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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외치는 '프리 티벳'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9화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숨도 턱턱 막혔습니다. 파키스탄의 유서 깊은 도시 라호르. 영화로운 무굴제국의 유산이 넘쳐나고,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가 있는 도시지만, 날씨만은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가 천국처럼 느껴진 것이요. 산들산들 바람 불어 시원하고, 아름다운 햇살이 아침을 열어주던 곳. 비가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있다지만,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여행에서 해발 1,770m에 자리한 맥그로드 간즈는 더없이 좋은 피난처였습니다. 

인도에서 외치는 '프리 티벳'

해발 1770m에 위치해 여름에도 서늘한 맥그로드 간즈

아침 8시 라호르 숙소를 떠나 와가 국경을 넘고 암리차르를 지나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했습니다. 공기가 다르더군요. 상큼했습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생겼습니다. 상쾌한 날씨만으로 이렇게 마음가짐이 달라지다니, 변덕스러운 제 모습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애틋함이 숨어있는 맥그로드 간즈

맥그로드 간즈는 한번 발을 디디면 오래 머물게 되는 블랙홀 중 한 곳입니다. 선선한 날씨에 맛있는 음식, 그리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여행자들을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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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로드 간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프리 티벳'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역시 맥그로드 간즈야”하며 천진난만하게 돌아다녔죠. 그렇게 즐거워하며 골목을 기웃거리다 벽에 붙어있는 거대한 영정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앳된 아가씨도 있고 강직해 보이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이는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프리 티벳(Free Tibet)’을 외치며 희생된 티베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맥그로드 간즈는 여행자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있는 곳이라는 것을요. 

중국의 강제 합병으로 나라 잃은 티베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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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음식점이나 카페도 티베트풍이다 (오른쪽) 인도지만 티베트사람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맥그로드 간즈

티베트는 불심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이들이 사는 나라였습니다. 중국이 티베트를 강제 합병한 1949년 전까지는요. 중국의 티베트 침략은 해가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1959년 3월 10일 참다못한 티베트 사람들은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후 중국의 압력은 더욱 격해졌습니다. 끝까지 라싸에 남아 티베트 사람들과 남아있고자 했던 티베트의 지도자 14대 달라이라마도 어쩔 수 없이 인도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험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베트에서 인도 땅으로 넘어오는 티베트인은 늘어났고요. 58년이 지난 오늘날 맥그로드 간즈는 티베트 본토보다 더 티베트의 모습을 간직한 땅이 되었습니다.

티베트 불교를 엿볼 수 있는 남걀사원

인도에서 외치는 '프리 티벳'

수행하고 있는 티베트 스님들. 남걀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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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마음 속으로 프리티벳을 외치며 마니차를 돌리는 이들 (오른쪽) 여행자들과 티베트 사람, 인도사람이 함께 걷고 있는 템플로드

티베트 사람들은 불심이 가득한 이들입니다. 종교와 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답니다. 맥그로드 간즈의 중심이 되는 길 이름도 템플로드입니다. 템플로드는 대표적인 티베트 사원인 남걀사원부터 중심가를 이어주는 길입니다. 인도 땅이기는 하지만, 이 길에서 만나는 10 명중 8명은 티베트 사람입니다.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한 할머니와 진한 벽돌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마니차가 길게 이어져 있는 사원과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 가게들도 템플로드에 모여 있죠. 티베트사람들과 인도사람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까지 북적여, 골목은 좁지만 다른 어느 도시보다 국제적인 분위기가 풍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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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거처 출라캉 앞

남걀사원은 티베트 사람들을 모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입니다. 사찰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죠. 아이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행사들도 대부분 남걀사원에서 열립니다.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도 남걀사원이고요. 남걀사원에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출라캉(Tsuglakhang)도 자리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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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걀사원에서 펼쳐지는 티베트식 토론

이곳에서는 티베트 승려들의 독특한 토론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의견을 나눕니다. 티베트식 교리문답 방식을 ‘최라’(chora)라고 하는데요. 제가 간 날에는 우리나라 스님들도 함께 티베트식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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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 길에 놓여있는 진언 '옴마니밧메훔'

토론 모습을 본 후에는 코라 길을 걸었습니다. ‘코라’(kora)는 성지 주변을 돌며 순례하는 것을 말하는데, 맥그로드 간즈에는 출라캉을 감싸고 코라 길이 만들어져 있거든요. 한적한 산길을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바위 위에 ‘옴마니밧메훔’이라고 쓰여 있는 비석들이 나타납니다. 옴마니밧메훔은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으로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모든 존재에게 실현될지어다.’라는 의미입니다. 히말라야 삼나무와 참나무가 이어져 있는 코라 길을 걷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더군요. 

‘프리 티벳’ 자유를 향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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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오늘을 알 수 있는 티베트 박물관

티베트의 오늘을 알기 위해서 남걀사원 입구에 있는 티베트 박물관에 꼭 가봐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었던 티베트 사람들, 그리고 1959년 독립운동에 대한 대학살,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펼치는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100년 전 과거뿐만 아니라 10년 전,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티베트 본토를 몇 차례 여행해서 티베트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계의 소식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티베트의 현실은 훨씬 더 안타까웠습니다. 

인도에서 외치는 '프리 티벳'

'프리 티벳'을 기원하며

박물관을 나서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었습니다.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프리 티벳’ 배지를 달고, 팔에 팔찌를 걸었습니다. 5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도 안에서 그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티베트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크든 작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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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