲)인데.


“지금도 제가 불렀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오비스캐빈에서 마이클 잭슨의 ‘마리아’를 많이 부르던 때였다. 어느 날 녹음실에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국장님이 이 노래를 주면서 깨끗한 미성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몇 살 때였나.


“그건 물어보지 마시라. 나이가 나오니까(웃음). 암튼 무명인 내게 그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 분식집에 앉아서 막 먹으려는데 TV에 내 노래가 나왔다. 희한하고 반갑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 곡이 방송 금지곡이 됐는데, 중간에 들어간 대사가 퇴폐적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주인공인 신성일 선생님 대사 때문이었다(웃음).”


-지금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단련을 통해 얻어진 건가? 소리꾼이 폭포 아래서 득음(得音)하는 것처럼?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많이 부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지금 목소리로 변한 것 같다. 따로 단련을 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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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 한 장면./블루라벨픽쳐스

◇인생곡 ‘열애’는 한 남자의 유서


윤시내는 1980년대 이후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연말 가수상을 휩쓸었다.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라고 외치는 노래엔 일상에 지친 주부들이 열광했고, “안돼 안돼, 내일 모레면 시험기간이야, 열심히 공부하세”라는 가사엔 당시 학부모들과 교사, 독서실 원장들이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장르도, 팬 층도 다양했지만, 가수 윤시내를 만든 단 하나의 인생곡으로 그는 주저 없이 ‘열애’를 꼽았다. 시한부 삶의 절망 앞에서 쓴, 한 남자의 유서가 윤시내의 대체 불가능한 가창과 만나 가요의 고전이 된 노래다.


“부산 MBC 인기 DJ였던 배경모 선생님이 암에 걸려 죽음을 대면하고 아내를 향해 써내려간 연서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같은 뜨거운 글에 최종혁 선생님이 멜로디를 입히고, 내게 곡을 주셨다. 그때는 녹음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아서 한번 틀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불러야 했다. 수십 번 다시 부른 끝에 완성됐는데, 최 선생님이 들으면서 ‘됐다!’ 하시는 거다. 그땐 뭐가 됐다는 건지 의미를 몰랐다. 나중에 회사에서 테이프가 트럭으로 실려 나가는 걸 봤다. 그다음부터 최절정기가 시작된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무대 경험이 있나.


“제가 무대에서 눈을 감고 노래하는 습관이 있다. 하루는 노래하다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한 총각이 올라와서 껴안고 뽀뽀하려고 하는 거다. 그땐 기겁을 했는데 요즘은 기다려도 안 온다.(웃음) 맹장 수술한 다음 날 차에 링거 달고 지방 공연 간 일도 있었다. 가스가 안 빠져서 부풀어오른 배를 쥐고 앉아 노래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기획사 대표가 “막 오픈한 대형 업소라 손님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서 윤시내 안 오면 자기 죽는다고 사장이 울었다. 진통제 맞으면서 이틀을 무대에 오르더라”며 “참 지독한 프로”라고 보탰다.


-90년대 이후 공백기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가요계가 크게 변했다. 자연스럽게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음악을 멈춘 건 아니다. 1997년 지금 이 카페를 열었고, 간간이 새 앨범을 냈다. 드물게 방송에도 나갔다. 2011년엔 록밴드 ‘부활’의 객원 보컬이자 첫 여성 보컬로 디지털 싱글 ‘이별에서 영원으로’를 냈다. 이번에 TV조선에서 부른 ‘인생이란’은 가수 김종환씨가 노랫말을 써준 2015년 발표곡이다. 힘을 빼고 편안하게 부르는 곡이라 윤시내가 달라졌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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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한 윤시내가 '인생이란'을 부르는 모습. 시청자들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같다"며 "진짜 예술"이라고 열광했다. /TV CHOSUN '화요일은 밤이 좋아'

◇내년에 첫 단독 콘서트


-시대를 풍미한 디바인데 정작 단독 콘서트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많은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지만, 늘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쇼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미뤄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그런 쇼다운 쇼. 내년에 드디어 열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준비 중이다.”


-공연 없을 때 평소 일상이 궁금한데.


“저는 외출을 잘 안 한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어쩌다 나오면 경비 아저씨가 ‘드디어 나오셨네요’ 한다. 주로 음악 듣고, 노래 연습하고, 영화도 즐겨보고, 혼자 재미있게 잘 지낸다.”


-예전 인터뷰에서 ‘여자 연예인들은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아내 같은 남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혼을 안 한 건 그런 남자를 못 만나서인가.


“우리 활동할 땐 스캔들 한 번만 나도 가수 생활을 못 했다. 그렇게 오로지 노래만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더라.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두 식구를 떠나 보냈고, 카페에서 15년 키우던 금순이도 하늘나라로 갔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제 강아지 키우기도 겁이 난다.”


-고소공포증도 있다던데.


“한창 활동할 땐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비행기 타기 겁이 난다. 부산을 가면 꼭 기차를 타고, 제주도도 잘 안 간다. 공포증이라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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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카리스마의 가수 윤시내. /아림미디어

◇BTS 기다려! 해외에 도전장


“오랜만에 TV 나온 저를 보고 ‘부활’의 김태원씨가 연락을 해왔다. 외국 가수들은 나이 들고 세월 가도록 무대에 서면서 기립 박수를 받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는 스스로 무너지거나 포기하거나 잊혀 간다고. 이렇게 무대 위에서 존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터뷰 내내 수줍어하던 그가 이거 하나는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왜 자주 방송에 안 나오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써달라. 사람들이 왜 벚꽂에 열광하는 줄 아시냐. 그저 꽃이 예뻐서, 분홍색이어서가 아니다.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만큼 귀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거라고.”


-1980년대 잡지 인터뷰에서 코미디언 이주일과 대담하며 이런 얘기를 했더라. ‘우리 노래가 세계 각국에 알려지고 빌보드차트에 오른다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 이상으로 나라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40년 뒤에 후배들이 그걸 현실로 이뤄낼 줄 알았나.


“그러게,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진심으로 후배들이 부럽다. 우리 때는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도 마음만 있었지 쉽지가 않았다. 지금 태어났어야 했다고, 가끔 농담으로 말한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저도 도전해보고 싶다.”


-늦지 않았다. 배우 윤여정도 아카데미 조연상 받지 않았나.


“아 그런가? 어떤 분이 그러더라. 나같이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외국에서 먹힐(좋아할) 거라고. 진짜 기회만 있다면 꼭 도전하고 싶다.”


-빌보드 진출하려면 비행기 타야 하는데.


“그거라면 무조건 가야지. 백 번이라도 탄다(웃음).”


-그런데 어떤 게 진짜 윤시내인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위 모습인가, 소녀 같은 지금 모습인가.


“다들 묻는다. 노래할 때가 진짜냐, 평소 조용한 내가 진짜냐고. 둘 다 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양면이 있지 않나. 그래서 인생이 더 재밌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고요히 응축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그의 무대를, 오래도록 보고 싶어졌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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