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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하나, 출입문은 셋… 우리는 '한 지붕 3代'

'집, 따로 또 같이' 함께 살지만 독립성 높인 주택들 속속

과거 대가족과 달리 필요할 때만 모여… 공간 좁으면 방·주방 등 공유하기도


"장인·장모님도 손자들과 함께 지내실 수 있고 아내와 처제는 육아 부담을 덜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죠. 대가족이라면 다 같이 둘러앉아 밥먹는 모습부터 떠올리는데, 공간을 분리해 집을 지으니 필요할 때만 모일 수 있어 서로 눈치 볼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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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창균이 처가 식구 3대와 함께 사는‘도시채’. /사진가 진효숙

건축가 김창균(48·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직접 설계한 경기 성남 집에서 2016년부터 처가 3대(代)와 함께 살고 있다. 한 건물이지만 두 집에 각각 현관이 있는 구조. 한쪽 집 1~2층을 장인·장모와 처제네가 각각 쓰고 다른 쪽이 김 대표 집이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살던 세 가족이 모인 건 전세난 때문이다. 김 대표네 집주인이 한 번에 8000만원을 올려달라기에 차라리 세 집 전세금을 합쳐 집을 짓기로 했다. 김 대표는 자택 외에 세종시 '꿈담집'(2019), 경기 수원 'E-하우스'(2018), 부산 '삼대가 사는 나지막한 집'(2016) 같은 3대 동거 주택도 전국에 설계했다.


아이 돌볼 손이 필요해서, 연로한 부모를 모시려고, 주거비가 비싸서…. 가족 해체 시대라지만 여러 이유로 3대가 모여 사는 가족도 많다. 전에는 '넓은 집'이 최우선이었지만 요즘은 공간의 질(質)로 눈을 돌렸다. 건축가들도 '3대를 위한 주택'을 속속 발표한다. 각자의 개성과 사생활을 존중한 공간, 따로이면서 같이 사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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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앞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대전 반석동 ‘여름무지개’. 연로한 부모님과 딸 부부, 그 자녀까지 3대를 위한 집이다. 뒤집힌 무지개처럼 완만한 U자형으로 지붕을 만들고, 빗물 홈통처럼 건물 디자인을 해치는 군더더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건축가 류인근

대전 반석동 '여름무지개'(요앞 건축사사무소·2018)는 성인 자녀를 둔 딸 부부가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집이다. 부모님 거동이 불편해질 경우까지 감안해 2층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1층은 음식점이고 2층이 3대의 공간이다. 보통의 원룸처럼 복도에 세 집 출입문이 있다. 가족이지만 독립성을 높인 설계다. 딸 부부의 집은 오래 살아 익숙한 아파트와 비슷하게 했고, 장성한 아들 둘을 위한 집은 복층으로 설계해 변화를 줬다.


밖에서 보면 무지개를 뒤집은 듯 완만한 지붕의 곡선이 독특하다. 지붕의 일정 면적을 경사지게 설계해야 한다는 규정을 활용한 역발상 디자인이다. 요앞건축 류인근(40) 대표는 "박공지붕과 반대로 가운데가 옴폭하면 빗물이 안쪽으로 모여 떨어진다. 건물을 망치는 홈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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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록 외장재를 창문의 커튼처럼 활용한 ‘동심원’. /사진가 김민은

서울 목동 '동심원'(소수건축사사무소·2017)은 공동 육아를 위한 집이다. 부모님과 두 딸 내외, 아이들 4명이 산다. 건축면적이 91.16㎡(약 28평)로 좁다. 세 집을 수직으로 쌓고 공간을 나눠 쓴다. 1층은 카페, 2층은 부모님 집, 3층은 큰딸 집, 4~5층과 다락이 작은딸 집이다. 가족들 식사는 2층 공동 주방에서 하고, 3층 큰방은 아이들 놀이방이다.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뛴다.


콘크리트 블록의 일종인 'Q블록'을 외장재로 썼다. 창문이 있는 곳은 시선을 걸러내도록 그물코처럼 간격을 두고 쌓았다. 외장재를 그대로 차면(遮面) 시설로 활용한 디자인. 창문마다 가림막을 덧댄 보통의 다세대주택과 차별화했다. 가족들 바람대로 '골목 초입에 서서 길을 살리는 건축물'이 됐다.


이런 집들은 도시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대 가족이 도심에 짓는 집들은 다가구·다세대 유형이 많다. 아파트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빨리 싸게 짓는 데만 급급해 대다수가 열악한 상태로 남아 있는 영역이다. 소수건축 고석홍(40)·김미희(39) 소장은 "가족들이 직접 살 집에 제대로 투자하고, 평면 구성이나 재료 사용을 꼼꼼히 고민하면 건물 품질이 훨씬 좋아진다"며 "이런 건물들이 동네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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