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육고기'의 비밀... 세계의 삼겹살은 한국인이 다 먹는다
박정배의 미식한담
기름 많아 수출 못하던 삼겹살, 70년대 서민들의 고기로 자리잡아
80년대 이후 프로판 가스 등장, IMF이후 ‘국민 육고기’로 등극
돼지고기 그 중에서도 삼겹살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먹는 육류이다./조선일보DB |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고기는 소고기를 의미했지만, 1990년대 이후 돼지고기가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고기가 되었다. 최근 들어 돼지 품종이 다양해지고 다양한 부위가 개발되면서 돼지고기는 미식의 화두가 되었다. 옛날에는 이름조차 없던 등갈비니 모서리살 같은 부위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겹살, 도시 서민의 영양 공급원으로 정착
‘전 세계 삼겹살은 한국으로 모인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지만 서양에서는 기름이 많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기호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삼겹살은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의 도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전에는 ‘세겹살’ ‘뱃바지’ ‘삼층(三層)제육’으로 불렀다. 1931년 발간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6판)에는 삼겹살이 ‘세겹살(뱃바지)-배에 있는 고기, 돈육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라고 나온다. 삼겹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개성 출신 미식가 마해송 작가는 개성산 삼층제육을 ‘고소하고 맛 좋은 품이 양돼지에 비할 바 아니다’라고 했고, 홍선표는 ‘조선요리학’(1940년)에서 ‘세겹살은 가장 맛 좋은 부위’라고 썼다. 당시 삼겹살은 지금처럼 생으로 구워먹는 게 아니라 양념하거나 삶아 먹었다.
1960년대 일본으로 돼지고기를 수출하면서 돼지 부산물과 기름이 많아 인기가 없던 삼겹살은 도시 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됐고, 단백질과 지방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대일 수출이 뜸해지지만 돼지고기 가공 공장이 늘어나고 프로판가스 불판 같은 도구가 더해지면서 삼겹살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IMF를 거치면서 ‘국민 육고기’로 등극한다. 2007년이 되면 삼겹살은 85.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돼지고기 선호 부위(2007년 5월 7일자 서울신문)가 된다.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삼겹살은 환경과 기호에 따라 대패 삼겹살, 냉동 삼겹살, 오겹살 등으로 변신하면서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기 부위로 남아있다.
인기가 많은 만큼 가격도 좋아 정형할 때도 조심히 다룬다. 배쪽에 붙은 복지방도 너무 많거나 적은 것은 좋은 것으로 치지 않는다. 돼지 등갈비뼈가 붙어 있던 위쪽 부위의 살은 지방과 살이 삼겹으로 교차되어 있어 풍미와 식감이 좋기 때문에 구이용으로, 아래쪽 삼겹살은 수육이나 보쌈용으로 구분해 팔기도 한다.
2005년부터 분 ‘등갈비' 바람, 2015년 이후엔 목살이 인기
돼지 갈비뼈 갯수는 품종마다 달라서 13개에서 17개까지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대개 14~15개를 가진 돼지 품종을 사육한다. 몸통 위쪽 1번부터 4~5번까지의 갈비에 붙은 살을 갈비살이라하고, 그 밑에 것들은 등갈비로 분류한다. 지방과 살이 고루 섞여있고 뼈에서 나오는 맛이 스며들어 풍미와 식감을 두루 갖춰 구이나 찜으로 먹기에 좋다. 돼지 살코기 중 가장 양이 많고 저렴한 뒷다리를 갈비에 붙여 파는 경우가 많다.
돼지갈비 구이는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는 서민들의 술집인 대포집에서 막걸리와 함께 먹는 대표적인 안주였다. 삼겹살이 돼지고기의 중심이 되면서 돼지갈비 그리고 삼겹살과 붙어 있는 등갈비로 나뉘게 됐다. 2005년경 ‘등갈비 열풍’이 시작됐다. 현재 등갈비는 인기에 비해 양이 적어 삼겹살보다 거의 두 배 비싸다.
2015년을 지나면서 기름에 대한 선호도가 줄어들고 저지방에 대한 선호도는 올라가면서 목살이 삼겹살의 인기를 넘어섰고 가격도 조금 비싸졌다. 일반적으로는 ‘목살’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목심이다. 등과 붙은 목 뒷쪽에 있어 ‘어깨등심’이라고도 한다. 지방과 고기에 콜라겐이 고르게 섞여 있고 진한 맛이 나는 탓에 구이용으로 삼겹살과 쌍벽을 이루는 부위다. 삼겹살에 비해 지방 부위가 적고 고기 향이 적당해서 구이는 물론 수육이나 불고기용으로 적합한 전천후 부위다.
등심살 밑 알등심은 프랑스, 일본에서 고급 스테이크로 애용
등심은 등심살, 알등심살, 등심덧살 세 부위로 소분할된다. 등심살은 거의 살코기로 이루어져 부드럽고 연하다. 지방이 거의 없어 등지방을 이용해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등심에 붙은 조직이 치밀한 지방은 ‘A지방’으로 부른다. 돼지 지방 중 최고 품질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햄이나 소시지, 떡갈비에 사용되는 반면, 일본에서는 돈가스를 만들 때 이 A지방을 그대로 붙인 채 로스가스로 요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등심의 앞쪽 부분은 등심덧살로 구분하는데 돼지 한 마리당 450g에 불과한 소량인데다 짙은 붉은색을 띠는 ‘소고기 같은 돼지고기’로 요즘은 가브리살이라 부르며 구이용으로 사용된다. 기름이 없어서 여성들이 선호 하는 부위다. 등심살 밑에 위치한 알등심은 프랑스나 일본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로 귀한 대접을 받거나 최고급 돈가스 부위로 인기가 높다.
돼지고기 부위의 인기는 시대에 따라, 공급자의 전략과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변하고 있다. 서울 마장동 돼지 정형 전문점 ‘창성’ 정필연 대표는 "같은 돼지라도 어디에 칼을 대느냐에 따라 삼겹살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고 목살이 더 나올 수도 있다. 그날의 시세에 따라 목살이 비싸면 5번 갈비를 중심으로 가르고 삼겹살이 비싸면 4번을 기준으로 하는 식"이라고 했다. 지금의 돼지 분할 기준도 대중의 부위 선호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돼지 품종이 다양해지고 해외 고급 브랜드 돼지와 독특한 정형 부위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요즘이 그 변화의 변곡점으로 보인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